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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봄, 여름호-옛날 옛적에]도깨비방망이
작성자 : 진흥원 관리자 작성일 : 2024-09-22 조회수 : 674


도깨비방망이


우리나라의 옛이야기 중에는 도깨비가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도깨비 이야기 중에서도 도깨비방망이 설화는 가장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고 도깨비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하다. 도깨비의 주술 도구에는 방망이·감투·등거리·맷돌·책·보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삶이 힘겨운 서민들에게 욕심을 마음껏 채워 줄 수 있는 도깨비방망이처럼 매력적인 물건은 없을 것이다. 


글. 김성범(㈔섬진강 도깨비마을 촌장, 『도깨비도 국가유산이야?』 작가)


일러스트: 심은경


일러스트 : 심은경


주술 도구 도깨비방망이


도깨비방망이! 이름 자체만으로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냥 부럽고 신기한 도구이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불러 봤을 동요 ‘도깨비 나라’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

방망이를 두드리면 무엇이 될까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도깨비의 부신성(富神性, 재물 신으로서의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부자가 되고 싶은 서민들의 마음을 홀리고 너무나도 가슴 두근거리게 만드는 주술 도구 도깨비방망이는 도깨비방망이답게 그럴듯한 옛이야기를 품고 있다.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형제가 살았다. 가난하지만 착한 동생이 어느 날 숲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힘들어 개암나무 아래에서 쉬고 있는데, 개암(개암나무 열매, 헤이즐넛)이 하나 떨어졌다. ‘잘 익은 개암이로군, 이건 아버지께 드려야지.’ 다시 개암이 떨어지자, 어머니께 드리기로 했다. 그러고도 개암이 계속 떨어지자, 아내와 아이들 몫까지 챙기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몫을 챙겼다. 그런데 금시 날이 어두워졌다. 숲에서 길을 잃어버렸으나, 곧 무너질 듯한 허름한 집이 있어 그곳에서 쉬어가기로 했다. 잠을 자려는데 바깥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나 내다봤더니, 도깨비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동생은 깜짝 놀라 대들보로 올라갔다. 집에 들어온 도깨비들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도깨비방망이야, 맛있는 술과 음식을 만들어라!” 도깨비들은 방망이로 만든 음식을 먹고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놀았다. 동생은 대들보 위에서 도깨비들을 지켜보고 있다가 출출해져, 개암을 하나 깨물었다. ‘따악!’ 그 소리에 도깨비들이 집이 무너지는 줄 알고 도망쳤다. 그런데 도깨비들이 정신없이 도망치느라 도깨비방망이를 챙겨가지 못한 것이다. 당연히 착한 동생은 방망이로 금은보화와 식량을 만들어 내어 부자가 되었다. 

며칠이 지나고, 인색하기 짝이 없는 부자 형이 동생을 찾아왔다. “네가 어찌 나보다 더 부자가 되었느냐?” 동생에게 자초지종을 다 듣고 난 형도 동생처럼 나무하러 가서 개암나무 아래에 앉았다. 개암이 떨어지자, ‘잘 익은 개암이로군, 이건 내 것!’ 다시 떨어지자, 이것도 ‘내 것.’ 계속 떨어지는 것도 자기 몫으로 챙긴 형은 이른 시간부터 허름한 집으로 들어갔다. 도깨비들이 몰려들자 형도 대들보 위로 올라갔다. 도깨비들이 신나게 춤과 노래를 부르자 형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개암을 깨물었다. ‘따악!’ 도깨비들이 대들보 위의 형을 발견하곤 끌어내려 방망이를 돌려 달라며 날이 샐 때까지 형을 두들겨 팼다. 


여기까지는 이야기가 거의 비슷하나 끝나는 부분은 여러 가지로 변형된다. 혼이 난 형이 어리석음을 깨닫고 착한 사람이 되어 동생과 잘살았다는 이야기가 있는 반면 도깨비들이 형의 코를 기다랗게 늘여 놓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채씨효행도( 蔡氏孝行圖)』 화첩 중 「귀화전도」 부분 | 소치 허련


『채씨효행도( 蔡氏孝行圖)』 화첩 중 「귀화전도」 부분 | 소치 허련
출처 : 한국데이터산업진흥원
도깨비불이 나와 길을 인도하는 모습.


