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따라 걷는 설화와 자연의 길

칼럼 | 설화와 자연의 길

국가유산에 방문하기 전 읽어보시면
더욱 깊이 있고 풍성한 관람을 즐길 수 있는 전문가 칼럼.
4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되는 ‘이달의 방문코스’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8월의 방문코스는 <설화와 자연의 길>입니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독특한 자연환경을 가진 제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어우러진 신비로운 설화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8월의 테마 칼럼에서는
신화와 구비문학 콘텐츠를 연구, 집필해오신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조현설 교수님께서
제주의 자연이 품고 있는 옛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설화와 자연이 만나는 길,
그 특별한 이야기의 여정으로 함께 떠나 볼까요?



 자연이 있고 나서 사람이 생겼다. 자연 속에서 사람이 생존하려면 자연을 이해해야 한다. 자연을 이해하려고, 이해를 통해 얻은 정보를 전달하려고 사람이 만든 것이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야기 속에는 자연에 대한 지식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담겨 있다.

 오늘날 우리가 옛이야기라고도 부르는 것이 ‘설화’다. 설화 가운데서도 자연물과 연결된 것은 신화나 전설이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지만 신화에는 신들이 만든 천지만물이 있고, 전설은 인간들의 이야기지만 전설에는 인간들이 깃들어 사는 산과 바위, 나무와 동식물이 있다. 제주의 자연과 신화·전설의 관계도 다르지 않다. 탐라국이라는 고대국가의 영토였던 제주 땅에서 만날 수 있는 자연물마다 신화와 전설이 깃들어 있다. 국가유산 방문 코스 ‘설화와 자연의 길’에 담긴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하나씩 만나보자.



▲ 제주 서귀포 산방산

 옛 탐라 사람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섬을 설문대할망이라는 여신이 만들었다고 상상했다. 거인인 설문대할망이 치마에 흙을 담아다가 부려 놓으니 제주 섬이 되었고, 옮기는 중에 찢어진 치마 틈으로 솔솔 샌 흙이 360여 개의 오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한라산 백록담을 제외하면 제주의 봉우리는 다 오름인 셈이다. 
 오름 가운데 제일 특이한 오름이 산방산과 성산일출봉이다. 산방산은 산 중턱에 방처럼 생긴 굴이 뚫려 있어서 지어진 이름인데, 설문대할망의 창조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을 베고 잠을 자려고 하는데 머리가 배겨서 중앙을 한 움큼 퍼내 던진 것이 산방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전설은 때로는 화가 나서, 또는 깔고 앉기가 불편해서 떠낸 것으로 변형되기도 하는데 산방산의 모양이 백록담처럼 움푹 파인 데서 생겨난 신화이고 전설이다. 
 산방산 유래의 전설은 주인공이 변하기도 한다. 옛날 어떤 포수가 한라산에서 사냥하다가 실수로 산신이나 옥황상제의 엉덩이를 쏘게 되었는데 화가 난 산신 또는 옥황상제가 화가 나서 한라산 봉우리를 뽑아 던졌더니 날아가 산방산이 되었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 제주 성산일출봉 천연보호구역

 산방산의 반대편 동쪽에 있는 오름은 성산일출봉이다. 마치 큰 성을 쌓은 것과 같은 모습이라 해서 성산, 해맞이로 유명해서 일출봉이라는 이름을 얻은 곳인데 여기에도 설문대할망 신화가 얽혀 있다. 성산일출봉의 우묵한 분화구는 우도를 빨래판 삼아 빨래하던 설문대할망이 빨랫감을 담아 두던 바구니였다는 전설, 촛대처럼 불뚝 솟은 촛대바위는 ‘설문대할망의 등경돌’로도 불리는데 설문대할망이 바느질할 때 등잔(등경)을 올려놓던 받침대라는 전설이 그것이다.



▲ 제주 선흘리 거문오름

 제주 오름 가운데에는 천연기념물일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거문오름이 있다. 검은오름·검은이오름·거문악(巨文岳, 巨門岳)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흙과 돌이 유난히 검어서 얻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에 해당하는 고유어가 ‘검/감/곰’이라는 데서 착안하여 ‘신의 오름’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거문오름에는 검은 사슴신이 있어 주변의 조천읍·구좌읍·성산읍을 지켜주었다는 전설이 있고, 거문오름을 이루는 아홉 개의 봉우리를 아홉 마리의 용이 가지고 놀았다는 구룡농주(九龍弄珠)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 제주 만장굴

