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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퉁소 가락에 얹은 함경도의 노래
글. 이진원(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영화 <팔도기생> 포스터
소장·제공: 이진원
함경도를 대표하는 민요를 꼽으라면 어떤 민요가 있을 수 있을까. 매체에서 소개되어 주목받은 노래를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1968년 김효천 감독이 연출한 영화 <팔도기생(八道妓生)>에서 <어랑타령>이라고도 불리는 <신고산타령>을 찾을 수 있다.
영화 <팔도기생>은 1967년 김효천 감독의 <팔도강산>이 큰 흥행을 하게 되면서 만들어진 ‘팔도’ 시리즈 중의 하나였다. <팔도강산>은 노부부가 전국에 흩어져 사는 자식들을 찾아다니며 발전된 나라의 모습을 보여 주는 일종의 근대화 선전 영화였는데, <팔도강산>의 흥행은 1968년 <팔도기생>에 이어 <팔도 사나이>, <팔도 가시나이>로 쭉 이어졌다.
<신고산타령>과 <애원성>
<팔도기생>에서 김효천 감독은 근대화된 우리나라의 모습이 아니라 역으로 과거 팔도의 기생과 그들의 기예를 볼 수 있는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흥선대원군은 명창(名唱) 박효천(배우: 김진규) 을 한양의 명기(名妓) 녹수(배우: 김지미)와 함께 만나, 그에게 경복궁 중건 낙성을 기념하는 행사에 조선 각 지역의 최고 명기를 불러 축하하게 하고, 우리의 민속 가락을 정리하라고 명한다. 박효천은 대원군의 명을 받아 조선 각 도를 다니며 최고 명기를 만나 우리의 가락을 듣는다.1
박효천은 먼저 함경도의 이름난 기생(배우: 태현실)을 만나 <신고산타령>을 듣는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신고산타령>을 사용한 건 안타깝게도 오류라 할 수 있다. 경복궁은 중건 과정에서 1866년 동십자각에 있는 훈련도감 가건물의 화재로 800여 칸이 전소되어, 1867년 말에 준공되었고 “신고산이 우르르 함흥차 떠나는 소리에 잠못드는 큰애기는 단봇짐만 싸누나”라는 대표적인 가사에 보이듯 신 고산역 화물차 소리는 1910년 경원선 개통 이후에나 들을 수 있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1 이 영화에는 김지미, 윤정희, 남정임, 문희, 전양자, 태현실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출연하였으며, 그 사실만으로도 극장가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한편 일제강점기에 팔도의 명기들이 모여 명창대회를 개최한 일이 있었다. 1938년 조선특산품 전람회(朝鮮特產品 展覽會)를 기념하기 위해 ‘팔도여류명창 경창대회(八道女流名唱 競唱大 会)’가 개최되었으며, 전국의 여류명창들이 경창대회를 통해 출신 지역의 민요를 경창했다.
조선소리라면 『판소리』를 제일치고 그 다음은 남도잡가 서도잡가 경기입창 등을 들 수가 잇다. 그러나 금번 본사 주최인 향토연예대회에 잇서서는 특별히 조선 전도의 일류 여류명창을 불러 각도의 독특한 민요(民謠)와 가무와 기타 그 지방 그 지방의 특색잇는 노래를 듯기로 하얏다. 이 팔도여류명창 경창대회(八道女流名唱 競唱大会)가 곳 이런 취지에서 개최되는 것이다. 그리하야 조선 전도에 산재해 잇는 일류 명창을 초청하야 오는 동시 경성에 와서잇는 각 도의 대표 적 여류명창을 일당에 모아 오는 오월 삼일, 사일 이틀 밤을 시내 부민관 대강당에서 명창대회를 열기로 되엿다. 지방에 잇는 인사의 노력과 경성의 조선권번(朝鮮券番) 한성권번(漢城券番)의 성원으로써 이 대회는 다시 두 번 올 수 업는 호화판을 일울 것이다. 여기 출연하는 여류명창이 삼십여명에 달한다. 입장요금은 역시 일반 오십전, 독자 삼십오전으로 되어잇다.
咸鏡道(함경도)
張一朶紅(장일타홍) 張紅心(장홍심) 金忿煥(김분환) 金順姬(김순희) 흔히 함경도에 노래가 업다는 말을 듯게되기도 하나 사실 함경도 민요는 남도 서도에 비해서 독특한 정서를 가지고 잇다. 원산 『어랑타령』이라거나, 『함경도 애원성(哀願聲』은 그중 유명한 것이다. 이번 이 명창대회에는 경성에와 게신 이중에서 두분이 출연하게 되엿고, 원산(元山)서 김분환 (金忿煥), 함흥(咸興)에서 김순희(金順姬)씨가 각각 그 고향에서 이 대회에 참가하기로 되엿다.
