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2013년 06월 - 전통성악, 得音을 만나다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3-12-26 조회수 : 1605

 

 

 

“득음(得音)이란 무엇입니까?”
판소리 예능보유자 성창순 명창은 얘기한다. “내 목에서 나간 소리가 관객에게 전달되었다가 다시 나에게 돌아와 내 팔이 되고 내 다리가 되어 하늘과 땅을 울리는, 엥기는 소리를 얻는 것입니다. 그런 경험은 평생 한두 번 할까 합니다”라고. 소리꾼이라면 연주자라면 반드시 도달하고 싶은 경지, 득음(得音). 하지만 강도근 명창은 좋은 목을 갖고도 쉽게 얻지 못하는 것이 득음이요, 그래서 소리꾼들에게 10년 득음(得音)도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라고 했다. 도대체 득음은 무엇이며, 왜 소리꾼들은 ‘음’에 이르기 위해 피를 토하는 수고를 자청할까?

 

음향학에서는 가청주파수 범위 내에서 청각에 전달(傳達)되는 공기의 진동을 음(音)이라고 한다. 하지만, 전통음악학에서 음은 좀 더 철학적 명제 위에서 출발한다. 예기(禮記) 악기(樂記) 편에는 “범음지기 유인생심야(凡音之起 由人生心也)”라 하여 “음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서 나온다. 감정이 마음속에서 움직여 소리(聲)로 나타나고 소리가 무늬로 이루는 것을 음”이라고 하였으며 “무릇 사물의 감흥으로 소리가 만들어져 춤을 출 정도로 나아간 곡조를 음악”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음은 희노애락 공경, 자애 6가지 목소리(六聲)를 가지며, 6성은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 5음으로 악화((樂化)한다. 5음이 바르지 못하여 서로 섞이면 나라에 망조가 들지만, 바르게 사용하면 전체가 조화로우므로, 위정자는 편하고 조화로운 정치를 위해 5음을 신중히 다스렸고, 이러한 소리를 구현하는 것이 곧 ‘득음’이었다. 이 음(音) 사상은 조선시대에 만개했으며, 풍류방문화의 결정체인 가곡은 이러한 ‘음’ 사상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가곡이 단전소리를 덜미청으로 발성하여 온몸으로 공명하면서도, 판소리와 달리 성대나 후두를 압박하지 않고 발성하는 점, 그리고 요성, 전성, 추성 같은 일반적인 시김새를 고루 쓰면서도 판소리의 쉰목이나 민요의 노랑목을 써서는 안 되는 것도 6성 5음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가에서의 음은 예악사상과 달리 철저히 신앙적인 명제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불가의 성악을 범패(梵唄)라고 하는데 범패는 말 그대로 인도 바라문(婆羅門·브라만)의 소리이지만 궁극적으로는 부처의 소리(音)를 의미한다. 부처의 소리에는 8가지(八音)가 있다고 한다. 그 팔음은 듣는 이로 하여금 지혜를 얻게 하거나(존혜음·尊慧音) 계율에 들게 하거나(유연음·柔軟音) 바른 견해를 얻게 하는 음(불오음·不誤音)부터 거침없이 힘차게 끊어짐 없이 이어 나오는 음(불갈음·不竭音) 등 8가지를 지칭한다. 불가의 득음은 곧 부처의 팔음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음에 도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13살에 삭발하고 짓소리를 배우기 시작한 벽응스님은 “목이 아프고 온몸에 힘이 빠지는 고통”이라고 회술하기도 했다.

 

불가의 득음은 곧 묘음(妙音)이다. 묘음은 산스크리트어로 ‘우물우물대는 듯한 기묘한 소리(가드가다 스바라)’인데, 백천 가지 풍악이 치지도 않았는데 저절로 울리는 신비한 소리를 뜻한다. 범패는 이러한 불가의 음(音) 사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오랜 세월 인고의 결과물인 범패는 비(卑), 후(喉), 설(舌)음을 고루 사용하여 내면서도, 세속과 만나면서 다양한 시김새가 섞이기도 했다. 불가의 득음 역시 만민을 구제하고 세상을 편안케 하는 소리 발현에 그 궁극이 있다. 판소리나 산조 같은 민간음악에서의 음(音) 사상은 전래의 음악론이 개인의 영감에 의해 선택적으로 혹은 창조적으로 수용되어 완성된, 성음구해스님(聲音)에 한정되어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신재효(申在孝)는 “광대가”에서 광대의 세 번째 구비조건으로 ‘득음(得音)’을 꼽으며 “오음을 분별하고 육률을 변화하여 오장에서 나는 소리 농락하여 자아낼 제”라고 정의했다. 이는 음악적으로 성음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변화무쌍한 어떤 소리도 막힘없이 줄줄 내뱉을 수 있는 경지를 의미한다. 천장에 줄을 매달아 고된 수행으로 거북해진 팔과 몸을 묶어 자세의 흐트러짐을 막으며 소리를 연마하던 방식은 8명창 시대에나 있을 법한 득음 방법으로 전설처럼 회자되지만, 폭포수에서 피를 토하고, 목이 막히면 인분을 마시는 고된 수행을 통해 목청을 틔우며 득음의 경지에 이르던 소리꾼들이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부단한 노력 없이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경지에 이른 소리인 득음(得音)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귀한 판이 풍류극장에서 열린다. 가곡, 범패, 판소리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3대 성악곡을 한 무대에서 감상하는 공연무대로, 단순히 ‘성음’의 절대기량으로 잘못 인식되고 있는 득음의 오묘한오묘한 세계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근래 가장 귀한 공연임이 분명해 보인다. 특히 언어의 연금술사로 추앙받는 명사 3인이 사회자로 나서는데 이들은 자타가 인정하는 득문가(得文家)들. 판소리 해설을 맡은 김홍신 교수는 소설 <인간시장>으로 우리나라 최초 밀리언셀러 작가의 지위를 누린 예술인이다. 가곡 해설을 맡은 신웅순 교수는 시조평론의 새로운 장을 연 개척자로 추앙받고 있다. 범패 해설을 맡은 마가스님은 불교수행과 명상의 고수이자 향기로운 음성법문으로 많은 감동을 선사하는 한국마음치유협회를 맡고 있는 대표적인 신앙인이다. 득음의 경지를 선보일 예인들은 현재 가곡, 판소리, 범패 종목의 보유자(인간문화재)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인명창들이다. 명인 김호성과 김영기의 절제되고 기품 있는 아음(牙音), 명창 송순섭과 신영희의 오장육보를 들락날락거리며 육감을 즐겁게 해줄 성음(聲音), 그리고 명인 구해스님의 향기롭고 그윽한 향음(香音). 풍류의 아늑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풍성한 음잔치(音宴)에 온갖 풍파로 상처 입은 우리의 영혼을 힐링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김문성 (국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