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2025 가을, 겨울호-가족오락관]농경시대를 풍미한 아이들의 놀이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6-03-18 조회수 : 403
농경시대를 풍미한 아이들의 놀이
글. 강성복(민속학자, 충청민속문화연구소 소장)

놀이는 농경사회와 함께해 온 오랜 무형유산의 산물이다. 농사가 천하의 근본으로 여겨졌던 시대에는 자연물을 이용한 놀잇감이 두드러졌다. 흔하디흔한 돌멩이나 흙, 풀, 나뭇잎은 물론 자연에서 마주치는 풍뎅이, 방아깨비, 잠자리와 같은 곤충들도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모두 훌륭한 놀잇감이다.
옛 문헌에 기록된 ‘초전(草戰)’, ‘초희(草戱)’, ‘투초희(鬪草戱)’, ‘척초회(擲草戱)’는 자연물을 이용한 대표적인 놀이이다. 이는 수풀이 무성해지는 봄·여름에 즐겨하는 ‘풀싸움’을 일컫는다. 가령 질경이나 토끼풀을 뜯어다가 그 줄기를 서로 엇걸고 잡아당겨 끊어지는 쪽이 지는 끊어먹기, 잎사귀따기, 방울털이, 물방울싸움 등 놀이의 방법도 가지가지다. 또 풀을 뿌리째 뽑아 발로 차면 ‘풀제기’가 되고, 보릿대와 풀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단장하면 이내 ‘풀각시’로 전화(轉化)한다. 그런가 하면 풀피리, 호드기, 보리피리는 즉석에서 불고 노는 악기였다. 놀이의 세계에서는 농사 도구 역시 훌륭한 놀잇감이다. 꼴이나 땔나무를 걸고 겨루는 낫치기, 갈퀴치기, 호미던지기가 대표적이다.
도구를 만들어 겨루는 놀이도 다양한 방식으로 전승되었다. 둥글게 깎은 나무공을 작대기로 쳐내는 장치기, 작은 나무토막(일명 토끼)을 쳐서 허공으로 날리는 자치기, 엄동설한에 꽁꽁 언 발을 녹여가며 몰입했던 팽이치기, 제기차기, 연날리기, 썰매타기는 빼놓을 수 없는 아이들 놀이이다. 그뿐 아니라 계절에 따라 열매가 익어갈 무렵에는 앵두치기, 살구치기, 능금치기, 감치기, 참외치기 등도 아이들의 구미를 당기는 내기 놀이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처럼 농경시대를 풍미했던 다양한 놀이 가운데 공기놀이, 사방치기, 장치기, 풀각시놀이에 대해 그 의미를 짚어본다.

<공기놀이> | 윤덕희 /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공기놀이> | 윤덕희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공기놀이, 닭의 일생을 놀이로 구현하다
『한국의 놀이(Korean Games)』 속 김준근의 그림, 1895 | 스튜어트 컬린(Stewart Culin) / 출처: Internet Archive, Public Domain
『한국의 놀이(Korean Games)』 속 김준근의 그림, 1895 | 스튜어트 컬린(Stewart Culin)
출처: Internet Archive, Public Domain

공기놀이는 밤톨만 한 돌 다섯 개 또는 여러 개를 바닥에 늘어놓고 손재주를 겨루는 놀이이다. 공기의 어원은 둥글다(毬)는 의미를 지닌 우리말 ‘공’과 돌을 일컫는 한자어 ‘기(碁·棊·朞·棋)’에서 비롯됐다. 최세진의 『훈몽자회』(1527)에 ‘공긔’로 기록되었듯이 공기는 조선 전기의 전통을 이어오는 대표적인 아동놀이다.
조선시대에는 사내아이들도 공기를 즐겨했다. 선비화가 윤덕희(尹德熙, 1685-1766)의 풍속화 공기놀이를 통해 구체적인 모습을 살필 수 있다. 그림 속에는 능수버들 아래 사내아이 둘이 마주 앉아 공기놀이에 여념이 없다. 놀이하는 아이들의 시선은 허공에 던져 올린 공깃돌에 집중되어 있는데, 그 뒤에서 한 소년이 바람개비를 손에 들고 서서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다.
공기놀이의 종류는 참으로 다양하다. 익히 알려진 공깃돌 다섯 알을 사용하는 ‘다섯알공기’를 비롯해 ‘많은공기’, ‘까부리공기’, ‘코끼리공기’, ‘네모공기’, ‘기차공기’, ‘바보공기’, ‘언니공기’, ‘오빠공기’ 등 지역에 따라 그 종류가 수십 가지에 이른다. 이처럼 놀이의 종류가 다양한 것은 공깃돌을 던지고, 집고, 받는 방법과 규칙의 다양성에 기인한다. 최영년은 『해동죽지』(1925)에서 공기놀이를 오조룡(五爪龍, 다섯 개의 발톱을 지닌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장면에 비유하여 ‘오란희(五卵戱)’란 멋진 한시로 풀어냈다.