- 팔도여류명창경창대회(八道女流名唱競唱大会) 조선특산품전람회기념(朝鮮特產品展覽會紀念), 『조선일보』, 1938년 4월 24일자
물론 함경도의 여류명창도 출연하였는데, 기사에 따르면 장일타홍, 장홍심, 김분환, 김순희 등 네 명의 여류명창이 출연하였으며, <어랑타령>이라는 <신고산타령>과 또 다른 민요 <애원성>이 함경도를 대표하는 민요로 언급되고 있다.
위 인용에서 언급하듯이 함경도 민요는 당시에도 이름난 통속민요로서 <신고산타령>과 <애원성> 정도였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실 함경도는 매우 풍부한 민요 자산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갈 수 없지만, 함경도의 민요 자산은 북한에서 발행한 『조선민요 1000곡집』을 통해 그 규모를 알 수 있다.
위 『조선민요 1000곡집』을 토대로 함경도 민요를 노동요, 부녀요, 유희요 3가지로 분류해 보면, 농업 노동요로 농부가, 김매는 소리, 논 김매는 소리, 호미소리, 도리깨질 소리, 헤야가, 보리치기 소리, 보리 쌀 쓿는 소리가 있으며, 어업 노동요로 배 떠나는 소리, 그물 조이는 소리, 그물 당기는 소리, 고기 푸는 소리, 명태 베끼는 소리, 고기 벗기는 소리, 배 들어오는 소리가 있다. 수공업 노동요로는 풍구소리, 풀무타령, 풀무소리, 망치질소리, 삼삼이 소리, 실꾸리 겯는 소리, 베 짜는 소리, 베틀소리, 다듬이질 소리, 말뚝 박는 소리, 목도소리, 벌목하는 소리가 확인된다. 부녀요로는 자장가, 타복녀, 실난봉가, 정든님 가니, 반월가, 님생각, 시집살이, 편자가왔다네, 리라라리요가, 유희요로는 단천아리랑, 온성아리랑, 구애원성, 애원성, 도라지, 새타령, 돈돌라리, 홀라리, 미나리요, 모래산, 라이라렛뚜리, 라리리라 리, 리루리가 보인다.2
함경도는 지리적인 위치상 동해안을 낀 해안 지대와 대부분 산세가 험한 높은 산간지대로 이루어져 있어 농업, 어업, 산림업과 관련된 민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으며, 북으로는 중국과 러시아와 인접해 있어서 보다 개방적이며, 활달한 음악적 특징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지역적으로는 한반도의 동부 지역에 해당하여 그 지역에서 발달하고 전승되었던 강한 메나리토리의 영향을 받아 많은 민요에서 메나리토리가 많이 발견되나 그 외에도 여러 다양한 토리가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2 김영은, “『조선민요 1000곡집』 분석을 통한 함경도 민요 연구”(중앙대학교 국악교육대학원, 2008), 7-11쪽.
슬픔과 아픔이 담겨 다양하게 불린 <애원성>
만약 오늘날에 팔도 민요대회가 다시 개최된다면 어떤 노래가 함경도를 대표하면 좋을까 생각하면, 그래도 필자는 <신고산타령>이나 <애원성> 중 한 곡을 고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두 곡 중에서 어떤 곡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서슴지 않고 <애원성>을 고를 것이다.
일제강점기 지식인들 사이에 함경도 <애원성>을 바라보는 여러 시선이 존재했었다. 1929년 조선가요협회(朝鮮歌謠協會)는 창립(創立)과 더불어 “낫분 류행가를 구축하고, 조흔 노래 펄치자는 운동”으 로서 가요혁신운동(歌謠革新運動)을 전개하였다.3 때맞춰 『조선일보(朝鮮日報)』에는 이와 관련된 사설이 실리는데, 아래 인용과 같이 함경도 <애원성>과 평안도 <수심가>를 세기말적 색채를 갖는 비애조(悲哀調)로 매도하기도 하였다.
