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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 동아시아의 줄다리기 - 한·중·일 줄다리기의 비교와 줄다리기의 가치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5-12-02 조회수 : 5947
동아시아의 줄다리기-한·중·일 줄다리기의 비교와 줄다리기의 가치, 줄 당기는 모습 (촬영 : 주병수)

Ⅰ. 놀이이면서 제의인 줄다리기
줄다리기는 두 편으로 나누어진 집단이 각각 자기 쪽으로 줄을 당겨 승부를 가르는 놀이이다. 줄다리기에 사용되는 줄은 짚, 등나무, 대나무, 나뭇가지, 넝쿨, 억새, 삼, 대마, 동물 가죽 등을 재료로 만든다. 줄다리기를 전승하는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다양한 재료가 줄을 만드는 데 이용된다.
줄다리기는 편을 나누어 서로 자기 방향으로 줄을 당겨 승부를 가리기 때문에 경쟁적인 성격이 강하다. 하지만 줄다리기의 목적이 오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줄다리기의 궁극적 목적은 풍요로운 삶이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두 집단이 경쟁하는 것이며, 그 경쟁 과정에서 공동체 구성원 간의 화합과 단결이 이루어진다. 줄다리기는 경쟁으로 승패를 결정하는 놀이이지만, 동시에 구성원의 화합과 단결을 통해 공동체의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이기도 한 것이다.

Ⅱ. 줄다리기의 본거지, 동아시아
줄다리기는 전 세계에서 행해져 왔다. 그동안 조사 연구된 성과에 의하면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아프리카, 영국을 비롯한 유럽 일부 지역, 아시아, 남태평양 제도 등지에서 줄다리기가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에스키모나 캄차카 반도의 이텔리멘족 역시 줄다리기를 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줄다리기를 하는 공동체는 수도 경작민, 화전 농경민, 채집 수렵민, 해양 어로민 등 다양한 생업 집단에 걸쳐 있다. 줄다리기 전승과 연행 공동체의 다양한 생업과 전 세계적 분포 양상을 염두에 둘 때, 줄다리기는 범인류적 문화 현상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줄다리기의 분포 밀도가 유독 높아 줄다리기 문화권이라 부를 수도 있는 영역이 동아시아 지역에 펼쳐져 있다. 동아시아 줄다리기 전승과 연행의 주체는 일부 화전 농경이나 해양 어로를 생업으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벼농사 지대의 수도 경작민이 압도적이다. 이렇게 줄다리기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줄다리기 양상을 중국, 일본, 한국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술비놀이

