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새벽이 오면 뜨는 해를 맞고 해가 지면 달을 바라보며 ‘하루’라는 단위 속에 살아간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모여 ‘달’이 되고, 또 ‘한 해’가 된다. 언뜻 숫자의 변화로 보이지만 여기에는 아주 복잡한 셈법이 숨어있다. 하루를 셈하는 것은 해의 움직임이고, 달을 계산하는 것은 달의 차고 기욺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하루와 한 달은 기준이 다르다. 이른바 하루는 태양력의 산물이고, 달은 태음력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우리의 달력은 태음태양력이다.
우리의 삶은 단순한 날짜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 입춘에서 입하로, 입추로 그리고 입동까지 계절이 바뀐다. 때마다 산과 들의 모습이 변하고, 철마다 들판의 식물들이 색을 달리한다. 그 순간마다 우리는 시각의 변화와 계절을 느낀다. 무더운 여름철에 힘겨워하다가도 어느새 다가온 가을 기운을 느끼며, 매서운 한겨울에 몸을 떨면서도 살짝 이는 봄의 기운을 알아차린다. 그렇게 절로 “때가 이르렀구나!”라고 감탄하며, 새삼 전통의 달력이 지닌 과학성에 놀란다. 이것이 옛사람들이 지녔던 그리고 현대인들의 무의식 속에 담긴 세시(歲時)의 감각이 아닐까.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세시(歲時)란 한 해를 의미하는 ‘세(歲)’와 시간을 뜻하는 ‘시(時)’가 합쳐진 말이다. 큰 틀에서 ‘한 해’를 기준으로, 한 해가 지속되는 가운데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특정한 시점을 뜻한다. 즉 일상의 시간 속에서 특별한 날이라 여겨지는 시점들이다. 자연의 순환과 이에 따르는 인간의 생활 그리고 공동체의 의례가 서로 맞물려 형성된 특별한 시점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운행되는 자연의 시간을 24개로 나눈 24절기가 있고, 달과 날의 숫자가 동일하게 겹친 날들을 중시하는 중수명절(重數名節)이 있다. 3월 3일 삼짇날, 5월 5일 단오, 7월 7일 칠석, 9월 9일 중양과 같은 날들이다. 이와 더불어 달의 움직임에서 시작과 끝, 중간의 시간을 강조하는 삭망명절(朔望名節)이 있다. 정월 대보름, 이월 초하루, 칠월 백중, 팔월 한가위와 같은 날들이다. 주로 보름달을 중심으로 한 날이지만 초하루 역시 특별한 날의 기준이 되어 민속 의례가 행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시간 인식은 자연적 시간에서 인문적 시간을 구분하는 한편, 자연의 질서 속에 사회의 질서를 구현한다. 여기에 인간의 감정과 신념이 함께 엮인 것이 세시의 시간 개념이다. 따라서 세시는 단순한 ‘시간 구분’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생활 문화의 상징적 길잡이이다. 세시는 해마다 되풀이되고 특별한 시간이 주기적으로 되돌아오는데, 그때마다 특별한 행위를 함으로써 공동체의 안정성을 유지시키는 시간 장치이다. 이른바 주기성, 의례성, 공동체성을 갖춘 문화적 장치이다.
세시는 자연의 흐름과 자연이 주는 신호에 순응하려는 인간의 긴 호흡이다. 다음은 정학유의 <농가월령가> 정월령의 첫 구절을 현대어로 옮긴 것이다.
“정월은 이른 봄인데 입춘 우수의 절기이다. 산속의 골짜기에 얼음 눈이 남았으나 들판에는 풍경이 변하였도다. …(중략)… 한 해의 계획이 봄에 있으니 모든 일을 미리 준비하라. 만약 봄에 때를 놓치면 한 해를 마칠 때 매우 딱해진다네.”
입춘과 우수가 자리 잡은 1월은 빙설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봄의 물색이 돋아나니 미리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자연의 운행을 인지하고 이에 걸맞은 행위를 함으로써 자연에 순응하고 협응(協應)하며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는 인문적 삶을 살라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오랜 세월 동안 특별한 시간들에 대한 인식과 이에 대응하는 행위는 의례와 놀이로 나타났다. 둘은 각각인 듯하나 하나이다. 그래서 이를 ‘의례 놀이’라 일컫고, 일반적으로 ‘세시놀이’라 부른다. 물론 세시놀이 중에 의례성을 벗어난 것들도 있지만, 이들 역시 본래 의례에서 출발했다. 정월대보름의 달맞이와 다리밟기, 달집태우기, 단오의 그네뛰기, 추석의 강강술래는 놀이이고 풍속이다. 이들은 모두 자연의 변화를 기억하고, 시간을 삶의 축제로 바꾸어 놓은 지혜의 산물이다. 따라서 세시야말로 곧 ‘생활의 질서이자 정서의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질서와 리듬에 맞춰 세시놀이를 즐길 때, 때로 사회적인 분위기와 규율에서 해방된 여성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 수 있었다.