咸鏡道(함경도)의 哀怨聲(애원성) 가튼 것은 그 일흠대로 가장 世紀末的(세기말적) 色彩(색채)를 表示(표시)한 悲哀調(비애조)일 것이다. 現下 朝鮮人(현하 조선인)사이에 流行(유행)하는 歌謠(가 요)는 그 대개가 悲哀調(비애조)가 아니면 淫蕩曲(음탕곡)ㅽㅜㄴ이니 이런 노래 가온대 싸이어 잇는 社會風氣(사회풍기)가 어ㅾㅣ健全(건전)할 수 잇겟는가. 이 못된 頹廢的 歌謠(퇴폐적가요)를 그대로 두고서는 靑年女子(청년자녀)나 乃至 一般 民衆(내지 일반 민중)을 바른 길로 指導(지도)하기가 困難(곤란)할 것이 아닌가.
- 歌謠革新運動(가요혁신운동), 『조선일보』, 1929년 2월 26일자 사설
3 “頹廢的歌謠排擊(퇴폐적가요배격)코저 朝鮮歌謠協會創立(조선가요협회창립),” 『조선일보』, 1929년 2월 24일자.
하지만 자연과 인간에 대해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아름다운 시를 지어내었던 시인 백석은 동해(東 海)에서의 체험을 독백적인 어조인 수필로 표현한 바 있다. 아래 <동해>의 한 부분에는 백석이 갖고 있었던 <애원성>에 대한 마음을 읽어 낼 수가 있다.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날미역 내음새 맡으면 동해여, 나는 그대의 조개가 되고 싶읍네. 어려서는 꽃조개가, 자라서는 명주조개가, 늙어서는 강에지조개가. 기운이 나면 혀를 빼어 물고 물 속 십 리를 단숨에 날고 싶읍네. 달이 밝은 밤엔 해정한 모래장변에서 달바라기를 하고 싶읍네. 궂은 비 부슬거리는 저녁엔 물 위를 떠서 애원성이나 부르고, 그리고 햇살이 간지럽게 따뜻한 아침엔 이남박 같은 물바닥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놀고 싶읍네. 그리고, 그리고 내가 정말 조개가 되고 싶은 것은 잔잔한 물밑 보드라운 세모래 속에 누워서 나를 쑤시러 오는 어여쁜 처녀 들의 발뒤꿈치나 쓰다듬고 손길이나 붙잡고 놀고 싶은 탓입네.
- 自然界(자연계)와의 対話集(대화집) (6) 東海(동해), 『동아일보』, 1938년 6월 7일자
백석은 동해 모래 해변의 조개가 되어 궂은 비가 내릴 때는 저녁에 물 위에 떠서 <애원성>을 부르고 싶다는 그의 마음과 같이 <애원성>의 정조가 그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함경도 <애원성>은 요즘 경서도 민요 창자들에게 애창되는 민요가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에는 1930년대 일제강점기 유성기음반에 취입된 <애원성> 음반들이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콜럼비아의 대중 보급반으로 발매된 이옥화의 <애원성> 음반은 수심가토리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심가토리란 ‘레(re)-미(mi)-솔(sol)-라(la)-도(do′)’ 구조를 갖는 음조직으로 ‘레-라-도’의 세 음이 주요하게 사용된다. 이옥화가 부른 <애원성>은 양악 반주로 전통적인 민요 반주와는 차이가 있으나 ‘라’에서 탈탈 터 주는 요성이 강한 서도 지역의 맛을 느끼게 한다.
경서도 명창으로 이름이 높았던 김란홍(金蘭紅)도 일본 빅타사 유성기음반에 대금의 김계선(金桂善), 피리의 이병우(李炳祐) 명인의 반주에 맞춰서 <애원성>을 취입하였는데, 이옥화의 <애원성>보다 서도식 발성을 더 확실히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옥화의 <애원성> 음반4 및 김란홍의 <애원성> 음반5
소장·제공: 이진원
4 리갈레코드, 음반번호 C246-A, 잡가(雜歌) 애원성(哀怨聲) 이옥화(李玉花) 장일타홍(洋樂伴奏).
5 빅타레코드, 레이블 번호 KJ-1109, 속요(俗謠) 애원성(哀怨聲) 김난홍(金蘭紅) 大笒金桂善(대금 김계선) 細笛 李炳祐(세적 이병호).