Ⅲ. 오래된 줄다리기 기록 문헌이 전해오는 중국
중국은 오래된 줄다리기 관련 문헌 기록을 가지고 있다. 6세기와 8세기에 걸쳐 간행된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수서·지리지(隋書·地理志)」, 「봉씨문견기(封氏聞見記)」 등에서 줄다리기 기록이 나타난다. 이 문헌들 속에서 줄다리기는 구강(鉤强), 견구(牽鉤), 시구(施鉤), 발하(拔河), 발하혈(拔河絜), 타구지희(拖鉤之戱)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기록된 내용을 종합해 보면, 중국의 줄다리기는 군사 훈련에서 놀이화한 것이다. 이후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로 전개되다가, 대규모 집단적 놀이의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이른 시기의 줄다리기 기록을 근거로 본다면 줄다리기가 중국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성립되기도 한다. 특히 「봉씨문견기」에 기록된 고대 중국 줄다리기 양상이,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줄다리기와 유사하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줄의 형태, 놀이 목적과 방식 등에 있어서 중국 문헌의 기록과 한국·일본의 줄다리기는 유사하다. 줄다리기의 승패에 따라 풍년을 점치는 방식, 150m 내외의 거대한 몸줄과 수백 개의 곁줄로 구성된 줄의 형태, 비녀목으로 암줄과 수줄을 고정시키는 방식 등에서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풍년을 점치는 거대한 쌍줄다리기를 한·중·일은 공유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한·중·일 삼국의 줄다리기가 한 뿌리라는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중국에서는 전통적인 줄다리기가 사라졌다. 소수 민족을 중심으로 게줄다리기가 소수민족 전통 체육대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정도이다. 이는 한국과 일본의 여러 지역에서 줄다리기가 여전히 전승되고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현상이다. 그런데 최근 감숙성 임담현에서 과거 기록을 바탕으로 전통 줄다리기를 재현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흥미롭다. 명대(明代)에 쓰인 지방지 기록을 바탕으로 600여 년의 역사성을 강조하며 전통 줄다리기 복원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Ⅳ. 다르면서도 유사한 한국과 일본의 줄다리기
중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전통적 줄다리기가 여전히 전승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줄다리기를 가기히끼(鉤引) 또는 츠나히끼(綱引き) 등으로 부른다.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시기는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아오모리와 아키타를 중심으로 한 동북 지방, 교토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관서 지방은 정월 대보름에 줄다리기를 한다. 치바와 이바카라를 중심으로 한 관서 지역은 7월에서 8월 15일, 큐슈 지방은 8월 15일, 오키나와는 햅쌀 수확기인 6월에 한다. 한국의 줄다리기는 대체로 정월 대보름에 벌어진다. 이는 한국의 줄다리기가 한해의 풍년을 점치고 기원하는 신년제의 성격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경우 대체로 정월과 6~8월에 줄다리기가 벌어진다. 이는 일본의 줄다리기가 수확제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비를 바라는 기우제의 성격도 강하게 띠고 있다는 점도 일본 줄다리기가 가지고 있는 독특함이다.
줄을 만드는 데에는 짚, 창포, 대나무, 칡넝쿨, 보릿짚, 띠(억새) 등이 재료로 이용된다. 줄의 형태는 암줄과 수줄로 구성된 쌍줄이 대세를 이룬다. 이는 한국의 경우와 유사하다. 하지만 일본과 달리 한국에서는 외줄 역시 전라도 지역을 중심으로 만만치 않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줄다리기에서 줄을 당기는 두 편은 농촌과 어촌, 동쪽과 서쪽, 위와 아래 등으로 나눈다. 어린이와 청년, 남자와 여자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줄을 당기고 난 후의 승패로 생업의 풍흉을 점치기도 하고, 재앙을 몰아내어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한다. 대체로 여성이나 서쪽이 이기면 길조이며 풍년이 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편 가름의 양상과 관련된 믿음은 한국과 일본이 거의 유사하다.
일본의 줄다리기는 한국의 줄다리기와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 시기와 제의 성격이 차이가 있으며, 외줄다리기의 분포 정도가 차이가 있기는 하다. 또한 한국 줄다리기의 경우 농악이 줄다리기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는 반면에, 일본은 스모와 결합되어 있다는 점도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줄다리기를 하는 지역이 벼농사를 생업으로 한다는 점이나, 주요 재료가 볏짚이라는 점은 공통적이다. 줄을 엮는 방식이나 편을 나누어 당기는 경쟁의 방식 역시 유사하다. 대규모의 사람이 참여하는 쌍줄다리기가 대세를 이루며, 현재에도 그 전승이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두 나라의 줄다리기가 공유하는 특징이다.

