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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 정월 풍속에 나타난 우리의 농경문화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5-01-02 조회수 : 2986
기 획 특집 새해 세시풍속과 민속문화 정월 풍속에 나타난 우리의 농경문화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은 가정이나 마을에서 차례를 지내고 놀이를 통해 친목을 다지고 탈춤과 같은 연희가 전개되기에 마음이 넉넉해지고 더불어 즐기는 풍성한 달이다. 새해 아침을 맞이하면 일가친척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고 나면 어른께 세배를 올리고 덕담을 들으며 첫날을 보내는 풍경이 우리의 모습이다. 겨울은 농한기이기에 바쁜 일손에서 벗어나 이웃과 친족이 모여 화목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어린이는 연날리기, 팽이치기, 널뛰기 등을 즐기며 며칠간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정월 대보름을 맞이하면 마을 사람들이 동제를 지내고 이웃마을과 편을 짜고 줄다리기, 석전, 쥐불놀이 등을 하면서 한 해의 풍흉을 점쳐보기도 한다. 이렇듯 정월은 농경생활을 배경으로 다양한 풍속이 행해지기에 우리 전통문화의 근간이 되는 농경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떡국 이미지설날에 빼놓을 수 없는 관습은 차례・떡국・성묘라 할 수 있다. 차례는 조령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난 후에 조상의 묘지를 찾아가 예를 올리는 일이다. 에로부터 정월 차례에는 흰떡을 썰어 꿩고기로 국물로 끓여 만든 떡국으로 차례를 지내고 나서 친족이 모여 함께 떡국을 먹는다. 따라서 설날은 조상과 쌀로 빚은 떡과 깊은 관련이 있다. 조상은 쌀 즉 곡물에도 영(靈)이 잠재해 있는 것으로 여겨왔으니 이를 곡령이라 한다. 곡령은 조상의 영혼인 조령(祖靈)과 동일한 존재로 믿어왔다. 그러기에 추석에는 햇곡식으로 떡을 빚어 차례를 지내는데 일찍이 여문 벼는 조령이 방문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곡물을 수확한 후에는 햇곡식을 ‘성주단지’ 또는 ‘조상단지’에 넣어두었는데, ‘조상단지’로 부르는 것은 조령과 곡령을 동일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설날에 떡국을 먹어야 한 살을 더 먹는 것으로 여기는 것도 떡에 잠재한 상징적 가치를 인정하는 데서 비롯된 풍속이라 할 수 있다. 설날에 떡국을 먹고 조상제사를 지내는 관행은 쌀에 깃든 곡령신앙에서 비롯된 것으로 벼농사를 주로 하는 도작문화를 배경으로 전승되어온 세시풍속이라 할 수 있다. 현대에도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밥이 보약이다”라고 하거나 “밥을 꼭 챙겨먹으라”고 한 것은 쌀이 영양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보다도 쌀이 갖고 있는 영적인 힘을 얻어 일하라는 의미가 있다.

