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연구
국가유산이야기
1934. 5. 10 ~ 2013. 8. 24 | 보유자 인정: 2005년 9월 23일
국가무형유산 한지장
Master Artisan of a Korean Mulberry Paper Making
달빛은 길어올린다고 해서 길어올려지는 것이 아니에요.
달빛을 그대로 두고 마음으로 그 빛을 보듬을 때
비로소 한가득 길어올려지는 거에요.
- 영화 「달빛길어오르기」 중 지원(강수연 분)의 대사
스며 배이고, 시간과 더불어 삭아 들어가는
“견오백 지천년”이라는 말이 있다. 500년을 가는 비단에 비해 한지는 그 곱절에 해당하는 1,000년을 견딘다는 뜻이다. 한지는 닥나무와 황촉규를 주재료로 하여 고도의 숙련된 기술과 장인의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된다. 닥나무를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벗기고, 다시 삶고, 두들기고, 고르게 섞고, 뜨고, 말리는 아흔 아홉 번의 손질을 거친 후 마지막 사람이 백 번째로 만진다 하여 옛사람들은 한지를 ‘백지(百紙)’라 부르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의 한지는 고려 시대부터 그 명성이 높아 중국인들도 제일 좋은 종이를 ‘고려지(高麗紙)’라 불렀고, 손나라 손목은 <계림유사>에서 고려의 닥종이는 빛이 희고 윤이 나서 사랑스러울 정도라고 극찬하였다. 조선시대에는 태종대부터 조지서(造紙署)를 설치해 원료 조달과 종이의 규격화, 품질 개량을 위해 국가적 관심사로 관리해오다가 근·현대를 지나오면서 건축양식과 주거환경의 변화, 서양지의 수입으로 전통적인 한지의 명맥은 거의 단절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에도 한지제작은 생산원가와 제작공정의 편의로 닥나무 껍질 대신 동남아시아 등지에서 수입한 펄프를 사용하고, 황촉규 대신 화학약품인 팜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숨김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이에 국가에서는 전통한지의 올바른 보존과 전승을 위해 국가무형유산로 지정하였다.
한지장 유행영
1932년 5월 10일 전북 완주군 삼례면 석전리에서 아버지 류흥태 선생과 어머니 이금례 여사 사이에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47년에 이리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이리농림중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가정 형편이 어려워 1948년 중퇴하고 집안일을 돕기 시작하였다. 이후 유행영 선생은 전통한지 제조법을 부친에게 배워 한지를 제작하던 김갑종 선생에게 전통한지 제조법을 전수받아 55여년 동안 전통한지 제작에 몰두해 왔다. 김갑종 선생은 보유자 매형의 형님으로 일제 강점기 군용지를 제조하여 납품하던 장인이었으며 그 제조기술을 유일하게 유행영 선생에게만 전수하였다. 전통한지 제조법을 전수받고 1959년 전주제지공업사에 입사하면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전남 장성군 장성읍 교정리에 위치한 제지공장에서 근무하였고, 190년에는 마석 소재 주경환 선생이 경영하던 한지공장에서 일하다가 1973년에는 이 공장을 인수하여 간판을 영신제지로 바꾸고 자신의 주관으로 한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잘 운영되던 이 공장이 운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경남 의령으로 이주했다가 부산에 있던 닥나무 수출회사인 삼백물산에 입사해 한동안 근무했다.
1982년 안동대학교 권기운 교수의 지원으로 안동 소재 옹천제지를 경영하다가 1987년에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 소재의 태봉암 아래에 전통한지 연구소 겸 공방을 설립하였다. 한국한지작가협회 회원, 기술표준원의 한지 표준화사업 자문위원, 한솔제지 전통한지 재현 자문위원, 한지문화연구회 감사 등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전통한지의 정맥을 잇기 위해 많은 활동을 펼쳤다. 또한 용인 송담대학 전통한지연구소 특별연구원, 충북대학교·성신여자대학교·전주대학교·핀란드 헬싱키 공과대학 및 예술대학 등에서 전통한지 특강과 시연회를 개최하여 한지의 우월성과 전통의 가치를 알리는데도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더불어 각종 방송과 언론매체에도 여러 차례 출연하여 전통한지의 대중적 관심을 높이는데도 기여했다. 2005년 9월 23일 국가무형유산 한지장으로 인정되었고 이후, 건강이 여의치 않아 더 이상 현장에서 활동하기는 어려워 명예보유자로 인정된 것이 2008년 12월 30일이다. 2013년 향년 82세의 나이에 별세했다. 유행영 선생은 60여년을 오로지 전통한지의 복원과 전승이라는 외길에 종사하면서 온갖 어려움과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뜻을 굽힌 적이 없다.
