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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8 불교미술의 이해 삼국시대부터 시작한 석조건축미술과 불교 조각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4-08-05 조회수 : 5138


불교미술의 이해 삼국시대부터 시작한 석조건축미술과 불교 조각
 

석조건축미술 가운데 가장 많은 수가 남아있는 석탑건축미술은 삼국시대부터 이루어졌다. 백제의 석탑으로는 전라북도 익산시의 미륵사지 석탑과 충청남도 부여군의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남아 있고, 신라의 석탑으로는 경주시의 분황사 모전석탑이 있다. 이 석탑들은 모두 7세기 전반기에 건립되어 당시의 석조 건축술의 일면을 잘 알게 한다.

통일신라시대 최초의 석탑은 경주 감은사지 동·서 3층 석탑이다. 이후 경주의 고선사지 3층 석탑, 나원리 5층 석탑, 황복사지 3층 석탑에 이어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과 경상북도 금릉군의 갈항사지 동·서3층 석탑(758년)에서 전형적인 신라석탑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때의 신라석탑은 2층 기단 위에 탑신석과 옥개석, 정상에 상륜부의 장식이 정연한데, 이와 같은 형태가 곧 한국 석탑의 전형양식으로 성립된 것이다. 이후 9세기에 들면서 신라석탑은 부분적으로 생략화의 경향을 보이며 규모에 있어서도 작아지는 형식을 보인다.

미술의 현상이 절정기에 달했을 때 기발한 특수양식이 나오듯이 통일신라시대에도 8세기 중반 예술의 황금기에 특이한 형태의 석탑이 나타났다. 불국사의 다보탑, 화엄사의 4사자 3층 석탑을 대표로 들 수 있으며, 사자탑의 건조는 고려와 조선시대까지도 그 전통과 계보가 이어졌다.

고려시대의 석탑은 초기에 신라식을 본받더니 중반에는 둔중해지는 고려식의 석탑을 볼 수 있다. 경기도 개풍군의 남계원 7층 석탑, 전라북도 김제군의 금산사 5층 석탑, 강원도 춘천시의 7층 석탑을 대표로 들 수 있다.
 


불교미술의 이해 삼국시대부터 시작한 석조건축미술과 불교 조각
 



조선시대는 비록 배불숭유하의 사회였으나 석탑의 건립이 상당수 이루어졌다. 강원도 양양군의 낙산사 7층 석탑, 경상남도 함양군의 벽송사 3층 석탑 등 일반형 이외에 서울의 원각사 석탑과 경기도 여주군의 신륵사 석탑 같은 특수형도 건조되었다

석조건축미술로 하나의 계보를 이루고 있는 조형물로는 석조부도와 부도비, 석등, 당간과 당간지주, 석교 등 실로 다양하다. 석조부도는 석재로 이루어진 스님의 무덤으로 통일신라 후반인 9세기 중엽에 당나라로부터 도의(道儀)국사가 선종(禪宗)을 들여와 전국에 9산선문의 법통이 이루어지자, 각 산문(山門)에 조사(祖師)스님을 모시기 위해 부도가 건조되었다. 구조가 8각 평면에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가 차례로 놓인 8각 원당형으로, 이 형태가 하나의 기본 양식으로써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고려 말기부터 조선시대에는 건조에 간편한 석종형부도가 크게 유행하였다. 석조부도에는 건축 양식의 특징도 보이지만 각 부재의 조각의 그 내용이 더 주목을 끈다. 최근에 이르러 석조부도를 승탑이라 칭(稱)하는 혹자가 있으나 그것은 큰 잘못으로 「탑」이란 용어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 봉안처의 stῠpa가 어원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석등은 백제시대의 부재들이 남아 있으나 크게 유행한 때는 통일신라시대이다. 법당 앞에 건조하여 실제 법등을 밝혔는데, 형태는 연꽃 문양의 하대석 위에 긴 간주가 세워지고 그 위에 연꽃 문양의 상대석이 놓이며 화사석과 상륜석이 차례로 장식되는 양식으로 평면 8각이 기본이다.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건조되나 부분적인 간략화를 볼 수 있다.