세시 풍속을 비롯하여 놀이를 다룬 문헌은 『경도잡지』(18세기 후반), 『열양세시기』(1819), 『동국세시기』(1849) 등이 대표적이다. 문헌의 기록에서 보듯, 여성의 놀이 중에 주목되는 대동놀이는 강강술래, 놋다리밟기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대규모 집단 여성의 연대로 만들어 낸 장엄한 서사를 구현한 세시놀이이다. 또한 집단 놀이는 아니지만 소규모의 여성들이 모여 노는 널뛰기·다리밟기·그네뛰기와 같은 여성의 세시놀이가 있다.
하나. ‘우리’가 만드는 축제의 장, 강강술래: 연대, 해방 강강술래는 전라도 남해안에서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원무이다. 정월대보름이나 한가위 같은 큰 달이 뜬 밤이면, 마을의 여자들이 손에 손을 잡고 둥근 원을 만들어 “강강술래~” 하고 후렴을 부르며 걷고 춤을 췄다. 지금은 유네스코가 인정한 인류무형유산이지만, 그 뿌리는 오랜 세월 우리와 함께 한 소박한 민속놀이였다.
강강술래의 시작은 단순하다. 둥근 원을 그리며 천천히 걷는 것. 하지만 노래가 이어지고 발걸음이 빨라지면 원은 커졌다가 작아지고, 대형도 변하며 놀이가 한층 흥겹게 달아오른다. 그러다 보면 ‘남생아 놀아라’, ‘고사리꺾기’, ‘청어엮기’ 같은 재미난 놀이가 연달아 이어지며 하나의 큰 마당을 펼쳐 낸다. 그 중심에 앞소리꾼이 서서 흐름을 조절하고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마치 즉석에서 한 편의 춤과 노래 그리고 놀이가 엮여 만들어지는 작은 축제와 같다.
이 놀이의 주체인 여성들이 집단적으로 힘을 모아 하나의 원을 완성하고 동시에 움직이는 방식은 여성 공동체 내부의 연대감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강강술래는 여성 연대를 통한 여성들의 자율적 축제 공간이고 행위이다. 남성 중심의 일상에서 벗어나 여성들이 연대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감정을 풀어내던 소통의 장이다. 정서적 해방 공간에서의 놀이인 것이다.
<널뛰기(跳板戱, ノルテギ-)>
소장: 부산광역시립박물관
둘. ‘너와 나’의 도전, 널뛰기: 건강, 해방, 경쟁, 협력 널뛰기는 여성의 대표적인 정월 놀이이다. 물론 단오나 추석에도 뛴다. 집단이 아닌 소규모의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즐긴 놀이로 하체 근력 단련과 유지에 도움이 되는 놀이였고, 외부 활동에 제약이 많았던 여성들에게 신체적, 정신적 해방감을 느끼게 해준 놀이였다. 한자로는 초판희(超板戲, 『경도잡지』), 도판희(跳板戱, 『해동죽지』), 답판희(蹋板戲, 『낙하생집』), 약판희(躍板戲, 『유재선생집』) 등으로 다양하게 적었다. 모두가 “널(板)을 차고 밟으며(蹴·蹋) 높이 넘고(超) 뛰는(跳·躍) 놀이”라는 상하 운동성을 강조하는 명칭이다. 우리말 ‘널ᄯᅱ엄’(『한불ᄌᆞ뎐』, 1880), ‘널ᄯᅱ기’(『물명고』, 『해동죽지』)를 그대로 옮긴 놀이 명이다. 오늘날의 단어와 큰 차이가 없고, 말 그대로 ‘널’을 뛴다는 뜻이다.