도깨비방망이 이야기의 기록


옛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는 까닭에 정본(定本)이 무엇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도깨비방망이> 이야기는 개암을 주울 때 동생과 형의 생각에서 드러나듯 마음씨 착한 동생은 도깨비방망이를 얻어 큰 부자가 되는 반면, 마음씨 나쁜 형은 혼나고 벌만 받는 권선징악의 전형적인 형태로 교훈을 전한다. 삶이 힘겹고 고달픈 서민들로서는 이야기로나마 자신의 비참함이나 궁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카타르시스(catharsis, 정화 또는 안정)를 제공받았을 것이다. 

물론 도깨비방망이가 누군가를 부자로 만들어 주는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을 자꾸 속이는 주막의 주인을 두들겨 패는 이야기도 있다. 역시나 삶의 패배자 자리에 놓인 민초들에게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와 부를 안겨 주는 역할을 한 셈이다. 

이와 같은 <도깨비방망이> 이야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 흔적은 중국 당나라 단성식(段成式, 803~863)의 『유양잡조(酉陽雜俎)』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뒤 『유양잡조전집 [속집] 권일(酉陽雜俎前 集 續集 卷1)』 귀신 요괴 습유(상)(支諾皐上)과 『태평어람(太平御覽) 권481』에 거듭 수록되었고, 우리 문헌 중에는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에 『유양잡조』의 이야기가 인용되어 있다. 『유양잡조』의 이야기는 첫머리에, “신라국(新羅國)의 김가(金哥)라는 귀족의 먼 조상 중에 방이(旁㐌)라는 이가 있었다”라고 운을 띄워 놓고 시작한다. 


옛날 옛적 신라국에 가난한 형, 방이가 살았는데 부자인 동생에게 누에와 곡식 종자를 부탁하자 동생은 누에와 종자를 쪄서 주었다. 그럼에도 누에 한 마리가 살아나서 부쩍부쩍 크더니 열흘 만에 소만큼 커졌다. 이 사실을 안 동생은 틈을 엿보다 누에를 죽여 버렸으나 다음날, 수많은 누에가 방이의 집으로 기어들었다. 죽은 누에가 누에의 왕이었던 것이었다. 

곡식 종자도 한 톨이 싹을 틔웠고 한 줄기가 자랐다. 그런데 곡식이 익어 갈 무렵 새가 이삭을 꺾어 물고 날아갔다. 방이는 귀한 이삭을 뒤따라갔는데, 새가 산으로 날아올라 가더니 바위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날이 어두워지고 방이는 바위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밤이 깊어지자 빨간 옷을 입은 아이(小兒赤衣, 소아적의)들이 나타나 어울려 장난을 치며 놀았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방망이(金錐)를 바위에 두드리자 술, 떡, 고기가 한 상씩 차려졌다. 아이들은 그렇게 놀다가 방망이를 바위틈에 끼워 놓고 갔다. 방이는 방망이를 가져와 바라는 걸 말하며 내려치기만 하면 모두 생겨났으니, 부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동생은 형에게 지난 이야기를 모두 듣고, 똑같이 흉내를 내기로 했다. 동생은 형에게 누에와 곡식의 종자를 쪄서 달라고 했고, 누에를 치고 씨앗을 심었다. 동생도 똑같이 누에 한 마리가 살아났지만 일반 고치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곡식도 한 톨만 싹을 틔웠다. 곡식이 익자, 동생에게도 새가 나타나 이삭을 꺾어 물고 날아갔다. 동생은 기쁜 마음으로 새를 뒤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도깨비들이 지키고 있었다. “방망이를 훔쳐 간 녀석이로구나.” 도깨비들은 동생을 잡아 놓고, “우리들을 위해 지게미 언덕을 3판(版) 쌓겠느냐, 아니면 네 코를 한 장(一丈: 약 3m) 길이로 늘여 줄까?” 물었다. 도깨비들의 질문에 동생은 언덕을 쌓기로 했으나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다. 동생은 결국 코가 한 장으로 늘어나 코끼리처럼 되었고 부끄럽고 화가 나서 화병(火病)으로 죽고 말았다. 그 뒤에 방망이는 어떻게 되었냐고? 장난기가 많은 방이의 자손 중 하나가 이리의 똥을 달라며 방망이를 내려치자, 번개와 천둥이 치더니 방망이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좌) 강진 사문안 석조상(康津 寺門안 石彫像,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도깨비방망이를 든 모습 (우) 실상사 백장암 3층 석탑 탑신, 도끼 든 도깨비 동자상


