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특정 장르의 문화가 밀집한 지역의 출발은 대개 자연발생적이다. 전통문화의 거리 인사동이 그렇고,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가 그렇다. 인디 문화의 본거지인 홍대 앞 또한 마찬가지다. 하지만 문화의 거리가 유명세를 떨치며 문화 소비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면 건물값과 임대료는 하늘 모르고 치솟는다. 상업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전통문화, 실험 연극, 인디 문화는 밀려나고, 카페와 레스토랑, 옷과 신발 가게, 미장원, 장신구 가게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전통문화의 거리, 연극의 거리, 인디 문화의 거리가 갖는 정체성은 퇴색한다. 이렇듯 특정 문화의 거리란 영속성이 없다. 실험적 문화 예술인들이 주도해 문화의 거리가 태어나고, 문화 소비자들에게 각광받으면서, 고도로 상업화하는 일련의 사이클은 부동산 투자의 힌트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미국 뉴욕의 한 부동산개발회사는 세계 미술의 중심지로 일찌감치 떠오른 맨해튼의 건물값과 임대료에 부담을 느끼는 미술가가 많아지자, 공장지대로 수명이 다해가던 브루클린의 한 동네에 10개동 남짓한 아파트형 공장을 사들여 젊은 미술가를 위해 저렴한 생활 및 작업 공간으로 제공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이곳이 새로운 예술인 마을로 알려지기 시작하자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거지로 선택했고, 화랑과 개성 있는 카페, 레스토랑이 속속 문을 열면서 명소가 됐다. 현대미술의 새로운 메카로 떠오른 덤보(Dumbo) 이야기다. 이 인위적인 문화의 거리 사업에 1억 달러를 투자한 부동산회사는 덤보의 상업화가 진전되면서 20년 만에 100억 달러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무려 100배의 투자수익을 올린 셈이다.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인사동, 대학로, 홍대 앞에서도 문화의 속성을 이용한 부동산 투자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 속출했다. 문화의 거리가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다. 문제는 정부의 문화지구 정책이 이렇듯 불가능해 보이는 영속성을 추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데 있다. 문화지구 제도는 지역의 문화자원을 보호해 지역에서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더욱 활성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문화예술진흥법과 그 시행령을 근거로, 시·도가 자체적으로 조례와 지구단위계획 등으로 뒷받침하도록 한다. 현재 문화지구로 지정된 거리는 서울의 인사동과 대학로, 경기 파주 헤이리, 인천 개항장 등 네 곳이다. 신촌과 홍대 앞도 한데 묶어 문화지구로 지정하는 방안도 추진했지만, 인디 밴드 등이 활동하는 몇몇 공연장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문화의 거리라기보다는 상업적 거리라는 판단이 내려지면서 지정이 보류된 상황이라고 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의 거리인 인사동을 들여다보자. 인사동이 죽어가고 있다고 걱정하는 목소리는 벌써부터 나왔다.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전에 죽어버렸다고 단정하는 사람도 이제는 적지 않다. 실제로 인사동의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골동품 가게나 표구점, 서화용품점은 오래전에 뒷골목이나 2층, 3층으로 내몰렸고, 그 자리를 옷 가게, 화장품 가게와 다국적 브랜드의 커피 전문점이 차지하고 있다. 여전히 전통문화의 분위기를 풍기는 가게들이 성업하고는 있지만, 정체성의 혼란은 극심하다, 팔리는 물건의 상당수가 중국을 비롯한 해외에서 들여왔다는 사실을 이제는 누구나 인정할 정도다. 명동과 크게 다르지 않은 소비문화의 거리가 됐다는 것이다.
인사동이 문화지구로 지정된 것도 알고 보면 전통문화의 거리가 급속히 해체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인사동을 찾는 외국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막상 이 거리에서 보여줄 전통문화가 사라져가는 추세는 1990년대 이미 본격화하고 있었다. 그러다 1999년 12월 인사동 한복판의 화랑과 표구사 등 전통문화 가게가 밀집해 있던 ‘열두가게’가 건설회사에 매각되어 재건축될 위기에 처하면서 전통문화의 거리를 보존하자는 움직임이 일었던 것이다. 다행히 열두가게 자리는 그런대로 문화적인 재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오늘날의 쌈지골목이 됐지만, 2000년 당시 인사동의 전통문화 가게는 불과 두 해 전인 1998년보다 무려 25.4%나 감소할 만큼 급속히 줄어들고 있었다.
