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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우리의 전통 자물쇠는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그 시대의 첨단 과학기술이 사용됐다. 자물쇠는 중요한 물건을 넣어 두는 함이나 장롱, 뒤주 등 여닫는 물건에 채워서 열쇠가 없으면 열지 못하도록 잠그는 ‘장석’의 일종으로, 도난 방지 및 비밀 유지 외에도 가구장식(家具裝飾)의 아름다움을 돋우는데 사용되었다. 자물쇠는 자물통·소통·쇠통·쇄금·쇄약 등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자물쇠라는 말은 동사인 ‘자물’과 명사인 ‘쇠’가 합쳐서 만들어진 복합어이다. 여기서 ‘자물’은 ‘잠근다’는 의미를 지닌 ‘므다’에서 비롯됐고, ‘쇠’는 ‘쇠붙이’를 뜻한다. 이렇게 볼 때 자물쇠는 잠근다는 기능성을 강조한 말로, 폐쇄·보관·보수·수비 등을 상징한다.
자물쇠는 그것이 쓰이는 곳과 시대에 따라 구조와 형태, 재료에서 다양한 변화와 발전을 보였다. 우선 장·농·뒤주 등 가구의 기능과 구조가 발전하고 새로운 형태의 가구가 제작되면서, 그 흐름에 대응한 좀더 기능적인 자물쇠가 새롭게 제작됐다. 대롱자물쇠·함박자물쇠·물상형자물쇠·붙박이자물쇠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자물쇠의 재료 역시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고대의 자물쇠는 부여 부소산성에서 발굴된 백제 자물쇠처럼 주로 철로 만들었다. 그 이후 조선시대 중기까지는 구리와 주석 합금인 청동, 금도금을 한 금동을, 조선후기부터는 구리와 아연 합금인 황동을, 조선시대 말기에는 구리와 니켈의 합금인 백동으로 만들어졌다. 자물쇠의 사용 목적을 생각하면 부수기 어렵도록 튼튼해야 한다. 연구 결과 황동이나 백동 등은 현대에 만든 합금 못지않게 강도나 금속특성이 우수하다. 우리 조상의 합금과 단조·주조 기술이 뛰어났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알 수 있다.
전통 자물쇠는 크게 자물통과 고삐, 열쇠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자물통은 자물쇠의 몸통이고, 고삐는 잠글 물건을 거는 부분에 해당한다. 잠금장치 기능은 자물통과 고삐에 의해 이뤄진다. 고삐의 살줏대에 부착된 탄력성 있는>’모양의 살대를 자물통에 끼워 넣어 잠그는 것이다. 따라서 자물쇠는 자물통의 열쇠구멍과 살줏대에 부착된 살대의 크기와 구조에 맞는 열쇠가 아니면 절대 열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전통 자물쇠 중에는 단순히 일자형으로 돼 있어 한 번에 열리는 것도 있지만, 미로처럼 만들어 순서에 맞게 여러 단계를 조작해야만 열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이 담긴 종류도 있다. 지그재그의 손놀림으로 밀고 당기면서 자물통과 열쇠의 퍼즐을 하나씩 풀어가는 셈이다. 이와 같은 비밀 자물쇠는 조작하는 과정의 수에 따라 2단에서 8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러면 가장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열리는 조선시대의 백동 8단 비밀 자물쇠를 열어보자. 이 비밀 자물쇠는 겉에 열쇠구멍이 없어, 열쇠를 어떻게 사용할지 난감할 수밖에 없다. 우선 자물쇠 왼쪽 고삐 앞판에 붙어 있는 꽃무늬의 광두정을 아래로 누른다(1단계). 광두정을 누른 상태에서 줏대를 고삐방향으로 밀면(2단계), 오른쪽의 회전판을 180°회전시킬 수 있다(3단계). 이 단계를 거치면 철커덕하고 열쇠구멍이 나타난다. 그러나 구멍의 모양이 열쇠 끝의 생김새와 다르기 때문에 이 상태에서는 열쇠가 들어가지 않는다. 열쇠가 제짝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자! 자물통 밑면 양쪽 가장자리에 부착된 꽃무늬 광두정 가운데 하나를 고삐 방향(왼쪽)으로 밀면(4단계), 밀대판이 여닫이문처럼 열려 밑면에도 열쇠 구멍이 노출돼 비로소 열쇠 조작이 가능해진다. 옆면의 구멍에 열쇠를 자물통과 직각으로 해 열쇠 위에 부착된 ‘ㄱ’자 모양을 안으로 감듯이 넣으면 들어간다(5단계).
열쇠가 몸통 안으로 들어가면 열쇠를 잡은 채로 고삐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러면 2개의 홈에 열쇠의 돌출 부위가 딱 맞으며, 열쇠 끝 돌출 부위가 안으로 들어간다(6단계). 그런 후 열쇠를 몸통 방향과 수평되게 90°틀고(7단계) 열쇠를 살줏대 방향으로 수평되게 밀면 드디어 고삐가 빠진다(8단계). 비밀 자물쇠는 이젠 풀렸다 싶을 때 다시 막다른 골목이 나타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열기 어려울수록 초정밀 수작으로 불리는 것은 당연하다. 이와 같은 비밀 자물쇠의 내부를 살펴보자(8단 비밀 자물쇠 그림 참조). 백동 8단 비밀 자물쇠 속에 들어 있는 속목창은 고삐가 들어가 살대가 펼쳐져 빠지지 않도록 해 진정한 자물쇠의 구실을 하는 중요한 부품이다. 위에는 줏대가 들어가는 구멍이 있고, 아랫부분에는 ‘土’자 모양의 구멍이 뚫려 있다. 고삐에 붙어 있는 살줏대와 살대는 아랫구멍으로 들어간다. 살대는 이 구멍을 지나 퉁겨지면서 펼쳐져 열쇠를 눌러 주지 않는 한 고삐가 나오지 않게 된다. 이러한 비밀 자물쇠에 담겨있는 과학 원리를 살펴보자! 밑면에 부착된 밀대판에 배흘림을 갖도록 만들었으며, 가운데 부분이 약간 오목하게 들어가도록 두드려 판스프링 역할을 하도록 설계하였다. 이는 밀대판을 오래 사용했을 때 헐거워지는 것을 방지하여 쉽게 양쪽으로 밀리지 않도록 하는 특수 설계 기법인 것이다.
특히 자물쇠의 속뭉치인 살줏대에 부착되는 살대는 탄력이 가장 중요하므로 밀대판과 같이 백동판을 망치로 두들겨 강도를 높이고 탄력성을 갖도록 만들었다. 살대가 마치 다이빙대와 같은 탄력을 갖게 하여 잠기거나 열쇠를 빼었을 때 원위치로 오르내릴 수 있도록 탄력을 조정하여 설계한 것이다. 이러한 설계 구조와 성능은 외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며, 자물쇠를 만들기 위한 정확한 합금과 단조·주조 기술은 우리 선조들의 손끝의 정밀함과 겨레 과학의 정수를 보여 주는 것이다. 지금도 지문 인식이나 성문 인식·체온 인식 잠금 장치의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보안 유지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잠금 기술 개발에 첨단과학 기술이 동원되고 있다. 우리 겨레 또한 잠금·보안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들을 개발하여 왔는데, 그 과학 기술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 고유의 자물쇠이다.

-글 윤용현(국립중앙과학관 교육문화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