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우리나라 줄다리기는 1969년부터 국가 및 시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다양한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다. 줄다리기는 민속 문화의 특성과 정신적 가치를 잘 표현하고 있는 대표적인 전통놀이이자 의례로서 문화적 다양성과 공유적 가치가 중시되어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 목록으로 선정되었다. 여기에 한국을 비롯해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과 함께 공동 등재되었다.
우리나라 씨름은 2017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다. 씨름은 한국의 세시 풍속이자 공동체 문화의 핵심으로 기술과 지혜를 겨루는 공정함 그리고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사회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 목록으로 북한과 최초로 공동 등재되었다.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함께하는 오락이자 풍흉을 점치는 점술 줄다리기는 마을이나 고을 공동체의 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누어 줄을 마주 잡고 당겨서 승부를 겨루는 민속놀이이다. 지역에 따라 줄당기기·줄땡기기·줄끗기·줄싸움·줄쌈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르며, 한자로는 삭전(索戰), 조리희(照里戱), 갈전(葛戰)이라고도 한다. 줄다리기는 풍농을 기원하고 공동체 구성원 간의 화합과 단결을 위하여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도작(稻作, 벼농사) 문화권에서 널리 연행되어 왔다.
줄다리기가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삼국시대에 풍년을 비는 농경 의식으로 행하여졌다고 본다. 15세기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처음으로 이 놀이에 대한 기록이 나오고 『오주연문장전산고』나 『동국세시기』에도 여러 지역의 줄다리기 풍속이 기록되어 있다. 예로부터 줄다리기는 대보름날에 노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단옷날과 한가위에 행하기도 하였다. 줄다리기는 남녀노소가 함께 참여하는 대동놀이로서 마을과 고을 단위에서 펼쳐지는 놀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소장: 국립민속박물관
정초에 행하는 줄다리기는 주술·종교적인 의미를 띠며 승패의 결과에 따라 당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기도 한다. 줄다리기의 편성은 지리적 범주에서 마을을 대개 동부와 서부로 나누고, 동부는 수줄을, 서부는 암줄을 만들며 역할을 분담한다. 그리고 줄다리기 전에 두 줄을 합치는 과정은 남녀의 교합을 상징하며 풍작을 기원하고, 줄을 당기고 승패를 가르면서 상호존중과 화합을 추구한다. 이로써 줄다리기를 할 때는 동부가 이기면 풍년이 들고 서부가 이기면 만선(滿船)이 된다고 믿어왔다. 또한 풍수지리설에 의존하여 용(龍)을 닮은 줄을 당기는 행위를 통해 마을의 재앙을 물리치고 평안과 대풍이 이루어지길 바랐으며, 가뭄에는 넉넉한 빗줄기가 쏟아져 내리기를 기원하였다.
아이들 장난에서 시작된 어른들의 기세 다툼 정초가 되면 아이들이 앞장서서 작은 줄다리기를 행하며 분위기를 돋운다. 동네 아이들이 또래끼리 모여 편을 갈라 짚을 모으고 작은 줄을 만들어 골목길에서 줄다리기를 한다. 어른들의 줄다리기를 모방하여 대장을 정하고 자기들끼리 세력 다툼을 하면서 제법 그럴싸한 줄판을 벌인다. 이를 ‘고삿줄다리기’ 또는 ‘골목줄당기기’라 한다. 아이들이 작은 줄다리기로 분위기를 잡고 나면 뒤이어 어른들이 큰 줄다리기를 준비한다. 먼저 마을이나 고을 단위의 특정한 경계선을 기준으로 동서의 편을 갈라 남성 편, 여성 편으로 나뉜다. 양편은 각각 대장(편장·줄패장)과 중장, 소장을 맡을 사람을 정하고 줄을 만들기 위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짚을 추렴한다. 줄다리기에 사용할 줄은 수줄과 암줄 두 가지를 만들고 각기 동편과 서편에서 제작한다. 두 줄을 연결할 때 쓰일 목나무(비녀목·곳나무·갯목)는 보통 참나무로 마련한다. 줄다리기의 줄은 왼새끼로 꼬아 점차 굵게 하여 가닥줄을 만들고, 다시 가닥 줄을 여러 겹 꼬아 원줄(몸줄·용줄)을 만든다.
출처: 국가무형유산 공개행사 자료
제공: 기지시줄다리기보존회
줄다리기를 할 날이 밝으면 양편은 각기 줄고사를 지낸다. 술잔을 올리고 축문을 낭독하며 사고 없이 행사가 진행되도록 기원한다. 지역에 따라 양편의 줄을 연결할 때 고사를 올리는 경우도 있다. 줄고사가 끝나면 풍물패를 앞세우고 줄을 메고 줄다리기 장소로 이동하는데 여기는 중장년의 남자들이 참여한다. 이때 ‘줄다리기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줄 위에는 갑옷과 투구로 무장한 대장이 올라타 진두 지휘를 하고 그 뒤로 중장, 소장이 보좌한다. 행렬에는 장군기를 앞세우고 여러 형태의 만장기와 영기가 따르고, 그 뒤를 이어 마을 사람들이 춤을 추며 뒤따른다.