一卵騰時四卵伏 한 알이 오를 때 네 알은 엎드리며
輪回乘降不從容 번갈아 오르고 내리는 모양 분주하다
手法看看無一錯 솜씨가 뛰어나 한 번의 실수도 없으니
此眞五爪弄珠龍 참으로 오조룡이 구슬을 어르는 듯하도다

위의 시처럼 공깃돌은 알(卵)에 비유되는데, 그 대상은 닭 혹은 새알을 의미한다.

공기놀이하는 아이들, 1990년대 / 사진: 강성복
공기놀이하는 아이들, 1990년대
사진: 강성복

이러한 관점에서 공기놀이에 수반되는 각 단계의 전후 맥락을 살피면 뚜렷한 서사적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다. 즉 공기놀이를 구성하는 큰 흐름에는 농경사회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갈무리되어 있다. 그것은 닭이 알을 낳고 그 알을 품어 병아리가 되고, 외양간과 담을 치는 것은 물론, 굴뚝을 후비고 밥 먹고 물 마시며 논·밭갈이하는 일상의 모습이 망라되어 있다. 특히 알을 의미하는 공깃돌의 상징성, 이에 조응(照應)하는 닭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된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요컨대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삶의 모습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포착해내어 놀이로 구성한 것이 공기놀이이다. 작은 공깃돌로 이처럼 다양한 의미를 담아내고, 아울러 끊임없이 새로운 놀이 방법이 등장한 것은 무형유산으로서 공기놀이가 지닌 무궁한 창의력의 소산이다.
공기놀이는 범세계적인 보편성을 띠고 있는 오락·유희이다. 서양에서는 그리스 로마시대에 존재했을 정도로 연원(淵源)이 깊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가 사랑의 여신 에로스에게 공기를 주었다는 기록이 있고, 시인 아리스토파네스(기원전 445~380)는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놀이”라고 했다. 또 폼페이 유적에서 나온 조각 그림에는 공기놀이 장면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로마시대에 널리 퍼진 듯하다. 서기 150년경 로마 유적에서 출토된 <공기놀이하는 소녀(The Knucklebone Player)>는 비너스 여신에 비견될 만큼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공기놀이하면 빼놓을 수 없는 그림이 있다. 네덜란드의 화가 피터르 브뢰헬(1528~1569)이 1560년 그린 <아이들 놀이(Children's Games)>이다. 화폭에는 마을의 광장과 거리에서 놀이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공기놀이를 비롯한 말뚝박기, 꼬리잡기, 굴렁쇠 놀이, 술래잡기, 팽이치기, 가마타기, 딱지치기 등 90여 가지 놀이가 자못 역동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대한제국기 중추원의관, 한성부판윤을 역임한 윤치호(尹致昊, 1866~1945)의 1892년 미국 유학 시절 일기에는 남녀 학생들과 함께 “카드놀이(Mumblepge)와 공기놀이를 하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라는 기록이 있다. 또 이듬해 일기에는 공기놀이를 너무 많이 해서 다리가 하루 종일 뻐근했다고 적었다. 공기놀이가 세계적으로 보편성을 지닌 까닭에 윤치호는 어린 시절의 경험을 살려 미국의 학생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놀 수 있었던 셈이다.

