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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광고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피부는 노폐물을 잘 닦아내는 것만으로도 맑고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비누가 없던 시절에는 녹두·콩·팥 등을 갈아 만든 가루인 조두(澡豆)를 물에 개어 비누처럼 사용했다. 조두에는 세정작용에 탁월한 효과를 나타내는 사포닌(saponin) 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 피부의 묵은 때와 먼지를 씻어내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또한, 작은 알갱이들이 피부에 적당한 자극을 주어 모공 속의 때를 씻어내고, 피부의 혈액순환을 촉진해주는 데 효과가 있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에는 녹두가 들어간 ‘옥용서시산(玉容西施散)’을 매일 쓰면 얼굴의 잡티와 부스럼이 사라져 고와진다고 했다. 또한, 조선 시대 생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매년 정월 첫 돼지 날[上亥日]에 팥가루로 세수하면 얼굴이 하얘진다는 내용이 있는데, 팥은 왕실과 궁녀들도 애용하던 세안용 화장재료였다. 현대인이 세안 후 로션이나 크림을 바르듯, 옛사람들도 세안 후엔 피부를 부드럽고 생기 있게 하기 위해 미안수(美顔水)와 면약(面藥). 화장유(化粧油)등을 얼굴에 발랐다. 미안수란 지금의 스킨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화장수(化粧水)라고도 한다. 박 줄기나 수세미·오이·수박 등 수분이 많은 식물에서 채집한 즙으로 만드는데, 다른 화장품에 비해 제조하기가 쉬워 대부분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면약은 현대의 크림과 유사한 화장품으로 삼한 시대에 겨울철 피부보호를 위해 사용하였던 것을 시초로 본다. 피부의 동상을 예방하기 위해 겨울철에 주로 사용하였던 것에서 차츰 피부를 부드럽게 하고 햇볕에 그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용도로도 사용하였다. 화장유란 현대의 에센스 또는 오일과 같은 기능을 하는 화장품이다. 주로 얼굴에 바르는 면약이나 머릿기름을 바르고, 화장품을 개어 쓰는 용해제로 사용했다. 전통 화장품은 대부분 곡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날 비린내가 난다. 그래서 여인들은 화장유에 향을 첨가해서 사용했다. 미안수나 향유처럼 액체상태의 화장품들은 유병이라고 불리는 작은 용기에 넣어 보관했다. 화장의 세 번째 단계는 피부를 화사하게 보이도록 하는 분(粉) 화장이다. 한국의 옛 여성들은 화장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흰 피부를 만들어주는 백분(白粉)은 꼭 발랐다. 백분에는 미분(米粉)과 연분(鉛粉)이 쓰였다. 미분은 주로 쌀을 갈아서 만든 것으로 기장·조 등을 갈아서 함께 사용하거나 분꽃 씨의 가루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그러나 곡식을 이용한 미분은 얼굴에 잘 붙지 않기 때문에 물이나 기름에 개어서 사용했고, 분가루를 물에 풀어서 분세수를 하기도 했다. 이에 반해 연분은 미분에 납 성분의 것을 첨가하여 만드는 화장품이다. 얼굴에 잘 밀착되어 많이 애용하였지만 오래 사용할 경우 납중독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했다.

이렇게 희고 고운 얼굴을 만들어주던 백분은 색이 너무 하얀 것이 문제였다. 이 때문에 여인들은 미분에 돌가루·칡가루·황토처럼 색이 있는 분을 섞어 자신의 얼굴색에 맞게 사용했다고 한다. 이러한 화장법은 현대 여성들이 여러 가지 색 중 자신의 얼굴빛과 어울리는 화장품을 고르고, 섞어서 사용하는 것과 비교해도 전혀 낯설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분 화장과 함께 반드시 행했던 화장 중 하나는 눈썹 화장이다. 눈썹 형태는 사람의 인상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므로 여인들은 눈썹 그리기에 공을 많이 들였다. 조선 후기 사대부 여성인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눈썹의 10가지 모양을 묘사한 ‘십미요(十眉繇)’가 수록되어 당시에도 다양한 형태의 눈썹이 있었음을 알려준다. 그렇지만 문헌과 회화 자료를 종합해볼 때 우리나라 여성들은 초승달이나 버들잎 모양의 눈썹을 선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눈썹을 그릴 때는 주로 목탄을 사용했으나, 상류층 여성들은 눈썹먹[眉墨]을 기름에 개어서 붓을 사용해 그렸다. 먹은 식물을 태운 재·그을음[鐺墨]으로 만들었는데, 재료에 따라 검은색, 푸른색, 짙은 밤색 등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분과 눈썹 화장과 달리 연지(臙脂) 화장은 화장의 농도와 사회적 역할을 알려주는 기준이었다. 얼굴에 연지를 바르는 것만으로도 진하고 화려한 화장을 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아서 즐기지 않았다.
그래서 연지는 일반 여성들보다 기녀(妓女)나 궁녀(宮女)처럼 직업을 가진 여성들이 애용하던 화장재료였다. 하지만 입술과 피부를 붉게 만들어주어 홍조를 띤 건강한 얼굴처럼 보이거나, 혼례 때 신부의 얼굴에 발라 액운을 막아주는 벽사(辟邪) 기능을 하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연지는 주로 홍화(紅花)에서 추출한 색소로 만드는데, 가루 또는 환 형태로 만들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기름에 조금씩 개어서 사용했다. 기름에 갠 연지는 손이나 연지도장을 사용해서 발랐다. 그러나 홍화 연지는 귀하여 고가의 화장품이었다. 이 때문에 일반인들은 선홍색의 주사(朱砂) 연지나 붉은 고추를 말려 동그랗게 오린 후 종이를 덧대어 사용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화장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이 비단 몇 년 사이에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 역사는 예전부터 축적한 기술과 문화로부터 꽤 오랫동안 이어져 오고 있었다. 우리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다. 건물이나 복식, 음식문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러한 사상은 여인들의 화장문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옛 여성들은 억지로 꾸미려 하지 않았고, 인위적인 것은 부자연스럽다고 여겼다. 그저 자연의 모습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면, 힘들이지 않고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움은 한국 여성들에게 가장 고귀한 아름다움이었다.
글˚이지선 (코리아나 화장박물관 학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