줄다리기를 놀 장소에 도착하면 양편이 줄을 길게 늘어놓고 대치한다. 소리를 지르고 깃발을 서로 부딪치며 기세 다툼을 하기도 한다. 이윽고 줄다리기를 위해 암줄에 수줄을 끼우면서 남녀 교합 상황에 빗대 서로 음담을 주고받고 시간을 끌며 한바탕 실랑이가 벌어진다. 마침내 줄목이 끼워지고 징 소리의 신호에 따라 줄 당기기가 시작되면 풍물패가 신명을 돋우고 양편은 서로 힘을 다하여 줄을 잡아당긴다. 승패가 결정되면 줄다리기를 끝낸 줄은 지역에 따라 마을 입구의 액막이돌[防厄石]이나 석간(石竿), 당산, 신목(神木) 등에 감아두거나 썰어서 논에 거름으로 넣기도 한다. 이긴 쪽의 줄을 가져가 거름에 섞으면 농작물이 잘 여물고, 지붕에 올려놓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신(俗信)이 있다. 또 소에게 먹이면 소가 잘 큰다고 여겼고, 고기를 잡으러 갈 때 가지고 가면 풍어가 든다고 믿어 서로 다투어 한 움큼씩 잘라간다.
상대를 끌어당겨 우리 쪽으로 품어 뭉치기 공동체 구성원들은 줄다리기를 연행함으로써 사회적으로 결속하며 연대감을 갖는다. 줄다리기는 반대 진영을 서로 자기 쪽으로 당겨서 포용하려는 행위를 함으로써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공동체의 사회 통합을 이루는 데에 본질이 있다. 줄다리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무리할 때까지 결속과 통합은 지속된다. 줄의 재료인 짚을 추렴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줄을 만드는 과정에서 공동의 노력으로 협동하고, 줄을 당기면서 양편이 서로 뭉쳐 결속을 다지게 된다. 비록 편을 갈라 싸움을 벌이지만, 다 같이 풍년을 염원하면서 공통의 가치를 진작하고 정체성을 고취시킨다.
오늘날 줄다리기는 지역사회의 전통 계승과 문화 보존을 위한 목적성과 오락을 통한 즐거움을 충족시키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다양한 지역에서 줄다리기가 국가무형유산과 시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전승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창녕 영산 줄다리기와 당진 기지시 줄다리기 등 국가유산과 삼척 기줄다리기, 밀양 감내 게줄당기기, 의령 큰줄땡기기, 남해 선구줄끗기 등의 도지정 유산이 있다.
일대일로 맞서 겨루는 기예이자 대중 경기 씨름은 두 사람이 다리와 허리에 맨 샅바(천으로 만든 끈)나 바지 허리춤을 잡고 힘과 기술을 사용하여 상대를 쓰러뜨리는 경기로 우리나라 전통 기예(技藝)의 한 가지이다. 주로 단오, 추석, 백중 등의 명절놀이로 전승되었다. 씨름은 서로 버티고 힘을 겨룬다는 뜻의 ‘씨룬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한자어 각저(角觝)·각기(角技)라는 명칭에서 보이듯이 ‘맞닥뜨려 다툰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립민속박물관
씨름은 여러 사람이 무리를 이루고 살기 시작한 이후 생존을 위한 몸짓에서 비롯되었다고 짐작하고 있다. 고구려 초기에는 씨름이 무예의 하나로 채택된 것으로 보인다. 4세기경 고구려 고분인 각저총(角抵塚) 주실(主室) 석벽에 두 사람이 맞붙어서 씨름하는 모습과 심판하는 사람이 서있는 그림이 있다. 또한 5세기 무렵에 쌓은 장천 1호 무덤에도 씨름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를 통해 당시의 씨름은 두 사람이 즐기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심판이 주재하는 공식적인 경기였음을 알 수 있다.
씨름에 대한 기록이 우리나라 문헌에 최초로 나타난 것은 『고려사』로서, 여기에 충혜왕 때 왕이 용사들에게 씨름을 시키고 친히 구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에 와서는 『세종실록』, 『명종실록』 등에 씨름에 관한 기록이 있다. 또 이순신의 『난중일기』에도 씨름을 하거나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다. 유득공의 『경도잡지(京都雜誌)』 권2와 『동국세시기』의 단오 대목에도 씨름 기록이 있다. 특히, 조선 후기 단원 김홍도가 그린 씨름에 관한 풍속도(각력도)와 기산의 풍속도로 볼 때 당시 조선에서는 씨름이 일반화되었고 매우 대중적인 경기였음을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극장 단성사에서 씨름대회가 열렸다. 이후에 씨름대회가 연례적으로 개최되면서 씨름이 경기화 되는 양상을 보인다. 1983년에 이르러 씨름은 프로 스포츠로 출범하였고, 오늘날의 관람 문화가 정착하게 되었다.