작품
한지는 닥나무나 삼지닥나무 껍질을 원료로 하여 만들기 때문에 닥종이라고도 불리며, 질기고 오래가는 특성으로 1,000년이 지나도 변색이나 훼손이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순백색의 정형을 기본으로 연한 갈색과 분홍빛, 하늘색에 가까운 다채로운 색채의 변주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가실한 질감과 어우러진 부드러운 파스텔 톤은 한지 특유의 색감인 동시에 거스름 없는 자연염색의 정화에 해당한다. 자연염색이 본디 천에 주로 쓰이지만, 의외로 한지에도 잘 어울린다.
유행영 선생의 한지는 일반적인 한지의 특징을 고르게 갖추었음은 물론, 특유의 기술적 성취를 이루었다. 얇은 박엽지에서 두터운 후지까지 높은 품질의 종이를 재현해 냈다. 순백의 종이는 말할 것도 없고, 다채로운 색지를 제작하는데 남다른 재능을 발휘해 왔다. 쪽, 소목, 황벽, 홍화, 치자 등 염재가 선생이 즐겨 쓰는 색재료다. 또, 섬세하기로 이름난 옥춘지를 제작할 수 있는 이도 유행영 선생이 유일하다. 옥춘지는 평량 8g/㎡을 넘지 않을 만큼 정밀한 종이지만, 질기고 기능적이어서 최상품에 해당한다.
작업과정
약간 덜 마른 종이를 포개거나 풀칠을 하여 디딜방아나 방망이로 두들겨서 종이가 치밀하고 매끄러우면서 윤기가 나도록 해주는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한지 재료로 쓰이는 것은 참닥나무, 삼지닥나무, 산닥나무가 있고, 닥나무 외에 섞어 쓰는 원료는 뽕나무과에 속하는 꾸지나무, 뽕나무, 박쥐나무가 있다. 닥나무는 섬유질이 매우 길고 질기기 때문에 한지를 제작하는데 가장 중요한 재료이다. 특히 국산 닥은 질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따라서 가장 좋은 한지는 국산 닥으로 만든 한지이다. 한지의 제작도구로는 닥나무 껍질이나 흑피를 벗길 때 사용하는 닥칼, 닥나무를 삶을 때 사용하는 닥솥, 닥 백피를 삶아 두드릴 때 사용하는 닥방망이, 종이를 뜰 때 사용하는 발틀, 통물을 떠 섬유질만을 가라앉게 하는 발, 삶은 닥섬유를 두드릴 때 사용하는 닥돌과 이외에 해리통, 지통, 풀작대기, 베개머리, 압착기, 이릿대, 빗자루, 도침기, 건조기 등이 사용된다.
약력
- 1932년전북 완주 출생
- 1951년전북 완주 한지공장에서 김갑종 선생에게 전통한지 제조기술 사사
- 1991년한국한지작가협회 회원(한지 제작인)
- 1993년한솔제지 전통한지 재현 자문
- 1994년전통한지 장나 미술관 전시
- 1995년국립중앙과학관 전통한지 제조시연
- 1997년용인송담대학 전통한지 시연회, 충북대학교 전통한지 특강 및 시연회
- 2001년핀란드 헬싱키 공과대학 및 예술대학 등에서 전통한지 시연
- 2004년노동부 지정 기능전승자 선정(한지제작 및 가공분야)
- 2005년
- 독일 주빈국 초청 전통한지 시연, 전주대 경영대학원 한지문화산업학과 객원교수
- 국가무형유산 한지장 기능 보유자 인정
- 2008년국가무형유산 한지장 명예보유자 인정
- 2013년별세
- 글 이치헌 / 국가유산진흥원 전승지원실장
- 사진 서헌강(국가유산전문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