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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은혜 갚은 까치, 권선징악을 넘어서
글. 김정경(인천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우리나라에는 은혜를 입은 대상이 은혜를 베풀어 준 이에게 보답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그중에서도 특히 시혜자와 수혜자로 동물이 등장하는 동물 보은담이 하나의 유형으로 자리 잡아 널리 전한다. 이 이야기들은 집에서 기르거나 친해진 동물이 은혜를 갚는다거나, 위기에 처한 동물을 구해 준 인간이 그에 대한 보답을 받는다는 내용으로, 대부분 권선징악이라는 믿음을 교훈적이고 흥미롭게 보여 준다.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는 이러한 설화들을 ‘바르고 그르기’ 중 ‘바를 만해서 바르기’ 항목에 해당하는 ‘짐승에게 적선하고 보은 받기(동물 보은담)’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일러스트: 심은경
인간의 선행과 동물의 보은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는 ‘동물 보은담’의 하위 유형인 ‘종을 울려 보은한 새 설화’에 속하며, 전국에 걸쳐 구전되는 광포 설화로서 『한국구비문학대계』의 강원도 강릉, 원주, 영월, 경기도 용인, 양평, 충청남도 부여, 금산, 경상북도 군위, 경상남도 밀양, 하동, 김해, 진양, 전라북도 정읍, 무주, 남원, 전라남도 보성, 고흥 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국적으로 전해지는 만큼 이야기의 세부 사항들에는 다양한 차이가 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거의 동일하다.
한 젊은이가 과거를 보기 위해 집을 떠나 산길을 가다가 구렁이에게 죽게 된 까치 새끼를 발견했다. 남자는 구렁이를 활로 쏘아 죽이고 새끼를 구했다. 날이 저물어 인가를 찾아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잠든 사이에 구렁이가 몸을 감고 남편의 복수를 하겠다며 내기를 제안했다. 구렁이는 남자에게 살려거든 종을 세 번 울리라고 했다. 그때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구렁이는 남자의 몸을 풀고 사라졌다. 날이 밝자마자 남자는 종소리가 난 곳을 찾아가 그곳에서 어제 구해 준 까치가 종 밑에 떨어져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전날 자신이 구해 준 까치 덕분에 목숨을 구한 남자는 과거에 급제하여 훌륭한 인물이 되었다.
대체로 이러한 줄거리를 담고 있는 이 설화는 남성의 신분과 동물의 종류 그리고 보은의 방식에 따라 다양한 변이형으로 구술된다. 은혜를 베푼 남성의 신분은 선비, 무사, 도사, 포수, 총각 등으로, 보은의 주체인 까치는 꿩이나 황새 혹은 비둘기로, 남성과 까치를 위협하는 구렁이는 뱀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보은의 방식으로는 꿩이 절에 있는 종을 울려서 주인공을 구렁이로부터 구해 주거나, 주인공의 몸속에 들어 있는 구렁이의 새끼 혹은 뱀의 독을 까치들이 쪼아서 주인공의 병을 낫게 해 주는 것이 대표적이다. 은혜를 베푸는 인물이나 은혜를 갚는 동물이 누구인가에 는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 설화들 대부분은 자신을 구해 준 인간이 위기에 처하자 은혜를 입은 짐승이 목숨을 다해 그에게 보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교훈적인 주제를 제시한다.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는 인간의 선행과 그에 따른 동물의 보은이라는 서사의 인과율(因果律,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을 지키며 자연스럽게 인간 사회의 윤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새와 까치」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이처럼 <은혜 갚은 까치> 설화를 인간의 선행을 강조하고 권장하는 이야기로 읽는 것은 얼핏 매우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 관점의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이 자신보다 약자인 존재를 구하고, 그 보답으로 약자인 짐승이 생명을 던지는 행위를 숭고한 희생으로 보는 것은 인간의 생명과 질서가 무엇보다 우선해야 할 가치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상의 관계에 담긴 윤리
이와 같은 인간 중심적인 해석과는 다르게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는 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의 관계를 재검토할 수 있게 해 주는 작품으로 이해되기에 충분하다.