나이를 높여가며 상대도 지워내는 승벽내기 씨름판은 주로 강변의 모래사장이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터, 마을 안의 공터 등에 마련되었다. 예전에는 씨름판이 설정되면 대회를 무사히 치르게 해달라고 고사를 올렸고, 시합 전에 씨름판의 정화를 위하여 소금을 뿌리기도 했다고 한다. 씨름판 주변에는 온갖 장사꾼이 모여들고, 갖가지 난전(노점)이 벌어진다. 씨름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공동체의 구성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애기씨름(아기씨름)에서 시작하여 점차 나이를 높여 가며 청년들의 총각씨름(중씨름), 장년들의 상씨름으로 구분하여 차례로 진행된다.
씨름의 승패 가름은 상대방을 자빠뜨리는 것으로 결정된다. 허리와 다리에 감은 샅바를 잡고, 서로 ‘씨루다가’ 발을 제외한 몸의 일부가 땅에 먼저 닿은 사람이 지는 것이다. 씨름은 지역과 시대에 따라 규칙이 조금씩 다르게 전승되었다. 씨름을 하는 방법으로는 보통 선씨름, 띠씨름, 바씨름 등으로 구분하였다. 이 중 선씨름은 서서 하는 씨름이고, 띠씨름은 허리에 두른 띠를 두 손으로 잡고 하는 씨름이며, 바씨름은 오른팔과 다리에 샅바를 감고 겨루는 씨름이다. 여기서 샅바와 이를 잡는 손의 위치에 따라 왼씨름과 오른씨름으로 나눈다. 왼씨름은 샅바를 오른쪽 넓적다리에 매고 상대방이 이를 왼손으로 잡고 겨루는 씨름을 말하고, 오른씨름은 왼쪽 다리에 맨 샅바를 상대가 오른손으로 잡고 겨루는 씨름을 일컫는다. 현재는 왼손으로 상대방의 다리샅바를 잡고, 오른손으로 허리샅바를 잡는 왼씨름이 주로 행해지고 있다. 씨름의 기술은 크게 손기술, 발기술, 허리기술이 있다. 손기술에는 앞무릎치기, 오금걸이 등이 있으며, 발기술에는 안다리걸기, 밭다리걸기(바깥다리 걸기), 밭다리후리기 등이 있다. 허리기술에는 배지기, 오른배지기, 맞배지기, 자반뒤지기 등이 있다.
예전의 씨름에서는 이긴 사람이 물러나지 않고 질 때까지 계속해서 상대를 바꿔가며 싸우는데, 이를 ‘지워내기’라 한다. 이때 마지막까지 싸워 이긴 사람을 ‘판막음’이라고 불렀다. ‘판막음’이 된 사람은 푸짐한 부상과 함께 응원군들에게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승리의 영광을 누렸다. 풍물을 앞세워 마을로 돌아가면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큰 잔치판을 열어 환대해 주었다. 고려나 조선 시대에는 임금이 씨름에 이긴 사람에게 상을 주었다. 전통적으로 씨름에서 이긴 장사에게는 황소 한 마리를 주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씨름이 스포츠가 되고 프로팀이 생기면서 상품 대신 상금을 주고 있다.
출처: 공유마당
소장: 부경근대사료연구소
사기를 진작시키는 공동체의 응원과 유대감 삼국시대에 씨름은 상무 정신을 고양하고 기초 체력을 함양할 수 있는 요소로 중요하게 간주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씨름을 각저희(角觝戲)라 불렀으며 대회 형식의 공연이나 행사로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는 씨름이 관람용 경기로 펼쳐지며 기술의 발전을 가져왔고 씨름의 저변 확대도 이루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씨름은 용사(勇士)라는 특별한 무사적 기량을 갖춘 집단이 행하기도 했다. 이는 씨름이 주요한 병술(兵術)로 쓰이며 군인이 갖추어야 하는 중요한 기예 중의 하나로 중시되었다는 의미이다. 조선 시대에 씨름은 유희 종목으로 자리매김하며 왕이나 사신 대접을 위해 놀기도 하고, 민간 놀이로 전승되기도 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씨름꾼은 병사를 칭하는 용사 대신 단순히 힘쓰는 구실을 하는 역사(力士)라 불렸다.
씨름은 가장 오래된 민속놀이의 하나로, 사람과 사람이 맨손으로 직접 부딪치며 승부를 겨루는 놀이이다. 농업을 중시했던 한국 사회에서는 주로 농사의 절기와 관련하여 씨름판을 벌여왔다. 씨름은 여러 사람이 참여하는 축제 전통 속에서 오래도록 전승된 가장 대표적인 대동놀이이다. 노동에 지친 몸과 정신적인 긴장을 풀기 위해서 씨름을 즐겼고, 마을과 고을 대항의 씨름판을 벌여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였다. 오늘날에도 공연의 형식을 빌려 씨름판이 열리고 있으며 관객들은 씨름꾼들에게 커다란 호응을 보내고 있다.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김광언, 『한국의 민속놀이』, 인하대학교출판부, 1982.
- 김효경, 「씨름의 사회사」, 『한국민속학』 제37집, 한국민속학회 2003,
- 임동권, 『한국세시풍속』, 서문당, 1972.
- 최인학, 「줄다리기에 대하여」, 『한국민속학』 제6집, 민속학회, 19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