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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 양띠의 민속과 상징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5-01-02 조회수 : 7946
기획특집 2015년 을미년 '양'의 해 양띠의 민속과 상징

금년은 양띠 해이자 청양 띠

을미년(乙未年)이다. 12년 만에 오는 양띠 해이자, 60년 만에 돌아오는 청양띠의 해이다. 시간은 한 방향으로 곧게 흐르면서도, 순환 반복한다. 금년은 서기 2015년이다. 단기로는 4348년, 불기로는 2559년, 공기로는 2556년이다.
각각 예수, 단군, 석가, 공자가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지금까지 곧게 흘러온 시간이다. 빅뱅은 지금부터 150억 년 전에 있었다 한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자연현상 속에서 시간은 춘하추동처럼 주기적 순환을 거듭한다. 그래서 직선형 시간관도 있지만, 한편으로 순환형 시간관도 있게 된다.
순환형 시간관을 사용해온 한자문화권에서는 10간 12지를 조합하여 60년을 한 주기로 삼았다. 그리고 고대 중국에서는 주변 국가의 띠동물 문화를 받아들여 추상적인 12지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동물에 비정하여 띠동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간지만 아니라 오행사상도 부회된다. 10간을 둘씩 짝지어 5행에 비정했다. 10간의 처음인 갑과 을은 목행(木行)으로 청색에 해당한다. 금년은 을미년이기 때문에 을이 곧 청색이요, 미가 곧 양이어서 을미년은 청양띠가 된다. 갑오년인 작년은 그래서 청말띠였다.
우리말로 띠와 끈은 모양이 다르다. 풀어져 있으면 그냥 끈이지만, 머리띠, 허리띠처럼 둥근모양을 하면 띠가 된다. 열두 띠라는 말이나 띠동물이라는 말에서 띠는 수레바퀴처럼 둥근 모양을 한 것이며, 비유하자면 12년을 주기로 하는 바퀴살 열두 개에 각각 동물의 이름을 붙인 것이 이름하여 띠동물인 셈이다.

양 이미지양 이미지 2


양은인간에게 많은이로움을주는동물

동물 중에서도 양은 활동적이면서도 유순하고, 집단생활에도 잘 적응하여 서로 싸우는 일이 없다. 또 먹성도 좋아 건강하다. 띠동물 중에서 양은 원숭이와 마찬가지로 한국 토종은 아니다. 이런 까닭에 한국에서는 양띠를 염소띠라고도 한다. 염소를 일명 산양이라고도 하기 때문에 면양과 혼동하여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삼국시대에 일본에 양을 보냈다는 일본 측 기록이 있지만, 신빙성이 약하다. 당시 중국의 여러 기록들에서는 우리나라에 양이 없다고 하였다. 대신에 고려와 조선조에 약제나 제물용으로 쓰기 위해 몽고나 중국에서 양을 대량으로 들여와 양목장을 경영했던 사례는 많았다. 산업용으로 면양을 기르기 시작했던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다.양털배자 20세기_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양모 1㎠를 짜는데 약 6~7만 개의 양털이 들어간다고 한다. 온순한 양처럼 양털도 부드럽고 섬세하다. 양은 인류에게 많은 것을 주어왔다. 양모로 옷감을 만들고, 고기는 먹고, 가죽은 가재도구를 만들거나 겔과 같은 천막집을 짓는 데 사용한다. 유목사회에서 양은 인간의 의생활, 식생활, 주거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뿐만 아니라 희생양이라는 말이 뜻 하는 것처럼 신과 인간이 소통하는 종교생활에서 제물로 바쳐지기도 했다.
그 때문인지 양이 들어가는 한자어는 대개 긍정적이며 좋은 의미를 가진 예가 많다. 옳을 의(義)는 양(羊)과 나 아(我)자를 동일시하여 의로움의 표본으로 삼았고, 양(羊)과 클 대(大)자를 합해 아름다울 미(美)자를 삼았다. 양(羊)자에 말씀 언(言)이 둘 붙어 착할 선(善)자를 이루니, 양은 목자의 말을 잘 들어서 어긋남이 없기 때문에 선함의 표상처럼 여겨져 왔다. 양은 인간에게 많은 이로움을 줄 뿐만 아니라, 의롭고, 착하고,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져 왔던 것이다.



