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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 한국현대시의 아버지 정지용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09-29 조회수 : 5211





정지용의 생애와 문학

 정지용은 1902년 음력 5월 15일 아버지 정태국과 어머니 정미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난다. 충북 옥천의 작은 마을에서 그의 아버지는 한약방 겸 양약방을 운영하며 ‘정고약’을 고안해 부를 축척하게 되었다. 그러나 후사에 대한 욕심으로 이복동생을 두게 되었고, 1911년과 1917년 두 차례의 홍수가 정지용의 집에 밀려왔다. 이 때문에 한약재가 물속에 잠겼고, 가옥과 재산을 모두 잃었다. 
 
 1910년 옥천공립보통학교현 죽향초등학교에 입학하고 1913년 송재숙과 결혼한 정지용은 1923년 3월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그해 5월 휘문고보 동창 박제찬과 함께 일본 도시샤同志社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 졸업 후 휘문고보로 돌아와 교편을 잡는다는 조건부 유학생이 된 것이다.

 도시샤대학에서 평론가 김환태 등을 만난 정지용은 「띠」와 「홍시」 등을 낭송해 주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삭였다. 그는 휘문고보, 서울대, 이화여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경향신문』의 주간을 지내며 청록파 시인 등을 배출하는 등 한국문단에 큰 족적을 남겼다. 정지용은 1950년 7월 그믐께정지용의 장남 정구관의 증언 녹번리 초당에서 설정식 등과 정치보위부에 나가 자수 형식을 밟다가 납북된 것으로 추정된다. 1988년 정지용 작품이 해금되고, 그의 고향 옥천에 생가 복원1996과 문학관을 개관2005하였다. 지난 5월 그의 문학혼을 기리는 ‘30회 지용제’를 성황리에 치렀다. 





①“慶鎬야 나난 너의 男妹가 업스면 무산滋味로 사라잇겟니? 너의 아버지난 돌아보지도 안을 더러 집안에 게시지도 안이하시난구나, 이 다 - 쓰러져 가난 거지움갓흔 집에 잇스시기가 실으셔서 그러시난지난 모로겟스나 쓰러져 가난 집에 굼쥬리고 입지 못고 억지로 사라가난 내야 무슨 罪이란 말이냐? 慶鎬야 慶鎬야 나난 너의 男妹를 爲야 이집을 직히고잇다 쓸쓸한 이世上에 붓허 잇난것이다 그도져도 인졔 집터 지 팔니엿다난 구나 그毒蛇갓흔 터主人이 집을 여내라고 星火갓치 조르난 구나” - 「삼인」 중②崔의집은 有數한 財産家로 모다 崔富者집 崔富者 집이라고 부른다 오날은 崔富者의 큰 아달 昌植의 生日이다 昌植은 三十 假量된 靑年으로 郡書記 勤務를 다말도 잘하고 法律도 잘안다하야 崔主事난 한 사람이라 고도하고 或은 <身言書判>이 다 - 具備하다 稱讚듯난이다 午後 네시붓터난 昌植의 親舊들만 모이난 잔치를 연다 손님의 大部分은 同官 親舊들이다.

 - 「삼인」 중



첫 작품 소설과 산문에 나타난 고향

 불우하고 궁핍한 시절을 보냈던 정지용은 1919년 12월 <서광> 창간호에 자전적 이야기인 소설 「삼인」을 초도작으로 발표한다. 「삼인」에 등장하는 세조, 최, 이 친구는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인 옥천역에 도착한다.