사방치기, 사방팔방 돌을 차며 뛰어노는 놀이

사방치기는 땅바닥에 여러 개의 칸(밭)을 그려놓고, 그 안에서 납작한 ‘목자’·‘막자’ 등으로 불리는 돌을 발로 차서 옮기며 이동하는 놀이이다. 모든 칸을 차례로 통과하면 정해진 공간에서 돌을 공중으로 띄워 받아오거나, 뒤로 던져 떨어진 칸을 차지하는 방식으로 겨루기가 전개된다. 사방치기의 어원은 동서남북 네 방위를 일컫는 ‘사방(四方)’과 ‘치기’가 결합된 말로, 납작한 돌멩이나 사금파리 따위를 사방으로 차면서 노는 놀이라는 뜻이다. 지역에 따라 ‘땅따먹기’, ‘망차기’, ‘목자치기’, ‘팔방치기’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사방치기는 범세계적인 놀이이다. 영어로는 ‘홉스카치(Hopscotch)’라 하는데, 1801년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한국의 사방치기는 미국인 선교사 제이콥 로버트 무스(1864~1928)의 『1900, 조선에 살다』에서 초견(初見)된다. 1893년 무렵 부인과 함께 조선에 온 무스는 20년 가까이 조선에서 살았다. 그는 내부자의 시선으로 대지 위에 발을 붙인 채 제도와 인습의 멍에를 지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의 현장을 관찰하여 애정 어린 기록을 남겼다. 특히 ‘남자들의 짧은 소년 시절’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 당시 소년들은 재미있는 놀이를 하면서 자신의 남동생이나 여동생을 등 뒤에 단단히 묶어서 업곤 했다. 한편 그들이 마을에서 목격한 놀이 가운데 사방치기는 매우 신기하고 놀라운 것이었다.

<공일 하루를 사방치기로!>, 매일신보, 1933년 12월 11일자 /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공일 하루를 사방치기로!>, 매일신보, 1933년 12월 11일자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대한민국 신문 아카이브
1990년대 사방치기 / 사진: 강성복
1990년대 사방치기
사진: 강성복
전주 한옥마을 사방치기, 2022 / 사진: 강성복
전주 한옥마을 사방치기, 2022
사진: 강성복

아이들이 하는 놀이 중에 사방치기가 있는데, 이 놀이를 하는 동안 등 뒤에 업힌 아기가 잠들기는 아마 힘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것이 아이들의 교육에 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소년들이 이 활동적인 놀이를 하면서 뛰고 넘을 때 그들 등에 업힌 아기들의 목은 정말 부러질 듯이 위아래로 흔들린다. 그러나 아기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이 보이고, 마치 솜털 침대에 누운 것처럼 잘도 잔다.

소년들이 아이를 업은 채 사방치기를 하는데, 활동적인 놀이를 하면서 뛰고 넘을 때 등에 업은 아기들의 목은 부러질 듯 아래위로 흔들리는데도 개의치 않고 마치 솜털 침대에 누운 것처럼 잠을 자더라는 것이다.
사방치기는 목표지점에 돌을 던져 넣는 투척(投擲), 한 발로만 뛰는 앙감질로 차고 나가는 동작, 그리고 뛰어서 착지하는 동작이 결합되어 있다. 이처럼 ‘던지기’와 ‘뛰기’는 달리기와 더불어 인간의 3대 운동능력의 하나이다. 이런 기본적인 운동능력은 근대에 새롭게 요구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원시시대부터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필요로 하던 것이다. 따라서 던지기와 뛰기를 바탕으로 한 놀이가 아이들의 세계에서 어떤 형태로든 행해졌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농목 장치기, 『동아시아의 놀이』, 민속원, 2004 | 김광언
농목 장치기, 『동아시아의 놀이』, 민속원, 2004 | 김광언
장치기, 나무공으로 겨루는 한국의 전통 하키