실제로 널뛰기는 긴 널빤지의 중간을 받침으로 괴어 놓고 양쪽 끝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번갈아 뛰어오르는 놀이인데, 앞뒤로 흔들리는 그네와 달리 수직적인 상승과 하강의 움직임이 뚜렷한 놀이이다. 단순하면서 나름의 쾌감과 재미를 주는 탓에 전국적인 여성들이 즐긴 놀이였다. 널뛰기는 두 사람이 박자와 타이밍을 맞춰야 하므로 호흡과 협력이 중요하다. 서로의 뛰는 힘을 받쳐 올려주는 쌍방향 놀이적 성격이 강하다. 상호 경쟁을 주도하면서도 상대와 협력하는 놀이의 특징을 갖는다. 이 때문에 장장식(2025)은 이어령의 용어를 빌려 “경쟁하되 협력해야 하는 코피티션(co-petition)의 놀이”라 정의했다.
널을 뛰다 보면 널에서 떨어지는 예기치 않은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널뛰는 사람이 잡을 수 있는 적당한 높이에 줄을 늘여놓기도 했다. 1886년부터 1889년까지 선교활동을 했던 길모어(G. W. Gilmore)는 줄을 잡고 널을 뛰는 모습을 목격하고 이를 기록하였다(『서울풍물지』). 이런 놀이 장면을 포착한 시각 자료가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사진엽서이다. 대표적으로 사진엽서 <널뛰기(跳板戱)>(부산광역시립박물관)를 들 수 있다. 물론 줄이 등장하지 않은 널뛰기를 묘사한 엽서도 찾아볼 수 있다.
널뛰기가 행해지는 시기는 정월이 분명하다. 하지만 5월 단오나 7월 백중, 팔월 한가위에도 놀았다. 함경도 북청에서는 정월은 물론 한식·단오·추석 등 중요 명절에 놀았다. 그만큼 모든 여성의 사랑을 받은 놀이라는 의미이다. 『조선의 향토오락』(1941)에서는 널뛰기를 하는 곳이 전국 236지역이라 기록하고 있다. 이에서 널뛰기에 대한 여성들의 애정을 짐작할 수 있다.
셋. 허용된 밤의 특별한 행위, 다리밟기: 해방, 연대, 경쟁, 협력 다리밟기(踏橋)는 정월대보름 밤에 남녀노소가 다리를 밟아 건너는 의례이자 놀이이다. 남녀노소의 놀이이지만 여성들의 해방과 밤놀이를 허용한 특별한 날의 민속이라는 점에서 대보름날은 여성의 날이고, 답교 역시 여성의 놀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처럼, 다리[橋]와 다리[脚]가 같은 데서 비롯된 민속이다. 다리[橋]를 밟으면 한 해 동안 건강한 다리(健脚)로 지내고, 한 해의 액을 면한다는 생각이 반영된 놀이이다. 『열양세시기』에서는 대보름날 밤에 열두 다리를 건너는데, 이는 일 년 열두 달의 액을 막는 것이라 여겼다. 또한 재상과 귀인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나오지 않은 이가 없다고 했고, 가마나 말도 타고 나오고 지팡이도 짚고 나와 거리를 메운다 했다. 여기서 다리밟기는 남녀노소가 모두 즐긴 놀이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다리밟기는 다른 놀이와 달리 여성들의 자유로운 외출이 허용된 놀이라는 점에서 여성에게 특별한 놀이였다. 특히 안동의 놋다리밟기에서 다리밟기의 여성성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놋다리밟기에 대한 기록은 『동국세시기』를 참고하였다. 안동 풍속에 늙고 약한 촌부인들이 성밖으로 나와 물고기를 길이로 쭉 꿴 형상으로 앞뒤로 길게 늘어 엎드리고, 좌우로 부축받은 어린 여성이 엎드린 여성들의 등 위로 왔다 갔다 하면서 어린 여자가 “이것이 무슨 다리인가?”라고 선창하면, 엎드린 여성들이 “청계산 놋다리이지”라고 답한다. 이렇듯 큰길을 다니듯이 동서로 왔다 갔다 하면서 놀다가 밤이 되면 그친다. 강강술래처럼 놋다리밟기는 여성의 연대와 공동체의 결속에 의해 이루어진 서사의 놀이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넷. 하늘을 향한 몸짓의 놀이, 그네뛰기: 해방, 응원, 경쟁 그네뛰기는 성춘향과 이몽룡의 만남에서 보듯이 단옷날의 대표적인 여성 놀이이다. 단오가 되기 전 마을 남성들은 여성들이 놀기에 좋은 장소와 나무를 골라 그네를 매준다. 오로지 여성들만의 모임과 놀이를 위함이다. 그네뛰기는 남성의 배려에 기반한 여성의 놀이라는 점에서 다른 놀이와 차이를 보인다.
