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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이하 백제역사유적지구)는 2010년 1월 세계유산 우선등재추진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재)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추진단은 2011년 5월부터 문화재청과의 긴밀한 협조 속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와 진정성, 완전성을 도출하고 보존관리, 주민들과의 소통, 통합관리기구의 설치 등과 같은 필요한 준비를 완료한 후 2014년 1월에 영문등재신청서를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하였다. 국제기념물 및 유적협의회(ICOMOS)에서는 2014년 9월 전문가를 파견하여 백제역사유적지구에 대한 현장 실사를 완료하였다.
백제는 서기전 18년에 건국하여 678년 동안 존속하면서 많은 문화유산을 남겼다. 백제의 역사는 수도의 변천에 따라 한성시대(서기전 18~서기 475), 웅진시대(475~538), 사비시대(538~660)로 나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의 왕도였던 공주, 부여와 왕궁이 있었던 익산에 소재한 백제유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도성 유적, 사찰 유적, 능묘 유적으로 나누어진다. 도성 유적에는 공주 공산성(사적 제12호), 부여 관북리 유적(사적 제428호)과 부소산성(사적 제5호), 부여 나성(사적 제58호), 익산 왕궁리 유적(사적 제408호)이 포함되었다. 사찰 유적에는 부여 정림사지(사적 제301호), 익산 미륵사지(사적 제150호)가 포함되었다. 능묘 유적에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사적 제13호), 부여 능산리 고분군(사적 제14호)이 포함되었다.
공산성은 백제가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황급히 웅진으로 천도하면서 방어를 가장 우선시하여 만든 왕성이었다. 때문에 산성 안에 왕궁을 둔 독특한 구조를 가졌다. 사비 도성은 내부에는 왕이 정치를 돌보는 정치 공간(관북리 유적), 후원 겸 피난성의 역할을 하는 공간(부소산성)과 이를 둘러싼 나성으로 이루어졌다. 별도였던 익산 왕궁리 유적은 전조후원형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정림사지는 도성의 중심부에 세워진 국가 사찰이다. 정림사지의 사찰 구조는 전형적인 중문-탑-금당-강당으로 이루어진 1탑-1금당 구조이다. 미륵사지는 1탑-1금당-강당의 구조를 기본으로 하면서 3탑-3금당의 삼원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3탑-3금당의 삼원 양식은 미륵의 용화삼회 신앙을 표현한 것이다.
송 산리고분군의 횡혈식석실분은 한성시대 이래의 석실분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전축분인 무령왕릉과 송산리 6호분은 중국의 전축분을 받아들여 만든 것이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의 내부구조는 터널형에서 점차 평면 육각형에서 사각형으로 바뀌어 갔다. 능묘의 재질을 석재로 한 것은 횡혈식석실분 전통의 계승을 보여준다.

백제역사유적지구는 6개의 세계문화유산 기준 가운데 기준 ⅱ, 기준 ⅲ, 기준 ⅳ를 충족하고 있다. 기준 ⅱ는 ‘인간적 가치의 중요한 교류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준 ⅲ은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준 ⅳ는 ‘건조물의 유형, 건축적 또는 기술적총체, 또는 경관의 탁월한 사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부소산성과 나성 축조에서 확인되는 판축 공법, 부엽 공법, 토심석축 공법은 일본에 전해져 고대 일본의 토목·건축 기술을 발전시켰다. 일본의 사찰 건축은 백제가 파견한 장인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가람 배치는 백제의 가람 배치를 원형으로 하였다. 송산리 고분군 및 능산리 고분군에서 완성된 횡형식석실분은 일본에 전해져 일본열도에서 크게 유행하였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중국산 도자기와 오수전, 일본산 관제, 동남아시아산 구슬 등의 유물들은 백제와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사이에 이루어진 문물교류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기준 ⅱ를 잘 충족시키고 있다. 백마강을 자연 해자로 활용하면서 부소산의 봉우리들을 연결하여 쌓은 사비 나성은 자연조건을 잘 활용한 것으로서 백제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미륵사지의 삼원 양식의 가람 구조는 백제에서만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가람배치이다. 목탑의 형식을 석탑으로 만든 최초의 사례인 미륵사지 석탑과 비례미와 정제미가 뛰어나 석탑의 완성작인 정림사지 석탑은 이후 한국 탑파 문화의 원류가 되었다. 정림사지에서 확인된 와적 기단은 기단부를 아름답게 꾸미는 백제의 창조적 공법이다. 능산리 고분군의 단면 6각형의 무덤 구조는 백제가 만들어낸 가장 완성된 형태의 무덤구조이다. 이러한 모습은 기준 ⅲ을 잘 충족시키고 있다.
공산성과 부소산성 및 왕성을 둘러싼 사비나성은 자연을 최대로 활용하여 만든 탁월한 경관을 보여준다. 왕성과 산성, 나성의 축조에서 활용된 부엽 공법, 판축 공법, 토심석축 공법과 단면 6각형의 무덤 구조는 당시 동아시아에서 가장 발달된 토목·건축 기술의 총체를 잘 보여준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직사각형의 궁궐 담장 안에 남쪽에는 전각 및 관청 건물을, 북쪽에는 연못과 동산 등 후원을 배치한 전조후원형이다. 이는 5~7세기 동아시아 궁궐 구조와 경관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모습은 기준 ⅳ를 충족시키고 있다.
고고학적 유적(Site)인 백제역사유적지구는 금석문과 각종 문헌 자료에 의해 백제 당시의 것임이 입증되었으며, 현재에도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완전성을 갖고 있다. 또 형태와 디자인, 자재와 구성 물질, 용도와 기능, 전통·기술·관리체계, 입지와 주변 환경 등이 모두 진정성을 갖고 있다. 충청남도와 공주시, 부여군 그리고 전라북도와 익산시는 “백제역사 유적지구 세계유산 통합관리단”을 발족시켜 세계유산을 보존 관리하고, 지역민들은 물론 세계인들과 공유하는 방법 등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있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가지고 있으면서 진정성과 완전성을 구비한 백제역사유적지구가 2015년 상반기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꼭 세계유산으로 등재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 글˚노중국 (공주·부여·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