이 이야기에서 까치는 인간의 은혜를 인식하고 이에 보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서 인간과 마찬가지로 주체성을 지닌 능동적 행위자로 볼 수 있다. 까치를 구한 인간의 행위와 이에 대한 까치의 보답은 모두 일방적인 도움이라기보다는 도덕적 의무로 해석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 설화는 인간과 동물 사이의 도덕적 상호작용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생명체가 서로에 대한 윤리적 책임을 지닌다는 관점을 제시하기에, 작품 속의 까치는 단순히 인간의 도움을 받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주체적으로 행동하며 윤리적 관계를 맺는 능동적인 존재로 재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모든 생명체가 동등한 가치를 가지며 모든 생명체가 서로 의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구렁이의 죽음을 단순히 악의 처벌로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 구렁이의 죽음은 모든 생명체가 상호 의존적인 세계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딜레마를 담고 있다. 이야기는 우리 모두가 복잡한 생태계의 일원임을 강조함으로써, 한 존재가 살기 위해 다른 존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세계 속에서 생태계의 균형이란 무엇이며 이러한 딜레마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묻는다.

『범해선사유고(梵海禪師遺稿)』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은혜 갚은 까치>는 대체로 특정 지역이나 사물과 무관하게 전승되는 민담형 설화이지만, 그 가운데 <치악산>1은 특이하게도 강원도 원주 치악산 상원사를 배경으로 하면서 이러한 질문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담고 있어 흥미롭다. 치악산은 이전에 적악산이었는데 꿩의 보은으로 ‘적(赤, 붉다)’자를 ‘치(雉, 꿩)’자로 바꾸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며, 배경이 되는 치악산 상 원사에는 꿩 관련 설화 기록이 다수 존재하고, 1921년 전라남도 해남 대흥사에서 발간된 『범해선사 문집(梵海禪師遺稿, 범해선사유고)』의 「자치종기(雌雉鐘記)」에도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실려 있어 이 장소와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와의 밀접한 관련성을 짐작할 수 있다. <치악산>의 줄거리는 <은혜 갚은 까치> 설화와 유사하지만, 상원사 신종에 얽힌 사연과 구렁이의 승천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각편과 구별된다.
1 최웅·김용구, 『강원전통문화총서3: 설화』, 121~123쪽, 『강원의 설화』Ⅱ,1, 치악산, 229쪽에서 재인용, 강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05. 1.
불심이 깊은 주지가 신종의 제작을 계획하여 전국에서 시주를 모았다. 그러던 중에 주지는 보살의 유혹에 빠져 시주로 받은 물건들에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주지가 시주의 반을 감추고 종을 만들자 그 종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에 절은 망하고, 주지와 보살은 각각 암·수 구렁이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구렁이가 꿩의 둥지를 위협하고, 이를 본 도사가 구렁이를 죽였다. 남은 암구렁이는 도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여인으로 변신하여 그를 유혹했다. 도사가 살려 달라고 애원하자 암구렁이는 폐허가 된 절에 있는 신종을 울리면 살려 주겠다고 했다. 새벽에 신종이 울리고, (결말 ①) 그 소리에 구렁이는 자신의 업보를 벗고 용이 되어 승천했다. (결말 ②) 도사를 죽이려던 구렁이는 사라졌다. 도사가 종이 있는 곳에 가 보니 꿩이 머리가 깨진 채 죽어 있었다. 도사는 꿩들의 장사를 지내고 떠났다.