이러한 덕분인지 요즘 함경도 <애원성>을 서도민요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함경도를 대표하는 민요인 <애원성>을 서도민요로 분류하기에는 너무나 안타깝다고 할 수 있다. 마치 함경도 실향민들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터를 잡고 사는 것처럼 고향을 잃어버린 민요가 되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그렇다면 원래 함경도 민요 <애원성>은 어떻게 불렀을까. 함경도 실향민들이 내려와 부르던 민요에서 그 해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1968년 함경남도 북청군 신북청면 신북청리 출신 장정호가 부르고 신전식·전중식이 퉁소를, 동태선이 북을 친 <애원성>을 보면 앞서 이옥화나 김란홍의 노래가 수심가토리로 되어 있는 것과는 다르게 경토리(창부타령토리)로 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다.6 경토리는 ‘솔(sol)-라(la)-도(do′)-레(re′)-미(mi′)’의 음조직으로 되어 있는데, 네 번째 장단 시작에서 경토리의 구성음이 아닌 수심가토리의 구성음인 ‘파(fa′)’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 다. 다만 이 음은 위 ‘솔(sol′)’로 진행하기 때문에 전반적으로는 경토리로 볼 수 있지만 부분적으로 살짝 낮은 음이 사용되어 독특한 느낌을 준다. 또한 ‘뿌리깊은나무’에서 1984년 발매한 『팔도소리』 음반에는 김수석의 <애원성>이 전중식·신선식의 퉁소, 여재성의 징, 주칠성의 북 반주에 실려 있는데, 이 음반에서도 장정호가 부른 것과 마찬가지로 서도식 요성 표현이 나타나지 않으며, 경토리의 음조직을 보여 주고 있다. 김수석의 노래에 서도 수심가토리의 ‘라’에 해당하는 ‘레’ 음을 처음에 낼 때 떨어 주기보다는 장식적으로 꾸며 주며 길게 뻗는 정도로 표현하고 있다.
6 경토리와 수심가토리는 ‘경서토리’로 묶일 수 있을 만큼 친연성이 있는 음조직이다.
사용하는 음들을 나열하면 음계의 마지막 음이 경토리보다 수심가토리가 반음 높은 것이 차이인데, 각 음에 사용되는 시김새가 다르게 사용되는 점이 가창에서 주목된다.
이북5도 무형유산 <애원성> 공연 모습
소장: 행정자치부 이북5도위원회,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이처럼 함경도 <애원성>은 주로 퉁소 반주에 얹혀 불렸다.7 오늘날 <애원성>은 함경남도 북청군 전 지역에서 놀이되던 북청사자놀이가 월남한 연희자들에 의하여 재현되어 1967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될 당시 ‘애원성춤’이라는 새로운 춤과 함께 사자놀음의 흥을 돋우기 위하여 삽입되어 전해지고 있으며,8 2005년에는 함경북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민요의 특성상 <애원성>에는 여러 가지 가사가 존재하는데 함경남도 북청에서 많이 불리는 가사로 “경복궁 지어라 경이나 경복궁 지어라/ 삼각산 하에다가 경복궁 지어라/ 에-”로 시작하는 가사는 경복궁 중건 당시 남편을 떠나보낸 여인들의 아픔을 노래했고, 함경북도 무산의 “가지 마오 가지를 마오/ 동대산(東大山) 바람은 이별 바람이라요/ 에-”로 시작하는 가사는 일제를 피해 러시아로 돈벌이를 떠나는 남편을 보낸 아낙의 심정을 노래했다고 한다. 두 가사 모두 이별의 아픔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애원성>의 제목만큼 슬픔과 원한이 가득하지 않나 싶다.
필자는 가끔 북청사자놀음에서 사용되는 긴 퉁소를 옆에 두고 <애원성>을 연주한다. 고난의 시기 우리의 아픔을 달래 주던 함경도 <애원성>의 그 가사는 자기 마음에 담고, 거칠면서도 투박한 함경도 퉁소 소리만이 흐느끼고 있지만, 백석이 그의 수필 <동해>에서 “궂은 비 부슬거리는 저녁엔 물 위를 떠서 애원성이나 부르고”자 했던 그 마음은 여전히 퉁소 가락 <애원성>에 얹히는 듯하다.
7 이재원, “북청사자놀이의 퉁소가락에 관한 연구”, 중앙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2001, 12-14쪽.
8 그 과정에 대한 증언으로 임석재 편저, 『임석재 채록 한국구연민요 자료편』, 집문당, 1997, 229-30쪽.
<신고산타령> 국립국악원 국악사전 [링크] |
김수석 함경도 민요 <애원성>, 1983년 국악음반박물관 유튜브 [링크] |
북청사자놀음 중 ‘애원성춤’ 국가유산진흥원 유튜브 [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