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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1928년 1월 27일 《중외일보》 3면에 ‘김청〇’이 지은 동요 <윳노리>가 실렸다.
“개 치고 걸 치는 윳놀이는 / 옵바가 잘 노는 장작대윷 / 누나가 잘 노는 토슈ᄶᅡᆨ윳” 제 1절 가사에서 나오는 ‘장작대윷’과 ‘토슈짝윷’은 낯선 말인데, 오빠가 하는 윷놀이가 ‘장작대윷’이고, 누나가 하는 윷놀이가 ‘토슈짝윷’이라는 뜻이다. ‘대’와 ‘짝’을 빼면 각각 ‘장작윷’, ‘토수윷(토시윷)’이 된다. 처음 듣는 말일 수 있지만, 둘 다 ‘윷놀이’를 가리킨다. 즉 이 노랫말은 남성과 여성이 같은 윷놀이를 하면서도 서로 다른 방식의 윷놀이를 즐겼다는 뜻을 담고 있다. 속사정은 과연 무엇일까?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오늘날 일반적으로 즐기는 윷놀이는 길이 약 20cm 정도의 가늘고 긴 윷가락 네 개를 던지는 방식이다. 막대 모양의 윷을 던진다 하여 ‘가락윷’, ‘장작윷’이라 하고, 서울에서 많이 놀았다 하여 ‘서울윷’이라고도 한다. ‘가락’은 숟가락, 손가락처럼 가늘고 긴 모양을 뜻하는 말이다. 따라서 가락윷이란 둥근 나무토막 두 개를 반으로 갈라 네 개의 가락을 만든 윷짝이라는 뜻이다. 모양을 보고 붙인 이름이며, 한자로는 ‘長斫柶(장작윷)’이라 썼다. 스튜어트 컬린도 『한국의 놀이』(1895)에서 ‘장작늇·長斫柶’ 이라 적어, 한글 이름으로 남긴 최초 사례가 되었다. 이름이야 어떻든 모두 손에 들고 공중에 던져 떨어진 모양에 따라 ‘도·개·걸·윷·모’의 사위(주사위나 윷을 놀 때에 목적한 끗수)를 판정하고 사위의 수만큼 말을 옮기는 윷놀이 방식이다.
장작윷보다 작은 윷이 있으니, 이것이 ‘밤윷’이다. 밤을 쪼갠 조각처럼 잘고 뭉툭하게 만든 윷짝이라 붙은 이름인데, 실제로 길이 2cm 정도의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이다. 강원도 삼척에서는 특히 삼각형 모양의 밤윷을 쓰는데, ‘모윷’, ‘배윷’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은 밤윷을 밤나무 열매(밤)를 그대로 윷짝으로 쓴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런 경우만은 아니다. ‘밤윷’은 밤톨처럼 작은 나무 윷짝을 가리키지만, 실제로 콩이나 팥을 윷짝으로 쓰기도 했으니 완전히 틀린 설명도 아니다.
밤윷은 일반적으로 ‘종지’에 넣고 흔들어 던지는 방식이 선호되었으나 때에 따라서는 손에 쥐고 흔들어 던지기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단원 김홍도의 『단원풍속화첩』 <윷놀이>를 자세히 보자. 나무꾼들이 땅바닥에 둘러앉아 ‘윷판’을 가운데 두고 윷놀이를 하는데, 윷가락이 밤윷인 듯 작디작아 잘 구분되지 않는다. 오른손을 든 인물이 방금 윷가락을 던진 순간을 그린 것처럼 보인다. 손으로 작은 윷을 던지는 방식은 정식 도구가 없을 때 가능한 임시변통이다.
소장: 국립민속박물관 민속현장조사
사진: 문덕관, 2023. 10. 31.
밤윷은 보통 종지에 넣고 던졌기 때문에 ‘종지윷’이라 불렀다. 지역에 따라 충남은 종발윷, 전라도와 제주도는 종재기윷, 경기도는 종윷이라 부르며, 전북에서는 종지를 ‘깍쟁이’라고 해서 ‘깍쟁이윷’이라고 한다.
종지윷은 호남과 영남, 강원 일부 지역에서 널리 놀았다. 제주도에서는 같은 방식의 윷놀이를 ‘넉둥베기’라고 부르는데, 네 개의 말을 먼저 빼내는 데 초점을 맞춘 이름이다. 기본 방식은 종지윷과 같다. 종지윷을 놀 때에는 “반을 나누어 선을 그은 멍석을 중앙에 깔아놓고, 종지에 담은 윷가락을 중앙선 건너편으로 던지는” 방식을 쓴다. 종지를 떠난 윷가락이 중앙선을 넘지 못하거나 멍석 밖으로 나갈 때에는 ‘낙’이라 하여 무효로 한다. 종지윷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들은 종지 안의 윷가락만을 던지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종지 바닥이 손바닥에 향하도록 놓고 던지는 것을 허용하기도 한다. 전북 임실에서는 이를 ‘나팔윷’이라 한다.