한편 정월 대보름날에는 오곡밥과 나물을 먹는다. 아침에 부럼을 깨물어 먹으면 한 해 동안 건강하다고 한다. 오곡은 기장・피・콩・보리・벼 등을 말하기도 하는데 지방에 따라 조 또는 밀을 꼽기도 한다. 잡곡은 논에서 재배한 농작물이 아니라 산지의 밭에서 재배하는 곡물이다. 나물은 버섯・박나물・콩나물・고사리・무순 등 말리어 저장해 두었던 묵은 나물을 먹는다. 이러한 오곡과 나물은 모두 산에서 재배하거나 채취하여 얻은 것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쥐불놀이나 동화제 등의 불 행사는 산지 화전민의 농경세시와 관련이 깊다고 말할 수 있다.정월 대보름의 대표적인 놀이로 쥐불놀이가 있다. 쥐불놀이는 보름달이 뜬 밤에 아이들이 모여서 미리 만들어 놓은 횃불로 논둑이나 밭둑의 잔디나 잡초에 불을 놓으며 논다. 때로는 이웃마을 아이들과 큰 내의 둑이나 다리를 경계로 쥐불싸움을 하기도 한다. 쥐불놀이는 농작물이나 곡물에 피해를 가져다주는 병충해나 쥐의 피해로부터 방지하기 위한 놀이로 잡초를 태운 재가 봄에 새싹이 날 때에 거름이 되도록 하는 놀이로 알려져 있다. 아이들이 하는 놀이는 대부분 아이들만이 갖고 있는 영력 즉 성장력을 기대하는 데 목적이 있다. 성인은 이미 다 성장하였지만 아이들은 앞으로도 쑥쑥 성장할 수 있는 영력을 갖고 있기에 곡물이 아이처럼 잘 성장하도록 기원하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쥐불놀이가 한해의 곡물을 병충해로부터 방지하고 농작물이 성장하기를 기원하는 놀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이해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불을 갖고서 놀아야하는가에 대한 명쾌한 답이 되지는 못한다. 부럼 이미지충청남도 청양군에는 정월 대보름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동화제를 지낸다. 동화제를 지내기 위해서는 동화대를 만드는데, 산에서 나무를 베어와 4-5m 높이로 논의 한가운데 세워놓고 덩굴나무 줄기와 새끼로 동여 묶어 놓는다. 동화대 주변에는 황토를 뿌린 다음에 짚과 멍석을 깔고 술, 과일, 명태, 밥, 떡 등을 제물로 차려 놓는다. 동화대 꼭대기에 불을 붙이면 점차 불꽃이 나면서 동화대 아래로 타들어 가면 제사를 지낸다. 동화제는 불이 잡귀를 쫓아내는 강한 힘이 있다고 믿음을 바탕으로 한 제의라 한다. 정월 보름날의 불과 관련된 놀이나 제의를 동아시아의 대보름의 불 행사와 비교한다면 동일한 계통으로 산지 화전민이 산에 불을 놓고 밭으로 농경지를 개간하는데서 유래된 것으로 학계에 알려져 있다. 휴경농법을 하는 화전민은 불로 새로운 농토로 만들기에 불은 갱신력이 있는 것으로 믿어 불과 관련된 행사를 지내고 있다. 따라서 쥐불놀이나 동화제 등의 불 행사는 산지 화전민의 농경세시와 관련이 깊다고 말할 수 있다.

정월 대보름에 가장놀이를 한다. 탈놀음의 가장 오래된 형태로 알려진 안동의 하회탈놀이는 섣달 보름날 제사에 산주가 당에 올라가서 소반에 정화수를 올리고 강신을 빌고 신의를 묻고 나서 시작된다. 이때 소반이 흔들리면 신탁이 내린 것으로 여겨 하산하여 마을 어른에게 알리고 동의를 얻고 별신굿준비를 한다. 섣달그믐부터 보름간 광대를 불러 별신굿과 탈놀이를 한다. 가장놀이로 거북놀이와 소놀음굿이 있다. 경기도와 호남지방에서 정월 보름이나 추석에 멍석이나 수숫대로 거북이나 소의 형태로 가장하여 마을의 각 집을 방문하며 집안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해준다.
하회탈 이미지거북이나 소는 수신 또는 농신으로 믿어 왔기에 동물형상으로 가장하여 집을 돌며 새해에 축원을 해주는 놀이이다. 중국의 가장놀이는 운남성을 중심으로 산간 농경민이 행하던 놀이가 중국전역으로 전해졌다고 한다.
이와 같이 정월 대보름은 잡곡밥, 부럼, 불놀이, 가장놀이 등이 주요 행사로 산지 화전이나 밭농사를 하는 농경민의 정월의 세시풍속이었던 특징이 있다. 정월 첫날 가래떡과 조상제사를 지내는 것은 벼농사민의 행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월의 세시풍속은 도작 농경민과 화전 농경민의 행사로 대비되어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겨울에 맞이하는 정월은 농사의 휴한기에 새해를 맞아 한 해의 풍년과 안녕을 기원하기 위한 축제의 장이다. 새해 첫날에는 가족과 친족이 모여서 덕담을 나누며 조상을 모시고 화목을 나누는 자리이다. 보름날에는 이웃과 더불어 삶의 공동체라는 의식을 강화하고 모두가 화합하는 열린마당이 되었다. 정월에 행하는 민속에 우리 선조들이 화전 농경에서 벼농사로 발전하였던 농업사에 관련된 단면이다. 정월의 세시풍속은 점차 그 의미를 잃어가고 있지만 가족과 이웃이 모여 화목한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

글 임장혁 중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