꿈에 양을보면 좋은일이 많다

양은 다른 동물들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민속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토종이 아니었던 까닭인지도 모른다.
신년 들어 맨 처음 양날을 상미일(上未日)이라 한다. 이날은 길일(吉日)로 여겨져 어떤 일을 하여도 탈이 나지 않는 날로 믿는다. 다만 전남 일부 도서해안지역에서는 염소가 방정맞다고 해서 배를 내지 않는다. 제주에서는 ‘미불복약(未不服藥)’이라 해서 상미일에는 약을 먹어도 약효가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식욕이 좋은 양은 약이 필요 없을 정도로 병에도 강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신라 제35대 경덕왕(742~765 재위)은 왕권과 중앙집권제의 강화를 위해서 중국에서 많은 제도를 받아들여 시행하는 한편 우리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문화유산을 남겼다. 경주 주변에는 많은 왕릉이 있다. 왕릉은 호석(護石)으로 둘러있다. 호석에 새겨진 12지신은 12띠 동물을 왕릉 수호의 신장으로 삼은 것으로서 독특한 묘제를 이루었다. 또 왕릉이며 고관대작을 지냈던 인물들의 무덤 앞에는 양석(羊石)을 세운다. 양석은 돌로 양의 형상을 조각하여 무덤 앞 양면에 세운 것을 말한다. 무덤 수호를 위해 양호석(羊虎石) 또는 양마석(羊馬石) 등 좌우 짝을 맞춰 세우기도 했다.

무등산에 있는 김덕령 장군 묘소 앞을 지키고 있는 양석(羊石)태조 이성계가 하루는 양을 잡으려는데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져나가는 꿈을 꾸었다. 
무학대사가 해몽하기를 양의 두 뿔과 꼬리가 떨어지면 남은 글자는 임금 왕(王)자가 된다 하였다. 양이 나오는 꿈을 길몽으로 해석하는 예는 많다. 양을 끌어다가 집안에 들여 놓거나 매어 놓는 꿈을 꾸면 좋은 일이 생긴다. 풀밭에서 풀을 뜯는 양을 본 꿈은 태몽으로 믿는다. 이러한 꿈을 꾸고 낳은 자식은 효성이 지극하며, 재복을 타고난다. 양을 몰고 가는 꿈을 꾸면 훌륭한 목회자가 되거나 또는 좋은 선생님이 되어 신도나 제자의 존경을 받는다. 양젖을 마시는 꿈을 꾸면 마치 양젖이 가진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과 같아서 여러 가지로 이로운 일이 생긴다. 양젖을 짜거나 짜는 것을 본 꿈은 사업으로 돈을 벌거나, 정신적인 가르침이나 교훈을 얻을 조짐이다. 꿈에 양고기나 염소고기를 먹으면 학문을 하는 학자가 되거나 또는 책임있는 중책을 맡게 된다.

수많은 비유와상징의 주인공

흔히 쓰는 속담에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말이 있다. 양은 일반적으로 선하고 순하며, 군거생활을 잘하는 동물로 생각되면서 이러한 양의 속성이 관용어나 속담, 또는 비유적으로 많이 쓰여 왔다. 성경에 양에 대한 언급은 500여 회 이상이라고 한다. 목자의 인도로 신 앞에 나아가 구원을 받을 신도들은 양과 같다.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보듯이 관(官)과 민(民)의 사이를 목자와 양의 관계로 묶어 비유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관념이 동양에서도 예전부터 있어 왔다. 중국의 제자백가를 비롯한 많은 사상가들이 인성을 교화하고 사회를 계도하기 위해 양을 즐겨 비유로 활용했다. 보리수 밑에서 해탈을 위해 6년간 수양을 마친 석가가 한 잔의 양유를 마시고 나서 화락의 기운을 얻어 인류의 정신적 지주로 우뚝 서지 않았던가.
인간과 양의 관계는 단지 경제적이며 실용적인데 그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이며 정신적인 추상화까지도 성취해내기에 이르렀던 것이기에 더욱 진하다 하겠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이라면, 양은 순수를 상징한다. 태생적으로 선을 체현한 양은 희생양이 되면서까지 인간에게 수많은 교훈과 순정의 품성을 심어주었다.
인정과 세태가 각박해지고 또 엽기적인 사건, 사고를 접할 때마다 천진한 양떼의 삶이 부럽다. 무리를 뜻하는 군(群)은 군자인 군(君)과 순한 양(羊)이 모아진 글자다. 본래 양이 군거 생활을 하는데서 착안한 글자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군자연한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이고 보면, 비록 무리지어 살더라도 남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는 의연함과 품위, 그리고 공생의 지혜가 함께 기대된다. 갈수록 험악해져 가는 사회를 접하면서 양띠 해인 금년만큼은 양처럼 무리지어 평화롭게 사는 그런 사회, 그리고 어려움을 풀어줄 지혜로운 목자의 탄생을 소망해 본다.

글 나경수 전남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