 한편, 거문오름이 만들어질 때 용암이 경사면으로 흘러 내려가면서 많은 용암동굴을 만들었다. 뱅뒤굴과 만장굴, 김녕굴과 당처물동굴은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용암동굴인데 그 가운데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만장굴이 관광지로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본래 김녕굴과 이어져 있던 만장굴은 옛날에는 서련 판관에 얽힌 뱀신앙으로 더 유명했다.
 구좌읍 김녕리 동쪽에 큰 굴이 있었는데 매년 처녀를 희생제물로 받는 큰 뱀이 살아 뱀굴, 사굴이라고 불렀다. 마을 주민들은 이 사신(蛇神)에게 처녀를 바치는 큰굿을 해마다 해야만 했다. 하지 않으면 뱀신이 노해 큰 가뭄을 불러와 흉년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는 해마다 처녀를 구하는 것이 큰 문제였고, 양반집이나 부잣집에서는 딸을 내놓지 않았기에 늘 가난한 하층민들이 희생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조선 중종 때 서련(徐憐)이 판관으로 제주에 부임해 왔다. 뱀굴에 대한 소문을 들은 서 판관은 음사(淫祀)라고 화를 내며 제물을 마련하여 큰굿을 하라고 명하고는 스스로 군졸을 거느리고 뱀굴에 나아갔다. 굿이 시작되어 한참 되었을 때 정말로 어마어마하게 큰 뱀이 나와 술과 떡을 먹고 처녀를 잡아먹으려고 하였다. 그때 서 판관이 군졸과 함께 달려들어 창검으로 뱀을 찔러 죽였다. 
 이를 본 심방은 ‘빨리 성안으로 파하되 무신 일이 있어도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서 판관은 말을 달려 무사히 성의 동문 밖에 이르렀다. 그때 군졸 한 사람이 외쳤다. “뒤에서 피비가 옵니다.” 서 판관은 “무슨 비가, 피비가 오는 법이 있느냐?”라면서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돌아보자마자 서 판관은 그 자리에 쓰러져 죽는다. 죽은 뱀의 피가 하늘에 올라가 비가 되어 서 판관의 뒤를 쫓아왔던 것이다.
 이 김녕사굴 전설은 처녀를 희생물로 삼는 희생제를 떠올리게 한다. 조선시대에 제주의 무속은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져 조정과 사대부들의 억압의 대상이 되었다. 서련 판관도 뱀굴에 처녀를 바치는 굿을 타파하려고 뱀을 죽인 것이다. 그런데 서 판관은 결국 금기를 지키지 못해 뱀의 보복을 당해 죽는다. 이 전설은 제주의 무속과 유교의 음사 폐지 사이의 갈등을 잘 보여준다.



▲ 제주 마라도 천연보호구역 할망당(아기업개당)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제사를 인신공희라고 하는데 마라도의 애기업개당 신화도 그런 사례이다. 마라도는 우리나라 제일 남쪽에 있는 섬인데 옛날 누구든 이 섬을 범하면 흉년이 든다는 말이 있어 입도를 금했지만 해산물이 풍부하여 몰래 들어가 물질을 했다고 한다. 어느 날 모슬포 해녀들이 아기업개* 처녀까지 데리고 마라도에 들어왔는데 날씨가 궂어 물질을 할 수가 없었다.
 그날 밤 해녀의 꿈에 용왕이 나타나 아기업개를 두고 가지 않으면 살아 나갈 수 없다고 했다. 해녀들은 곧 데리러 오겠다면서 아기업개를 두고 배를 띄워 무사히 돌아온다. 남은 아기업개는 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지쳐 그 자리에서 죽는다. 해가 바뀌고 나서 모슬포 해녀들이 다시 물질을 가 아기업개의 시신을 거두고, 불쌍한 넋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 자리에 처녀당을 짓고 1년에 한 번 당제를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죽은 원혼을 위로하는 마라도의 아기업개당 신화의 배후에는 사람을 바다에 희생물로 바쳐 뱃길과 물질의 안녕을 기원하는 원시적인 의례가 숨어 있다.
 *아기업개: 아기를 봐주는 어린 처녀를 뜻하며, ‘업저지’라고도 한다.



▲ 제주 사계리 용머리해안

 이러한 이야기는 산방산 아래 용머리해안에도 있다. 여기도 처녀를 제물로 바치라는 사나운 용의 요구가 있다. 제물로 선택된 한 아리따운 처녀가 용을 맞닥뜨렸는데 용은 오히려 처녀의 순수한 마음과 아름다움에 반해 파도와 태풍을 막는 마을의 수호자로 변신한다. 용이 자신을 희생하여 마을을 지키는 돌로 변한 것이 용머리해안의 바위라는 것이다. 



▲ 제주 서귀포 쇠소깍

 인신공희는 아니지만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신당을 세운 것은 쇠소깍의 할망당도 마찬가지다. 쇠소깍은 효돈천의 담수와 해수가 만나 생긴 깊은 웅덩이로 '소가 누워 있는 듯한 못의 끄트머리'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부잣집 무남독녀와 머슴의 아들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이 빠졌는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총각이 쇠소깍에 몸을 던진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처녀는 시신이라도 수습하게 해달라며 쇠소깍 기원바위에서 백일기도를 드린다. 그러자 큰비가 내려 총각의 시신이 떠오른다. 처녀는 시신을 부둥켜안고 울다가 기원바위로 올라가 쇠소에 투신하고 만다. 
 그 뒤 하효마을 주민들이 처녀총각의 원혼을 위로하려고 마을 동쪽에 있는 응지동산에 당을 만들었다. 이 신당은 할망당, 또는 8일에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여드렛당으로 불리는데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곳이다. 


 
제주의 설화는
자연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려는 조상들의 지혜이자
자연과 사람을 이어주는 언어였답니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제주에서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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