상원사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 이야기에 따르면 구렁이는 과거에 탐욕적인 승려와 보살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구렁이를 악한 존재로 보는 것은 정당성을 획득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살아남아 남자를 해하려던 구렁이는 용이 되는 결말을 맞는다. <치악산> 설화에서 구렁이의 죽음이라는 딜레마는 이들이 과거에 저지른 죄가 드러남으로 인해 풀리는 듯했으나, 승천이라는 사건으로 더 큰 의문을 남긴다. 남편을 잃은 암구렁이가 인간을 죽이려 했음에도 결과적으로 용이 되어 승천하게 되는 결말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간을 중심에 두고 보면 구렁이는 악행을 저질렀으며, 까치는 숭고한 희생을 했다. 여기에는 “뱀딸기를 먹으면 몸에 뱀이 생긴다”, “뱀의 뼈를 밟으면 몸에 뱀이 생긴다”거나 “아침에 까치가 울면 그 집에 반가운 사람이 온다” 같은 민간의 속신(俗信)에 드러나듯 까치는 인간에게 친근하거나 이로운 동물이며 뱀 또는 구렁이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라는 일반적인 인식이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구렁이는 인간에 반대된다는 점에서 악이자 짐승의 영역에, 까치는 인간과 동일한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선 이자 인간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면 구렁이가 승천하는 결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영모(까치)」 | 김홍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이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비인간에게도 지키고자 하는 윤리 또는 도덕적 의무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을 중심에 두고 <치악산>에 등장하는 두 마리 구렁이를 보면, 인간에 의해 죽은 구렁이는 까치를, 남은 암구렁이는 인간을 해치려고 한다는 점에서 악행을 행하는 존재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렁이의 입장에서 보면 앞의 구렁이는 가족의 끼니를 책임지기 위해 까치를 죽이려 한 것이고, 뒤의 구렁이는 죽은 남편의 복수를 위해 남자를 죽이려 한 것이므로 이들이 악행을 저질렀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구렁이의 입장에서 그것은 가족에 대한 윤리적인 의무를 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구렁이 역시 윤리적 행위 주체라고 한다면, 구렁이가 승천하는 것은 가족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다한 데에 따른 합당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자가 구렁이를 죽인 것은 단지 선을 행한 것이라기보다는 약자에 대한 윤리적 의무를 다한 것이며, 까치가 목숨을 바쳐 종을 울린 것 역시 자기 삶을 구해 준 이에 대한 윤리적 응답이었다. 여기에 <치악산>에 그려진 구렁이의 승천이라는 에피소드는 인간을 죽이려 한 구렁이의 행위를 가족에 대한 윤리적 실천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해 준다. 이처럼 <은혜 갚은 까치>는 세계 속 모든 존재들이 자신에게 놓인 윤리적 의무를 자각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주체적 행위자라는 사실을 보여 주고,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법은 자신에게 주어진 윤리적인 의무를 다하는 데에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윤리적 의무 수행의 중요성
지금까지 <은혜 갚은 까치> 이야기를 재해석하고 다시 쓴 여러 동화들이 주로 이 작품의 권선징악이라는 주제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구렁이를 죽인 인간, 목숨을 바쳐 인간을 구한 까치, 남편을 위해 인간을 죽이려 한 구렁이의 상황과 행동에 주목하면서 이 설화가 세상의 모든 존재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고 있음을 강조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옛이야기에 따르면 결국 우리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명히 가를 수 없는 복잡다단한 세계 속에서 각자에게 놓인 윤리적 책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세상에서의 소임을 다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또한 우리가 윤리적 의무를 행해야 하는 그 대상은 자연이나 인간 또는 그 무엇이든 차등이 없어야 한다.
<은혜 갚은 까치>가 오늘날에도 꾸준히 다시 읽히는 이유는, 이 이야기가 권선징악을 넘어서 인간과 비인간 모두에게 삶이란 결국 각자의 위치에서 윤리적 의무를 충실히 행하는 것이라는 옛사람들의 통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데에 있지 않을까 한다.
참고문헌
원주시, 『치악의 향기』, 1981.
최웅 외, 『강원설화총람』 1~5, 북스힐, 2006.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구비문학대계』 1~85권, 조은문화사, 2002.
김균태, 「치악산 꿩(까치) 보은(報恩) 완형담의 의미 고찰」, 『고전문학과 교육』 19, 한국고전문학교육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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