Ⅴ. 줄다리기의 만물상, 한국
한국의 줄다리기는 지역에 따라 줄당기기, 줄땡기기, 줄당그기, 줄댕기기, 줄싸움, 줄쌈 등으로 불린다. 한자로는 ‘혈하희(絜河戱)’, ‘갈전(葛戰)’, ‘삭전(索戰)’, ‘예삭(曳索)’, ‘설하(挈河)’, ‘율예(繂曳)’, ‘인삭희(引索戱)’, ‘망인(網引)’ 등의 명칭을 사용한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 한국 줄다리기이다. 줄의 형태 역시 외줄, 쌍줄, 게줄 등이 망라되어 있다.
그 명칭과 형태의 다양함에 걸맞게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지역 역시 전국에 걸쳐 분포한다. 1930년대 조사된 「조사의 향토오락」에 따르면, 한국의 줄다리기는 전국 161개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 분포 밀도가 높은 곳이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임을 확인할 수 있다.
줄다리기가 벌어지는 시기는 백중, 추석, 경사로운 날, 가뭄이나 전염병 창궐과 같은 특별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하지만 대체로 정월 대보름을 전후한 시기에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줄다리기를 하는 목적은 풍요를 위해서이다. 줄다리기의 승패를 통해 한 해 동안의 농사나 어업의 성과를 예견하고, 풍요로운 삶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원한다. 그러한 기원이 신나면서도 격렬한 줄다리기를 통해 이루어진다. 한국의 줄다리기에서 줄을 만드는데 쓰이는 재료는 짚이 주로 이용된다. 지역 환경에 따라 칡과 삼이 줄의 재료로 쓰이기도 하지만 주된 재료는 짚이다. 줄의 보강 재료로 대나무와 나무껍질 등이 이용되기도 한다.
한국의 줄다리기에서는 남녀노소가 제한 없이 참여하여 줄을 당긴다. 일부 선발된 남성들만이 참여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줄다리기에서 줄을 당기는데 차별이나 제한을 두지 않는다. 남녀노소가 제한 없이 참여하는 만큼 줄의 규모도 크다. 수백, 수천 명이 한꺼번에 줄을 당길 수 있는 규모로 줄이 제작된다. 한국의 줄다리기에서는 참여하는데 차별을 두지 않지만, 편은 일정한 관례에 따라 나누어진다. 성별에 따라, 또는 지역을 기준으로 양편으로 나누는 것이다.
한국의 줄다리기 공동체는 보통 줄 당기기에서 승리하는 쪽이 풍년이 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성별에 따라 편을 가를 경우, 여성 편의 승리를 유도한다. 여성의 승리가 번영과 풍요를 가져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와는 달리 동부와 서부, 물 위와 물 아래, 내륙과 해안, 북쪽과 남쪽 등 지역을 중심으로 편을 가를 경우는, 경쟁이 치열하다. 줄다리기의 승패에 따라 그 해 풍흉이 걸려있기에 격렬한 힘겨루기가 벌어진다. 하지만 승리를 위한 경쟁에 집착하지 않기 위해 각각의 편의 승리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어느 편이 이겨도 결국은 평안과 풍년을 불러올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한국의 줄다리기 양상은 다양하다. 중국 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대규모의 쌍줄다리기가 여전히 전승되고 있는가 하면, 동남아시아 벼농사 지역의 외줄다리기와 친연성을 보이기도 한다. 중국 줄다리기나 일본 줄다리기의 경쟁적 놀이의 성격을 갖고 있는가 하면, 동남아시아나 인도 줄다리기의 제의ㆍ주술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또한 일본 줄다리기와 여러 측면에서 유사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한국의 줄다리기이다. 이렇게 한국에는 전 세계 줄다리기의 유형과 속성 대부분이 망라되어 있다. 줄다리기 만물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의 줄이 만들어지고 연행되며, 여러 특징과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한국의 줄다리기이다.

삼척 대기줄다리기 (삼척시청 제공)

Ⅵ. 인류의 지혜가 온축된 문화적 연행, 줄다리기
줄을 당기기 위해서는 줄이 필요하다. 그 줄은 줄다리기를 전승하는 공동체의 자연 환경이나 생업과 연관된 재료로 만든다. 전 세계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각각의 공동체가,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하찮은 재료를 창의적으로 이용하여 독특하고도 다양한 줄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줄을 가지고 인류는 줄다리기를 해왔다.
인류가 만들어 낸 줄다리기는 하나의 제의라 할 수 있다. 그 제의는 제액 초복과 풍요 기원을 내용으로 한다. 줄다리기를 통해 한 해의 풍흉을 점치고, 가능하면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기원한다. 줄다리기는 신명나는 놀이이기도 한다.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와 함께 놀이가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줄다리기이다. 따라서 줄다리기는 제의와 놀이가 공존하는 축제라 할 수 있다. 안녕과 풍요의 기원이 한 바탕 집단적인 놀이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제의와 놀이로서의 줄다리기 전 과정은 ‘함께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 결과, 줄다리기에 참여하는 공동체의 결속과 정체성 고양이 이루어진다. 결국 줄다리기는 풍요와 번영을 기원하는 제의이자, 신명 나게 노는 대동의 축제라 할 수 있다. 짚 한 가닥과 같은 사소한 재료에서 시작하여 거대한 대동의 축제로 마무리되는 문화적 연행이 줄다리기이다.
거기에는 인류의 지혜가 온축되어 있다. 경쟁하며 즐기는 놀이이자, 풍요를 기원하는 제의인 줄다리기를 통해 인간은 함께 사는 법을 터득한다. 세월이 흐르고 우리 주변을 둘러싼 제반 상황이 변한다 해도, 제의이자 놀이로서의 줄다리기는 그 가치를 쉽게 잃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인류는 함께 할 때 그 밝은 미래를 전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줄 위에 올라탄 수상 두목 (촬영 : 주병수), 의령 큰줄땡기기 (의령군 제공)
 
- 글 : 허용호 (고려대학교 교수) / 사진 : <줄다리기> 영문책자, 한국문화재재단, 2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