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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는 모습을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신라시대의 추석 풍경은 이와 좀 달랐다.
<삼국사기三國史記> 신라본기 유리이사금조 9년의 기록을 들여다보면 추석 전후로 행해졌던 놀이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왕은 6부部를 정한 후 이를 다시 크게 두 편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각의 편의 여인들을 거느리고 음력 7월 16일경부터 날마다 부내部內의 마당에 모여 베를 짜게 하였다. 이 베짜기는 무려 한 달간이나 계속되어 음력 8월 15일까지 이어졌다. 8월 보름이 되는 날 두 편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심사하여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 여기에 가무가 곁들여지면서 한 편의 연회가 완성되었는데, 이때 진 편의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회소 회소會蘇 會蘇’라고 탄식하며 춤을 추었다. 이 노래를 회소곡會蘇曲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바로 이 이야기의 중심이 된 베짜기가 길쌈놀이다.
길쌈이란 각종 섬유에서 실을 뽑아 가공하여 옷감을 만들어내는 일종의 수공업이다. 구체적인 생산 과정이나 직조 방법, 시기 등은 지역마다 다르나, 대부분의 집단에서 길쌈을 할때 여럿이 모여 놀이를 하는 것이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놀이 집단이 조금 더 발전하여 부녀자들은 두레와 유사한 공동체를 조직해 길쌈을 하기도 했다. 두레에 가입한 부녀자들의 집을 차례로 돌며 공동으로 길쌈을 해주었기에 두레삼이나 두루삼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안타깝게도 길쌈놀이에 대한 옛 문헌 자료는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 16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9세기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20세기 민속학자 송석하가 남긴 기록 등이 길쌈에 대해 언급한 문헌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자세한 내용이 기록돼 있지 않아 길쌈놀이의 전승 및 변화 과정을 알기는 어렵다.
길쌈놀이는 장기간에 걸친 노동을 재미있는 놀이로 승화시킨 조상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두레가 벼농사를 위한 남성의 공동 노동 조직으로 식량 생산에 중요한 기능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길쌈놀이에서 탄생한 길쌈 두레는 여성의 공동 노동 조직으로서 의생활에서 중요한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세시풍속사전> 가을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