 정지용의 자전적 역할로 등장하는 ‘조’는 ①처럼 옥천에 와서도 어머니의 푸념과 아버지의 부재와 맞닥뜨린다. 그러나 최 군의 집은 ②처럼 젊은 형의 생일잔치를 기생을 불러서 할 정도로 여유 있고 부유하게 서술하고 있다.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정지용이 초도작으로 왜 소설을 택했을까? 정지용의 교우관계 중 가장 넘나듦이 자유롭고 빈번하던 이태준의 영향, 홍수로 인한 고향집의 몰락, 부친의 둘째 부인이 낳은 이복동생, 부친이 돌보지 않는 집안 살림을 어머니가 맡아 꾸려야 하는 고달픈 삶의 모습들이 정지용의 앞을 가로 막았다. 또 휘문고보의 학내 문제와 국내외의 불안한 정세가 정지용을 산문적 상황으로 내몰고 있었던 것이다. 즉 정지용이 시로 문단에 입문하기에는 매우 복잡한 산문적 상황에 놓이게 되고, 그 복잡함 속에서 그는 소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정지용의 산문 「우통을 벗었구나」에 “진달래꽃이 피어 멀리서 보아도 타는 듯 붉었”다는 ‘무스랑이 뒷산’. “박달나무 팽이를 갖”고 싶던 정지용이 어머니를 조르고 목수 집을 찾아가고 아버지를 설득해 만들었다는 팽이로 얼음 언 미나리 논에서 박달팽이를 돌리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장난감 없이 자란 어른」을 가만히 생각하면 “연을 날리기에는 돈이 많이 들어 못 날리”었다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명치끝을 타고 오른다.

정지용 시의 궁핍과 그리움 그리고 고향 상실

 정지용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기억을 드러낸 작품은 「니약이 구절」, 「향수」, 「고향」 등 10편이 넘는다. 이미 널리 알려진 국민 애송시 「향수」에 나타난 고향은 ‘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라는 후렴구를 반복하여 단순히 과거 시제에만 머물게 하지는 않는다. 즉 과거의 그리움을 넘어서 끊임없이 현재화하여 시적 주체의 융합을 바라는 공간으로 고향을 제시하고 있다. 혹독한 육체적 노동에도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궁핍한 농촌의 실상. 그 속에서 찾아낸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는 공간에서 ‘옛이야기 지줄대는’, ‘전설바다에 춤추는’ 신비로운 신화적 공간설화를 이끌어낸다. 그러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유토피아적 공간으로 집약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집 나가 배운 노래를/집 차저 오는 밤/논ㅅ둑 길에서 불럿노라.//나가서도 고달피고/돌아와 서도 고달노라./열네살부터 나가서 고달노라.//나가서 어더온 이야기를/닭이 울도락,/아버지닐으노니 -//기름ㅅ불은 박이며 듯고,/어머니는 눈에 눈물을 고이신대로 듯고/니치대든 어린 누이 안긴데로 잠들며 듯고/우ㅅ방 문주에는 그사람이 서서 듯고,//큰 독 안에 실닌 슬픈 물 가치/속살대는 이 시고을 밤은/차저 온 동네ㅅ사람들 처럼 도라서서 듯고,//그러나 이것이 모도 다/그 녜전부터 엇던 시연찬은 사람들이/닛지 못하고 그대로 간 니야기어니//이 집 문ㅅ고리나, 집웅이나,/늙으신 아버지의 착하듸 착한 수염이나,/활처럼 휘여다 부친 밤한울이나,//이것이 모도다/그 녜전 부터 전하는 니야기 구절 일러라.//

「니약이 구절」 전문, <신민> 21호(1927.1)


 「니약이 구절」은 고향을 떠나온 자의 고달픔이 묻어 있다. 그 고달픔의 정서가 「향수」보다 더 진하고 직설적으로 배어 있다. ‘열네살부터 나가서 고달’던 정지용의 고향집은 ‘집 차저 오는 밤’, ‘이 집 문ㅅ고리나, 집웅’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정지용 시인이 실재하는 고향집 바로 그 공간이다. 정지용을 찾아 떠나는 기행은 정지용의 작품에 심취하는 길이고 그를 사랑하는 길이다. 정지용이 머물렀던 그의 고향 옥천. 그의 작품에 나타난 옥천이라는 공간으로 가는 길. 그곳에 있는 정지용 생가와 문학관으로 가는 여행은 현대인의 고향 상실감을 위로해 준다. 그리고 고향이라는 구심점을 잃은 사람에게 영원한 고향으로 자리 잡게 해줄 것이다.






 

문학택리지 김묘순. 문학평론가. (사)세계문인협회 부이사장 사진. 필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