장치기는 막대기로 공을 쳐서 상대편의 문에 넣거나 구역 끝으로 보내는 놀이이다. 얼레공치기는 장치기의 경기도 남부지역의 용례(用例)이다. 막대기로 성기게 깎은 얼레공을 친다는 의미이다. 본래 장치기는 막대기를 뜻하는 ‘장(杖)’과 친다의 명사형인 ‘치기’가 합쳐진 말이다. 일명 ‘공치기’, ‘얼레공치기’, ‘편공치기’, ‘편장치기’, ‘방울재기’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공치기란 말을 타고 공을 쳐서 문으로 쳐넣는 격구(擊毬)에서 타구가 나왔고, 이것이 민간에 퍼지면서 장치기로 바뀐 것이다.
장치기는 지난날 청소년들 사이에서 성행했던 놀이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으레 마을마다 장치기를 하고 놀던 ‘공바탕(공마당)’이라 불리는 공터가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속언에 “얼어 죽으나 굶어 죽으나 마찬가지다”라는 말이 있다. 땔나무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이처럼 전기나 연탄이 보급되기 이전에 땔나무는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연료였다. 그래서 가을걷이를 마치면 겨우살이 준비를 위해 청소년들도 땔나무를 하러 다녔고, 이때 주로 하던 놀이가 장치기였다. 혹은 땔나무와는 관계없이 초겨울이나 봄에 넓은 마당이나 하천의 모래사장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승부를 겨루기도 하였다. 장치기는 서해의 절해고도인 외연도에서도 포착될 정도로 두루 전승되던 놀이이다.
1930년대 경기도 이천 율면 고당리의 농촌사회에 주목한 류달영의 「농촌조사연구」(1936)에서는 ‘장치기’를 일러 “원시적인 골프다. 마을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이다. 나무공을 끝이 약간 굽은 막대기로 치는 것으로 규칙은 하키와 같다”라고 했다.
경기도 수원·오산·화성 일대에서는 일제강점기 전국 ‘얼레공대회’가 개최될 정도로 크게 성행하였다. 1931년 2월 5일 동아일보에 실린 ‘우리 경기 봉화(烽火)의 부흥(復興), 체육계의 첫 시험 장구(杖球) 얼레공대회 개최’, ‘32개 팀 접전 끝에 두릉야학이 우승’ 제하의 기사는 당시 지역을 대표하여 참가한 어린 선수들의 뜨거운 열기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수원의 농촌계몽운동을 주도한 젊은 지식인들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겨울철 체력단련의 수단으로 얼레공치기를 적극 권장하였다. 특히 농촌계몽에 앞장선 박승극은 야학에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이 놀이를 보급하였으며, 수원청년동맹을 앞세워 전국얼레공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는 경기도 수원·오산·화성지역 야학생을 중심으로 장치기협회가 있는 대구를 비롯한 일부 지역을 망라하여 32개 팀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루었다. 엄동설한에도 불구하고 160여 명의 선수와 1천여 명의 관중이 운집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얼레공치기가 지역주민들로부터 얼마나 큰 관심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풀각시놀이, 고려 때부터 내려온 원초적 인형놀이

여러 종류의 풀로 각시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노는 여자아이들의 놀이이다. 일명 곤각시놀이, 각시놀이, 색시놀이, 물긋각시놀이, 신랑신부놀이 등으로 불렸다. 옛 문헌에는 ‘초인희(草人戱)’, ‘초인동녀희(草人童女戱)’, ‘초각씨희(草閣氏戱)’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풀각시놀이는 『고려사』에 ‘초인동녀희’가 소개될 만큼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이에 따르면 어린이들이 두 패로 나뉘어 각기 풀을 묶어 인형을 만든다. 그 크기는 세 살 난 어린애만 하다. 어린이들은 거기에다 비단옷을 입히고 계집종을 단장시켜 그 뒤를 따르게 한다. 금·은 구슬로 장식한 궤안(几案)을 놓고 음식을 차린다. 그렇게 서로 누가 더 아름답고 정교하게 만들었는지를 다투면서 시끄럽게 장난한다고 했다.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는 우리나라 소녀들이 보리 잎을 추려서 강낭(옥수수)대에 묶어 머리채를 틀어 올려 각시를 만들고, 거기에다 옷을 입히며 노리개를 달아주는 모습이 묘사된다. 또 이부자리도 갖추고 도토리 껍질로 가마며 식기 등도 만들며 살림하는 흉내를 내며 논다고 적었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초각씨희’라 하여 아가씨들이 풀을 한 줌 따다가 머리채를 만들고 무를 깎아 그것을 붙인 다음 붉은 치마를 입힌 것을 각시라 하는데, 이부자리와 머리병풍을 쳐놓고 그것을 희롱하는 것을 각시놀음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풀각시놀이는 여자아이들이 인형을 만들어 노는 인형놀이이자 소꿉놀이이다. 풀각시를 만드는 재료는 보릿대·옥수수대를 비롯해 각시풀·진풀·무릇 등이다. 봄철 또는 초여름에 풀이 자라면 긴 풀로 머리를 땋아 올리고 비녀를 꽂아 풀각시를 만든다. 인형의 형태는 만들기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풀을 젓가락으로 잘 감아 당기면 파마한 것처럼 곱슬거리기도 하고 쪽진머리나 댕기머리로 꾸미기도 한다. 또 종이나 천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는 경우도 있다. 제주도에서는 보릿대로 만든 곤각시의 속대를 위아래로 움직여 인형의 팔이 움직이는 모양을 만들고 마치 춤추거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풀각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앞산에는 빨간 꽃이요뒷산에는 노랑 꽃이요