종지윷은 대개 2:2로 편을 짜서 노는 모둠윷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놀이를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소란스럽기 마련이다. 자기편끼리도 말의 진행을 놓고 다툼이 일 정도니 상대편과는 말할 나위 없다. 말이 제대로, 옳게 이동했는지 등에 대한 시비도 윷판 현장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이런 시비를 없애기 위해 애초부터 심판 역할 겸 행마를 담당하는 사람을 정하고 놀이를 한다. 제주도에서는 ‘마부[말꾼]’라 하고, 진도에서는 ‘장자’라 한다. 멍석의 가운데 앉아 윷판을 장악한다.
이처럼 종지윷은 오래전부터 여러 지역에서 즐겨온 중요한 윷놀이 방식이다. 같은 윷을 놀되 문화적 은유가 다르다. 비록 윷판과 기본 규칙은 같지만 장작윷과는 놀잇감이 다르고, 세부적인 실천은 다른 방식을 취한다. 그렇기에 윷놀이는 지역성을 반영한 문화유산이다.
소장: 덴마크 국립박물관
19세기 후반, 개항장 부산과 원산 등지에서 활동한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은 조선인의 생활을 그린 그림을 서양인에게 판매했다. 지금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덴마크·독일·미국·영국·프랑스 등 약 20개국 유명 박물관에 2,000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당대에는 무명이었으나 그의 작품은 ‘기산풍속화’라는 특정의 이름을 얻었고, 예기치 않게 오늘날에는 K-컬처를 대표하는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기산은 인물의 표정보다 행동과 사물을 중심으로 화면(畫面)을 구성해, 당시 조선인의 생활을 ‘정지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아마도 전체적인 맥락보다 행위나 물건에 관심을 기울인 탓인 것 같다.
기산풍속화에는 윷놀이를 그린 작품이 여러 점 있다. 예를 들어 덴마크 국립박물관의 <계집아희들 노는 모양>, 미국 PENN박물관의 <아희 늇뛰기하고>(1886)와 스미소니언박물관의 <윳ᄯᅱ는 모양>,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의 <늇뒤는 모양> 등이 있다. 모두 윷판을 가운데 두고 세 사람이 둘러앉아 노는 정형화된 구도를 갖는다.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 모사 복원품
그런데 이 그림들에는 눈에 띄는 ‘빨간 깔때기’ 모양의 물건이 있다. 놀이하는 사람이 그 깔때기 위로 무언가를 넣으려 하는 것 같다. 이것이 바로 동요 <윳노리>에서 말한 ‘토슈ᄶᅡᆨ윳’의 ‘토슈(토시)’이다. 즉 콩윷이 사방으로 튀는 것을 막기 위해 토시를 세우고 그 안에 콩윷을 던지는 방식이다. 주로 여성이나 북부 지방에서 즐기던 윷놀이다. <계집아희들 노는 모양>처럼 여자아이들이 놀기도 했고, 남자아이들이 방 안에서 노는 그림도 있어 남성도 토시윷을 즐겼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화가가 활동했던 원산 지역 놀이문화를 반영한 듯하다.
아쉽지만 오늘날 토시윷은 사라졌다. 다만 몇몇의 그림에 모습을 남겼고, 동요 속의 노랫말로 살아있다. 북한의 경우, ‘재미있는 민속놀이’의 하나로 토시윷을 소개했지만(한성겸 편, 『재미있는 민속놀이』, 금성청년출판사, 1994, 112~113쪽.), 현대의 전승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토시윷이 우리 윷놀이의 한 형태로 향유해왔던 문화유산이라는 점이다.
장작윷, 종지윷, 토시윷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윷놀이다. 그러나 놀이 방식이 다르다. 이것은 용어의 차이만큼 단순하지 않다. 놀이의 전승지역을 구획하는 기준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놀이 하는 사람이 선택한 방식이라는 점이다. 장작윷을 던지는 사람은 종지윷에 서툴고 그저 그렇다. 종지윷을 던지는 사람은 장작윷이 시원치 않다. 무엇인가가 부족한 감이 있다. 이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놀이 주체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같은 윷놀이를 하면서도 방식에 따라 손맛이 다르고, 그 때문에 놀이판의 흥취(興趣)가 일지 않는다. 그렇다면 놀이 주체를 기준으로 할 때 같은 윷놀이가 아닌 다른 놀이다. 이렇듯 각자의 윷놀이는 제각각의 문화를 드러내는 문화적 은유다. 오늘날까지 지역적인 윷놀이 방식이 고수되고 제각각의 신명을 유지하며 그대로 유희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찍이 바둑 천재 이세돌은 2016년 3월 9일부터 15일까지 벌어진 알파고와의 대전 끝에 1승 4패를 하고(한 판을 이겼지만) 바둑을 더 이상 두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AI의 논리에 인간이 맞선다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알파고와 인간이 윷놀이를 한다면 결과는 어찌 될까? 바둑처럼 일방적이지 않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왜냐하면 윷놀이의 기본은 윷가락을 던져 나오는 확률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이 점은 윷놀이의 장점이고, 나이와 성별을 떠나 너나없이 향유할 수 있는 놀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놀이의 진행 방식이 단순한 것도 하나의 특징인데, 이 때문에 나이를 떠나 놀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삼국시대부터 오늘까지 윷놀이를 즐겨온 이유다.