그네뛰기는 그네는 타고 노는 놀이인데, ‘그네타기’라 부르지 않는다. 타는 것과 뛰는 것은 동작의 성격과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굳이 영어로 표현하면 ‘swing’과 ‘riding’에 가깝다. ‘뛰기’는 그네를 탄 사람이 주체가 되어 그네를 제어하는 놀이이다. 오로지 그네를 뛰는, swing하는 행위만이 존재한다. 올라타는 행위보다 놀이자가 구르는 행위인 ‘뛰기’에 그네뛰기의 매력이 있다.
그네뛰기는 한자로 ‘추천(鞦韆)’이라 하고, 우리말로 ‘글위, 글위 ᄠᅳ기’(『두시언해』), “鞦 글위(근) 츄 韆 글위 쳔”이라 한 『훈몽자회』(1506)와 “打鞦韆 그리 ᄯᅴ다”라 한 『동문유해』(1748)와 『몽어유해』(1768)에서처럼 ‘글위’ 또는 ‘그리’를 뛰는 것이다. 그네의 옛말인 글위, 그리는 최남선의 주장처럼 ‘끈[繩]’을 가리키는 말이니, 그네뛰기는 끈을 타고 구르는 놀이이다.
우리나라의 그네는 주로 단옷날에 뛰었다. 한양에서도 그네 뛰는 장소로 동관왕묘 앞, 사직동 광장, 삼청동 등이 유명했다. 오늘날 법성포단오제나 강릉단오제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여성 놀이로 등장한다. 그네를 탈 때 누가 더 높이 올라가느냐를 계측하기 위해서 그네가 닿을 만한 곳에 있는 나뭇가지나 꽃가지를 고저표(高低標)로 정해 놓고 그네를 굴러 앞으로 나아가 그것을 발끝으로 차거나 입에 무는 방법을 썼다. 이와 유사한 전통 방식이 방울차기이다. 그네 앞쪽에 방울줄을 높이 달아놓고 그것에 닿도록 하는 방법인데, 밑에서 조종하여 방울줄을 점점 높여 감으로써 최고 높이를 측정한다. 이런 방식은 성현(1439~1504)의 <추천사>에서도 잘 묘사되어 있다. “서로 당기는 그넷줄은 흡사 나는 용 같고 / 방울 소리는 반공중에 짤랑짤랑 울리어라.”
하지만 홀로 뛰는 높이뛰기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쌍그네(어우렁그네)도 있고, 줄을 꽈서 푸는 방식으로 노는 ‘꽈배기 뛰기’가 있다. 일종의 묘기와 같다. 광혜원을 설치하고 현대 의학을 가르친 알렌(H. N. Allen, 1858~1932)은 『조선견문기(Things Korea)』(1908)에서 “어른들은 큰 그네를 매우 익숙하게 뛴다. 때때로 그네 하나에 세 사람이 붙어서 같이 뛰는 때도 있다”고 기록하였다. 그네가 여성 놀이로 여겨지지만 성인 남성도 익숙하게 잘 뛰었고, 세 사람이 타는 삼중 그네까지 행해졌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그네뛰기는 1~2인이 직접적인 행위자가 된다. 물론 때로는 3인이 놀기도 한다. 그네뛰기 또한 신체적, 정신적 해방감을 만끽하며 서로 응원하고 경쟁하는 여성 집단의 놀이이다. 그러므로 이 또한 공동체의 연대, 협력과 경쟁이라는 의의를 갖는다.
앞에서 언급한 여성의 세시놀이는 전통사회의 성리학적 질서 속에 존재했던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해방과 연대의 결과이다. 강강술래, 널뛰기, 다리밟기, 그네뛰기 등의 전통 여성놀이는 해방과 여성 공동체의 연대라는 점에서 나름의 상징성을 구현해 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의미가 있다”는 노랫말처럼 과거를 보는 오늘의 시선에서도 과거 여성의 세시놀이는 여전히 중요한 문화자산이다.
세시놀이는 단순한 과거의 풍속이 아니다.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온 한국인들의 삶을 담은 문화적 산물이다. 세시놀이는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는 지혜, 서로를 배려하며 함께 살아가려는 공동체 정신, 그리고 계절마다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성찰의 시간 등과 연관되어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세시와 세시놀이가 현대 사회 속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계승되며, 우리 문화의 깊이와 가치를 더해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