(좌) 강진 사문안 석조상(康津 寺門안 石彫像,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 도깨비방망이를 든 모습
(우) 실상사 백장암 3층 석탑 탑신, 도끼 든 도깨비 동자상
출처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이처럼 1200여 년 전, 당나라 단성식의 『유양잡조』에서 신라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에 신라에서 널리 회자되던 이야기가 틀림없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이야기가 당시의 K-스토리이며 <도깨비방망이>류 이야기로는 최초의 기록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유양잡조』의 방이 설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옛이야기 <도깨비방망이>와 비슷하지만 다른 부분이 꽤 있다. 우선 도깨비가 악을 응징하는 뼈대는 같지만 형과 동생의 처지가 뒤바뀌어 있다. 즉 옛이야기에서는 가난하고 착한 역할을 동생이 하고 있지만 『유양잡조』에서는 형이 가난하고 착한 인물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흥부전>과도 비슷한데, 역시 형과 동생의 처지는 뒤바뀐 상태다. 혹 자는 이 같은 뒤바뀜의 이유를 조선 후기 적장자를 우대하는 재산 상속 제도와의 관련성에서 찾기도 한다. 이뿐만 아니라 『유양잡조』에는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 이야기도 들어 있다. 이는 설화가 인류의 원형질인 까닭도 있겠지만 『유양잡조』에서 보여 주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에 오래전부터 방망이류 이야기가 전래되고 있었고, <도깨비방망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흥부전>으로 파생되었다고 추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피노키오> 이야기와는 어떤 관련성이 있을 것인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코를 무려 한 장이나 늘여 놓았다고 하니, 피노키오 코보다도 훨씬 더 길었을 것 같다. 


『유양잡조전집 [속집] 권일( 酉陽雜俎前集續集卷 1)』 표지와 내지


『유양잡조전집 [속집] 권일( 酉陽雜俎前集續集卷 1)』 표지와 내지
출처 : 국립중앙도서관

 

『유양잡조』의 방이 설화에서는 또 하나의 의문점을 찾아볼 수 있다. 빨간 옷을 입은 아이들이 방망이를 바위틈에 숨겨 놓는데, 방망이가 금추(金錐), 즉 ‘쇠 송곳’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방망이 이미지와는 꽤 어긋나 보인다. 도깨비의 형태를 이야기할 때 뿔이 있느냐 없느냐, 뿔이 한 개냐 두 개냐 등으로 왈가왈부 되는 것처럼 방망이의 형태에 대해서도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홍두깨처럼 나무의 성격일 것이다’부터 많이 알려진 철퇴까지. 안타깝게도 우리 조상님들은 도깨비라고 명명해 놓은 이미지를 남겨 놓지 않았다. 단지 방이 설화의 ‘금추’부터 강진 사문안 석조상(康津 寺門안 石彫像, 전라남도 문화유산 자료)에 돋을새김으로 희미하게 남아 있는 부엉이 방귀 형태의 도깨비방망이, 그리고 남원 실상사 삼층석탑 탑신에 새겨져 있는 도끼와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금강역사의 철퇴로 유추해 볼 수밖에 없다. 이 중에서 하나 또는 여러 개가 옛이야기 속의 도깨비방망이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도 도깨비는 도깨비처럼 꽁꽁 숨어 있다.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 도깨비를 찾아서 어떡하자고?


문화 콘텐츠의 힘을 가진 도깨비 이야기


오늘의 이야기 <도깨비방망이>에서 보듯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성격이 강한 도깨비는 당시 서민들의 바람이었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이들에게 보물창고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방향과도 일맥상통한다. 오래된 물건이 도깨비로 변신을 한다’는 특성은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것과도 관련이 되니 환경문제나 이미지 산업과의 연계성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도깨비의 축제 성향은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활용도까지 확대시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 도깨비도 이제 그만 옛이야기에서 밖으로 뛰쳐나와 폼 나는 역할을 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실제로 (사)섬진강 도깨비마을과 도깨비학회에서는 2024년 6월 6일부터 7일까지 1박 2일 동안 제9회 도깨비 국제학술포럼을 열었다. 21세기 기후 위기 시대에 도깨비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지 뜻을 모아 보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2018년 일본 산도깨비를 소재로 한 나마하게 축제가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 도깨비에 대한 관심이 미미하기 그지없는 수준인 것 같다. 

이번 국제학술포럼에서 이젠 도깨비도 한류 열풍에 걸맞게 ‘K-도깨비’로 나설 때인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역사와 산업 분야까지 힘을 모아 도깨비방망이를 맘껏 휘둘러 볼 일이다. 문화재가 국가유산으로 명칭을 바꾸었으니, 도깨비 또한 새로운 역할로 탈바꿈하는 원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