당간과 당간지주는 사찰에서 야외 법회를 열 때 기식(寺旗) 혹은 괘불을 걸 수 있도록 세 운 것으로, 통일신라 이후 각 시대에 따라 간략화의 경향을 보인다. 석교는 통일신라시대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와 연화교·칠보교를 비롯하여 시대에 따른 사찰 주변에 이러 한 홍예의 석교가 건조되어 있 어 그 당시의 석조건축미술을 엿볼 수 있다.

불교 조각은 주로 불상을 중심 한 주위 권속들과 관계 조각들 을 말한다. 한국의 불상 조각은 1~2세기경에 멀리「간다라」지방에서 조상한 양식이 중국을 통하여 삼국시대에 들어왔다. 불상은 조성된 재 료에 의하여 금제불, 금동불, 청동불, 철불, 석불, 마애불, 소조불, 토 불, 지불 등으로 나누며 형태에 따라서는 입불, 좌불, 반가상, 반가사 유상, 열반상 등으로 분류하는데 한국에는 이와 같은 모든 종류의 불상이 전해지고 있다.

처음 불상이 조성될 때는 소형(小形)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에, 삼국시 대 불상으로는 작은 형태의 금동불이 많으며 대체적으로 삼존불의 형 식을 취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러서도 금동불이 많이 조성되 었으나 그 양식의 시원은 삼국시대에 두고 있다.

석불은 백제시대의 마애불로 충청남도 태안군의 태안 마애삼존불(태 을암 마애삼존불)과 서산시의 서산 마애삼존불(인바우 마애삼존불) 이 유명하다. 석불은 원각불(圓刻佛)을 말함인데 통일신라시대에 이 르러 많이 조성되었고, 그 절정은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石窟庵) 본존 아미타여래좌상과 그 주위의 보살, 제자, 권속들 조각이라 하겠다. 이 밖에 경주의 남산을 살펴보면 골짜기의 바위마다 마애불상이 조각되 고 조망이 좋은 자리에 석탑과 석불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경주 남산을 불교미술의 보고(寶庫)라 하여 「慶州南山의 佛蹟」이라는 책까지 간행하였다. 이밖에 각 지방에 원각불과 마애불상들이 조각되 었는데 경상북도의 군위군 팔공산 삼존석굴 불·보살상, 봉화군 북지리 마애여래좌상 등을 손꼽을 수 있다.

금동불로는 불국사의 아미타 여래좌상과 비로자나불좌상, 경주의 백율사 약사여래입상 과 전(傳) 남산(南山) 삼불사 발견 금동반가사유상(국보 제 83호) 등이 대표적이다. 신라 하대에는 철불이 조성되었는 데 전라남도 보림사 철불좌 상, 전라북도 실상사 철불좌 상, 강원도 도피안사 철불좌 상 등이 유명하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통일신라 시대와 같이 불교를 크게 옹호 하였으므로 각처에 불교적인 조각이 크게 이루어졌다. 충청남도 논산 시의 개태사 삼존석불, 서울 북한산 승가사 마애불좌상, 경기도 하남 시 하사창동 철조석가여래좌상 등은 널리 알려진 불상들이다. 이 시대 의 성보로 조성된 불상 조각으로 불감(佛龕)이 제작되어 소형의 삼존 불상을 봉안하며 그 주위 벽면에 많은 불·보살상과 권속들을 배치 조 각하였다. 이들은 고려 후반기가 시발인데 이후 조선시대까지의 실물 들을 엿볼 수 있어 당시의 불교 조각상들로 귀중하다 하겠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불교가 위축되는 가운데서도 민간신앙으로 구복, 구명적인 차원에서 법등이 이어졌다. 특히 불교를 옹호한 군왕과 조정 이 있어 사찰의 보수나 탑의 수리 등 불사가 진행되었으며 이에 따라 국왕·왕족들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불교 조각도 함께 이루어졌다. 원각사의 창건과 석탑·석비의 건립, 경기도 수종사 5층 석탑과 불상 군의 안치, 전라북도 송광사 삼존상 조성, 충청남도 부여군 무량사 삼 존상 조성, 경상북도 금릉군 청암사의 불사와 불상 등이 그 좋은 예이 다. 조선시대에 토불, 소조불이 중형 혹은 대형으로 많이 조성되었는 데, 이것은 당시의 정세 하에서 선대와 같은 불상의 조성 자료를 구하 기 어려웠던 사정에서 유행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성
 



- 글˚정영호 (단국대학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