빨간 꽃은 치마 짓고노랑꽃은 저고리 지어

풀 꺾어 머리하고그이딱지 솥을 걸어

흙가루로 밥을 짓고솔잎을랑 국수 말어

풀각시를 절 시키자풀각시가 절을 하면

망건을 쓴 실랑이랑꼭지꼭지 흔들면서

밥주걱에 물 마시네

아이들은 신랑 신부의 차림으로 인형을 만들어 신방을 차려놓고 결혼을 시키기도 하는데, 신부는 얹은머리를 만들고 신랑은 상투를 만들어 나란히 세운다. 그것을 바라보며 ‘곤각시 곤새서방’(신랑 신부)이 되었다며 그 솜씨를 자랑한다. 그리고 다시 풀을 뜯어내어 밥과 떡을 만들어 곤각시 곤새서방의 결혼을 축하하며 밥과 떡을 나누어 먹는 시늉을 한다.
풀각시놀이는 농경사회에서 여성의 역할을 모의하는 일종의 ‘역할 모방 놀이’이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 자연스레 여자의 역할을 인식하게 되고 꿈과 소망을 풀각시에 투영시켜 장차 다가올 미래의 삶을 놀이로 구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조선총독부 중추원조사자료, 「雜記及雜資料」(基2), 1924.
  • 강성복, 『부여의 민속놀이』, 부여문화원, 1994.
  • 강성복, 『금산의 민속놀이』, 금산문화원, 1994.
  • 강성복·박종익, 「‘전통적 놀이’의 범주와 분류체계 기초연구」, 『무형유산』제16호, 국가유산청 국립무형유산원, 2024.
  • 경기도박물관, 『경기민속지』Ⅲ(세시풍속·놀이·예술편), 2000.
  • 경희대학교 민속학연구소, 『서산민속지』(하), 서산문화원, 1987.
  • 국가유산청, 『한국무형유산종합조사 심화연구 전통적 놀이 분야 최종보고서 Ⅲ(아동놀이)』, 문화연구소, 2025.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예술사전』(민속놀이), 2015.
  • 과학원고고학 및 민속학연구소 민속학연구실, 『조선의 민속놀이』, 푸른숲, 1988.
  • 기호문화연구소, 『2022년 한국무형유산종합조사 목록수집 전통적 놀이 분야(서울·경기·전북) 최종보고서』, 2022.
  • 기호문화연구소, 『2023년 한국무형유산종합조사 목록수집·현장조사 전통적 놀이 분야(충남·충북) 최종보고서』Ⅰ, 2023.
  • 기호문화연구소, 『2023년 한국무형유산종합조사 목록수집·현장조사 전통적 놀이 분야(강원·제주) 최종보고서』Ⅱ, 2023.
  • 김광언, 『동아시아의 놀이』, 민속원, 2004.
  •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충청남도 편), 1975.
  • 문화공보부 문화재관리국,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경기도 편), 1978.
  • 조선의민속전통편찬위원회, 『조선의 민속전통』5, 조선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94.
  • 스튜어트 컬린, 윤광봉 역, 『한국의 놀이』, 열화당, 2003.
  • 제이콥 로버트 무스 지음, 문무홍 외 옮김, 『1900, 조선에 살다』, 푸른역사, 2008.
  • 村山智順, 『朝朝鮮の 鄕土娛樂』, 朝鮮總督府, 19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