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흰 두루마기에 검은 갓을 쓴 위풍당당한 선비, 텔레비전 사극에서 흔히 보던 모습이다. ‘의관을 정제한다’는 표현도 있듯 조선시대에는 늘 격식을 갖추어 옷매무새를 바르게 하는 것이 바로 선비의 품격이었다. 남이 보지 않는 빈방 안에서도 선비는 갓을 벗지 않았는데, 몸가짐을 단정히 하는 것이 인격의 수양이자 그 표현이었던 것. 갓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양태의 높낮이나 너비가 달라지기도 했고, 신분에 따라 소재와 장식 또한 천차만별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갓의 재료가 되는 대나무가 많이 자라는 지역인 통영과 제주가 갓의 주요 생산지였는데, 각각 통양과 제량이라 불렀다. 특히 통양은 최상품으로, 비싼 것은 쌀 다섯 가마니 정도에 팔렸다니 주로 돈 많은 양반이나 왕족만이 쓸 수 있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 기능보유자 정춘모 선생은 통영갓, 통양을 만드는 이다. 스무 살 무렵, 대구에서 전대의 무형문화재 갓일 기능보유자 김봉주, 고재구, 모만환 선생을 만나면서 갓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연히 들어간 하숙집에서 당대 최고의 기능장을 만났으니 정춘모 선생은 자신을 갓일을 위해 태어난 운명이라고 했다.
갓은 대나무를 쪼개어 얇은 대나무실로 다듬어 갓의 차양을 만드는 양태, 말총으로 관을 만드는 총모자, 양태와 총모자를 엮어 갓을 만드는 입자의 세 가지 공정을 거치는데, 이 공정이 분업으로 진행된다. 우리 민족 의생활의 필수 품목이던 갓이 조선 말 단발령과 의복의 변화로 수요가 줄어들자 갓일을 배우려는 사람도 자연히 귀해졌다. 그저 갓을 만드는 일이 좋아 배우기 시작했으나 고령의 스승들이 세상을 떠난 뒤 그 명맥을 이을 이가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에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최고의 장인을 스승으로 삼아 사사할 수 있었던 행운은 우리 전통공예인 갓의 명맥을 지켜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다가와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 머리카락보다도 얇은 대나무실을 다듬어 엮는 양태 작업부터 시작해 모자와 형태를 모아 인두질, 어교칠, 먹칠, 옻칠을 반복해 하나의 갓이 나오기까지 한 사람의 손을 거치자면 8~9개월이 꼬박 걸리는 작업이다. 고도의 정신 집중과 엄청난 인내심의 산물이 갓이니, 반평생 갓을 만든 정춘모 선생에게도 꼿꼿한 성품이 느껴진다. 갓이 선비의 품격을 상징하게 된 것도 이를 만드는 이의 곧은 성품이 전해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나의 갓이 완성되려면 총 51개의 과정을 거칩니다. 이 모든 과정 중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아름다움입니다. 단순히 손재주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지요. 갓 중에서도 양태 위에 명주실을 덧입혀 제작하는 진사립을 최상품으로 치는데, 은은한 곡선미와 반들반들한 빛을 발하는 듯한 광택이 흐르는 최고의 진사립을 만들기 위해 수십 년을 매달렸지요.” 통제영 12공방 복원 사업이 끝나는 대로 수십 년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통영으로 내려갈 예정이라는 정춘모 선생은 통영갓의 본고장에서 작업할 생각에 마음이 무척 설렌다고 말한다. 반평생을 이어온 일에 대한 장인의 한결같은 열정이 바로 전통을 지켜내는 힘임을 깨닫는다.
글 박유주 기자 | 사진 김규한 기자
문의 한국로얄코펜하겐㈜(02-749-2002)
본 기사는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