인사동이 문화지구로 지정된 것은 2002년이다. 동쪽으로 운현궁 앞 삼일로, 서쪽으로 조계사 앞 우정국로, 북쪽으로 종로경찰서 앞 율곡로, 남쪽으로 종로와 맞붙은 공평재개발구역으로 둘러싸인 지역으로 지정 면적은 17만 5,743㎦에 이른다. 문화지구 지정과 함께 체계적 개발을 유도하는 서울시의 지구단위계획이 뒷받침되면서 인사동은 전통문화 보호와 육성을 위해 업종규제와 용도 제한, 건축 및 개발 제한 같은 규제가 가능해지고, 세제 감면과 융자 지원, 홍보와 마케팅 지원, 전통문화 공간 조성 같은 적극적 지원이 이루어지게 됐다. 당시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를 살리고자 정책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인사동의 변화는 어떨까. 인사동 문화지구의 권장업종은 표구 가게와 골동품 가게, 필방 및 지업사, 공예품 가게, 화랑이며, 준권장업종은 전통찻집과 한정식집, 생활한복집, 액자 가게로 정해졌다. 그런데 문화지구 지정 이후 누가 보아도 전통문화의 퇴색과 상업화가 가속화하고 있음에도, 권장업종과 준권장업종의 숫자는 오히려 늘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속내는 정체성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골동품 가게와 표구 가게, 필방 및 지업사는 크게 감소한 반면 관광객들에게 판매가 손쉬운 기념품 판매점이 공예품 가게로 분류되면서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인사동 네거리에서 탑골공원 건너편의 남인사 마당에 이르는 거리에는 화장품 가게와 옷 가게, 해외 브랜드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 빵집이 집중적으로 들어섰다. 네거리 남쪽은 지구단위계획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사동의 문화지구 지정 정책은 실패한 것일까. 인사동을 문화지구로 지정한 것은 전통문화의 보존이라는 측면에서 좋은 일이었지만, 부동산 개발의 시각에서는 더욱 큰 호재였다. 내국인과 외국인을 가릴 것 없이 훨씬 더 많은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자연스럽게 더욱 주목받는 상권이 됐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지구 지정은 오히려 인사동의 상업화를 가속화시킨 측면이 있다. 대신 이 지역의 급속한 상업화는 문화의 거리를 인사동 밖으로 확장시키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 삼청동이 새로운 문화의 거리로 떠오른 것은 삼청동 자체가 갖고 있는 문화적 잠재력이 물론 중요한 역할을 했겠지만, 포화상태에 이른 인사동 문화권이 수용하지 못하는 문화 욕구가 흘러넘친 것도 상당한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 어느 지역보다 창의적인 것으로 보이는 삼청동과 북촌 일대의 문화적 분위기는 최근 다시 포화상태에 이르러 경복궁 반대편 서촌 일대로 번져가고 있다.
인사동에 대한 걱정은 전통문화의 거리라는 정체성 때문이다. 전통문화의 중심지라는 기대가 아니라면 인사동은 여전히 훌륭한 문화의 거리다. 사실 문화의 거리가 문화와 휴식을 겸비한 관광지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오히려 일정한 상업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때문에 미국의 문화지구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문화와 소비, 나아가 오락의 기능을 한데 묶어 지정하기도 한다. 아이오와 문화유흥지구와 메릴랜드 예술유흥지구, 웨스트버지니아 예술유흥지구가 그렇다. 인사동의 변화는 불가피하지만, 그렇다고 이곳의 전통문화를 더 이상 사라지거나 흩어지게 만들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는 수명을 다한 것으로 보이는 기존 문화지구 정책의 패러다임을 조금 바꾸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전통문화가 부족한 곳을 집중 지원해 전통문화의 거리로 육성하는 방안이다. 예를 들어 ‘국악의 거리’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몇 곳의 국악강습소와 국악기 가게가 띄엄띄엄 자리 잡은 것이 전부인 창덕궁 앞 돈화문로 일대를 문화지구로 지정하는 방법이다. 인사동처럼 건물주에게 지원하기보다, 전통문화 사업을 하는 당사자를 지원하면 더욱 좋다. 인사동에서 경쟁력을 잃은 전통문화 업소를 다시 한곳에 불러 모으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나아가 서울의 사대문 내부를 모두 전통문화 보존을 위한 문화지구로 지정하는 방안도 이제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600년 조선왕조의 역사를 이어온 도성의 내부다. 전통문화의 보존을 위해 이보다 적절한 규제와 지원의 당위성이 있는 문화지구 후보지는 아마도 없지 않을까.
글˚서동철 (서울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