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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침선, 매듭, 소목, 옻칠 등 전통공예분야의 다양한 종목을 각 분야 전문가로부터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문화유산전문교육기관이다. 박세원 양이 처음 옻칠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를 통해서였다. 시작한 지 1년밖에 되지 않는 경력. 하지만 박세원 양은 열정 하나로 놀라운 성장을 거듭해 올해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주최한 제10회 전통미술공예공모전에서 총장상을 수상했다. 앳된 얼굴의 수줍은 여고생이지만 옻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눈을 빛내는 세원 양은 누구보다도 옻칠을 사랑하는 듯했다.
현재 예일여자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박세원 양은 진로 컨설팅을 통해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에 대해 알게 되었고, 원래 미술을 좋아했던 세원양은 전통공예를 배워야겠다고 생각 하던 중 한국문화의집이 운영하는 한국전통공예간축학교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선생님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것에 끌렸지만 우선 어떤 공예분야를 할 것인지 정하기 위해 한국문화의집의 ‘전통공예디자인강좌’를 먼저 들어보기로 하였다. 유명한 디자인 회사 대표, 대학교수 등 여러 디자인 분야의 전문 강사들이 매주 다른 강의를 해주니 강좌를 들을수록 전통공예에 대한 세원 양의 관심은 더욱 커졌다. 더 많은 내용을 인터넷을 통해 알아보다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1호 옻칠장 수곡 손대현 선생님의 나전칠기 작품을 보고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 길로 선생님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세원 양은 오직 손 선생님만을 바라보고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의 옻칠반으로 뛰어들었다.
세원 양이 처음 옻칠반 수업에 들어갔을 때 수강생들은 ‘어린 학생이 여기는 왜 왔지?’ 하는 시선으로 세원 양을 바라봤지만 지금은 일찍 옻칠 공예를 배우게 된 것을 부러워하며 응원해주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제작년까지만 해도 40~50대의 중년층이 많았던 교실에는 어느새 세원 양과 같은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어가고 있다. 중년층과 젊은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 땀흘리며 서로 독려하고 부족한 점을 가르쳐주는 등 가족적인 분위기 속에서 세원 양은 옻칠 공예를 배울 수
있었다.

세원 양은 인터뷰 중에도 몇 번이나 손대현 선생님에 대한 존경을 숨기지 않는 등 선생님을 매우 따르고 있었다. 손 선생님에게도 역시 세원양은 각별한 제자였다. 1년 전 세원 양이 처음 자신을 찾아왔을 때는 ‘이 어린아이가 할 수 있을까, 하다가 말고 도망가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을 했다고 말하며 웃었다. 20년이 넘게 다양한 연령층 수강생들에게 옻칠을 가르쳤지만 고등학생이 배우고 싶다며 찾아온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걱정과는 달리 세원 양은 옻칠반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여겨 방학 때마다 손 선생님의 공방이 있는 경기도 광주 곤지암까지 버스와 택시를 타고 오가며 작업하고 기술을 습득해갈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세원 양이 마포에 살고 있어 거리는 물론 비용도 만만치 않았지만, 옻칠을 더 배우고 싶다는 마음을 누를 수는 없었다. 다행히 부모님께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원 양은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신 부모님께 크게 감사하고 있었다.

세원 양의 잠재력을 믿은 손 선생님은 이번에 총장상을 받은 작품인 ‘서안과 필통’ 작업에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삼베를 발라서 칠하자고 한 것도, 큰 욕심 없이 단순함에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보자고 한 것도 선생님의 제안이었다고 한다. 또 학생인 세원 양의 신분을 고려해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발전해나가라는 뜻으로 서안과 필통을 주제로 잡았다. 2월부터 4월까지 작업은 계속되었고, 공모전 마감일 전날까지도 세원 양은 작품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세원 양은 자신의 열정과 손 선생님의 도움으로 작년부터 꿈꾸었던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공모전에서 당당히 총장상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 수강생들의 실력과 성과를 부러워하던 소녀는 이제 누군가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전통공예는 세계적으로 알릴만한 민속 문화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이 부족하고, 있다 하더라도 일반인들에게 홍보가 잘 되어있지 않다. 세원 양의 옻칠에 대한 열정은 전통공예에 대한 스스로의 가치관이 뚜렷했기 때문에 가능했지만, 그 열정을 눈에 보이는 작품으로 만들 수 있도록 전문적인 강사진과 커리큘럼을 제공한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의 몫 또한 일조하였다. 옻칠은 티끌이나 먼지가 조금만 묻어도 처음부터 다시해야 하는 고되고 힘든 작업이다. 수십 번 이상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은은한 빛깔을 가진 하나의 옻칠 작품이 완성된다. 하루 이틀로는 절대 완성할 수 없는 공예다. 이러한 옻칠의 성격이 그대로 옮기라도 한 듯 세원 양은 부드럽고 열정적인 모습이 닮아있었다. 세원 양은 한 번 한 번의 옻칠을 통해 점점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다. 손 선생님은 전통공예건축학교를 하나의 밭으로 비유하면서 문화를 씨앗이라고 하였다. 배움을 통해 씨를 뿌리고 문화의 꽃을 피워낸다는 것이다. 전통공예를 배울 곳이 많지 않은 여건에서 일반인에게 개방된 전통공예건축학교는 큰 기회이다. 손 선생님의 말씀대로 세원 양을 비롯한 더 많은 미래의 장인들이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로 시작해 문화의 씨앗을 뿌려 꽃을 활짝 피울 수 있기를 바란다.

- 글˚오수민, 최고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 대학생기자단 징검다리 4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