윷놀이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이 즐겨온 전통적인 세시놀이고 현재는 수시놀이로 유희되고 있다. 명절이나 설날처럼 가족이 모두 모이는 날이면 어김없이 윷판이 펼쳐지고, 대보름이면 마을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윷판을 벌인다. 윷놀이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 가족과 공동체의 화합을 다지고, 세대 간의 소통을 이어 주는 중요한 문화적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윷놀이는 가족놀이로서 적극 활용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먼저, 윷놀이는 우리 전통문화의 상징적인 놀이다. 네 개의 윷가락을 던져 ‘도, 개, 걸, 윷, 모’의 사위에 따라 윷말(pieces, cheker)을 옮기는 단순한 구조이지만, 그 속에는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지혜와 상징이 담겨 있다. 네 개의 윷가락이 결정하는 사위는 확률에 기반한 운이며, 원론적으로 인간의 뜻과 의지에 좌우되지 않는 요소다. 예로부터 윷놀이를 통해 한 해의 운이나 농사의 풍흉을 점친 것도 이런 이치에서다. 이런 점에서 윷놀이는 놀이이자 전통 상징의 한 형태로서 의미를 갖는다.
둘째, 윷놀이는 가족 간의 정을 돈독히 하는 역할과 함께 교육적 가치가 높은 놀이이다. 윷놀이는 다른 놀이와는 달리 세대와 나이를 넘어 모든 가족 구성원이 함께할 수 있다. 윷가락을 던지는 법에서부터 사위가 지닌 수리적 의미에 이르기까지의 민속 지식이 전습(傳習)된다. 이를테면 윷을 던질 때마다 어떤 수가 나올지 예측하는 과정에서 확률적 사고가 필요하고, 말을 옮길 때에는 전략적 판단이 요구된다. 윷말을 이동할 때 전략을 세우며 무엇이 해결책인지 협의할 수밖에 없다. 어느 말을 먼저 보낼지, 어떤 말을 잡을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사고력과 판단력이 길러진다. 또한 같은 편끼리 협동하며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는 협동심과 의사소통 능력이 자라난다. 이러한 점에서 윷놀이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놀이가 아니라, 학습적인 요소를 지닌 전통 교육의 한 형태인 동시에 가족놀이로서 활용가치가 크다.
셋째로, 윷놀이는 쉽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복잡한 준비나 비용이 필요하지 않고, 네 개의 윷가락과 4개의 윷말, 그리고 윷판만 있으면 된다. 윷판은 다른 어떤 판놀이의 말판보다 단순하면서도 4개의 길을 압축해서 〇과 +로 구조화했다. 그래서 그리기도 쉽다. 이 점을 알아차린 스튜어트 컬린은 “한국의 윷놀이는 모든 판놀이의 원형(Antetype)이다”라고 했다. 윷놀이의 장소가 제약을 받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집 안이나 마당도 좋고, 방안에서도 즐길 수 있다. 가족 구성원이 함께 모여 놀이할 수 있는 조건이 저절로 갖춰진 셈이니 가족놀이로서 정말 제격이다.
마지막으로 현대사회의 가족은 너나없이 바쁘다. 빠르게 생활하는 한 가족의 구성원이 한자리에 하기도 어렵고, 한자리에 모여 무엇인가를 함께한다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함께할 수 있는 보편적인 놀이가 없다. 이런 여러 가지 문제점을 뛰어넘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놀이가 윷놀이임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윷놀이는 이런 의미에서 단순한 민속놀이가 아니라, 가족의 화합과 전통 계승을 동시에 이루는 소중한 문화적 유산이다. 가족이 함께 윷놀이를 즐길 때, 웃음과 사랑이 오가고 따뜻한 정서가 살아난다. 가족놀이로서 이만한 조건을 갖춘 놀이는 흔치 않다. 가족이 함께 즐길 놀이로 윷놀이가 꾸준히 사랑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제공: 국립민속박물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