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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남한산성은 역사적으로 한 번도 함락되지 않은 대외 항전의 전적지로서 조선시대 임시수도이자 우리나라의 다양한 성곽 축조기술을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남한산성은 고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지역 및 국가방위를 위해 사용되고 있다. 그 증거로서 행궁재건을 위해 선행된 발굴 조사 중 행궁 외행전 앞 마당에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초대형 기와터를 포함한 통일신라시대 건물지가 발굴되었고, 행궁 후원에서는 백제시대 수혈주거지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이 조사를 통해 발굴된 각종 유물은 현재 성남시에 위치한 토지박물관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건물지는 행궁 내 부분복원되어 관리되고 있어, 방문객들에게 조선시대의 유사시 피난 궁(비상왕궁) 뿐 아니라 고대 유적도 접하는 기회를 제공하여, 남한산성의 역사적 다층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또한 서문일대에서의 전망은 임시수도였던 남한산성과 한양과의 지정학적 관계를 조금이나마 이해 할 수 있다. 한편 남한산성은 17세기 서양인을 통해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네덜란드 선원으로 일본으로 항해 중 배가 난파하여 조선에 억류되어 있다가 다시 일본을 거쳐 본국으로 돌아간 헨드릭 하멜(1630-1692)의 ‘하멜표류기’에도, 남한산성이 병자호란 이후 청과 조선과의 관계속에서 유사시를 대비한 국왕의 보장처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기록되었다.

남한산성 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남한산성은 약 12.3km(본성8.9km, 외성 3.4km)이다. 성곽을 비롯한 국가, 도지정문화재는 성내 위치하고 있으며,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을 통해 국제본부의 권고사항과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보존관리되고 있다.
남한산성을 방문하는 관광객의 안전과 화재예방을 위해 남한산성도립공원관리사무소, 광주소방서와 협조하여 다양한 사전 훈련과 현장조치가 이루어지고 있고, 시민과 기업으로 구성된 문화유산지킴이와 자원봉사자를 통해 성곽 내외 환경 모니터링 및 관리도 이루어지고 있다.
남한산성이 이코모스로부터 세계유산등재권고를 받기까지 다양한 절차와 과정을 거쳐야만했다. 우선 2009년부터 남한산성세계유산등재 작업이 시작되었다.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후 기초자료조사연구가 진행되었고, 2011년 전국 지자체를 통해 제안된 13건의 잠정목록 중 우선등재추진대상으로 문화재청을 통해 선정되었다. 이후 2년에 걸쳐 등재신청서 작성을 위한 OUV발굴 및 정립연구를 수행하였다.
이를 통해 얻어진 성과인 남한산성 세계유산등재신청서를 2013년 1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제출하였다. 같은 해 등재신청서 완전성 평가를 통과하고, 9월에 세계유산센터의 자문기구인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전문가 현지 실사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리고 올해 4월에 이코모스에서 세계유산센터에 등재권고를 하였다. 남한산성은 2014년 6월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되는 38차 세계유산위원회를 통해 최종 등재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확정되면 양동·하회역사마을 이후 4년 만에 이루는 국가적 성과이며, 대한민국의 11번 째 세계유산이 된다. 또한 남북한이 합쳐 13개의 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되어 국제적 차원에서 문화유산 강국대열에 서게 되는 것이다. 즉 남한산성의 세계유산등재는 그 의미가 상당히 크다.

남한산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을 통해 제시된 열 가지 등재 기준 중에서도 (ii) ‘특정 기간·지역 내 인류 가치의 중요한 교류의 증거ʼ와, (iv) ‘인류 역사의 중요한 발달 단계를 보여주는 탁월한 사례ʼ로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나아가 남한산성은 군사, 통치, 민속경관으로 나누어 등재신청 구성요소를 분류하고, 각 구성 요소는 다양한 사료에 의해 진정성이 뒷받침되고 있다. 따라서 완전성과 진정성을 갖추어 세계유산 등재가 유력시 되고 있다.
남한산성은 “동아시아 도시계획과 축성술이 상호 교류한 증거로서의 군사유산이자 조선의 임시수도”였다는 것으로 등재기준(ii)를 정당화 했다.
남한산성은 크게 병자호란(1636)을 기점으로 본성(1624)과 외성(봉암성: 1686, 한봉성:1693, 신남성:1719)으로 나뉜다. 특히 인조 2년(1624) 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할 때 각성 스님을 팔도 도총섭(八道都摠攝)으로 삼아 8도의 승군을 소집하여 승영사찰운영을 통해 성곽을 관리, 보수, 방어케 하였다.2) 성벽에는 성문, 암문, 치성, 여장, 옹성, 수문 등 다양한 방어시설을 설치하였다. 성내에는 군사시설인 연무관, 장대, 군포와 장기 농성전에 버틸 수 있도록 각종 무기와 군량을 보관한 수많은 창고시설을 갖추었다. 또한 평상시 유수부를 두어 행정·군사를 통합해통치하도록 하였다. 조선시대 한반도에 분포한 21개의 행궁과는 달리 남한산성은 보장처로서 격을 갖추기 위해 종묘와 사직단(1711)을 갖춘 국내 유일의 산성이다. 또한 동아시아 도성조성론의 근거를 제공하는 주례 동관고공기3)에 기반한 성제와 좌조우사(左祖右社), 면조후시(面朝後市)4) 원리가 산악지형에 적용된 매우 독특한 도시 계획사례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성내 통치시설로는 행궁과 부속시설(내행전, 외행전, 내삼문, 한남루, 재덕당), 좌전과 우실, 성황단, 여단, 사직단, 숭렬전, 현절사 등이 있으며, 읍치를 위해 좌승당, 종각, 인화관(객사), 내아, 제승헌과 이아, 창고, 지수당과 연지 등을 조성하였다.
남한산성은 “지형을 이용한 축성술과 방어전술의 시대별 층위가 결집한 초대형 포곡식 산성”으로 등재기준 (iv)를 정당화했다.
한반도에는 산성이 2천여 개, 경기도에만 600여 개가 존재한다. 한국 군사전략사를 되짚어 볼 때 남한산성은 다른 산성들과 비
교할 수 없는 초대형규모의 산성이다. 남한산성의 기록은 삼국사기 주장성(672)을 시작으로, 고려 광주부사 이세화를 중심으로 대몽항쟁을 극복하고, 조선시대 병자호란을 겪는 등 국지도 발전이 아닌 국가간 이루어진 전면전에 사용되었다. 실질적으로 성벽축성과 암문축성의 시기별 변화, 시대별 무기체계변화에 따른 성제변화를 고스란히 갖추고 있는 성곽발달사의 보고라 할 수 있으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수리, 보수하여 그 완전성을 유지하고 있다. 즉 수원 화성이 한시대에 집약된 성곽축조술을 반영한 반면 남한산성은 전장경험을 통해 진화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실질적으로 남한산성의 외성인 한봉성(1739년 개축)의 성벽축성방식은 수원화성(1796)에도 나타나고 있어, 조선시대 성곽축성술의 흐름을 알 수 있다.
앞으로 남한산성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경우 그 방문객 수가더욱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문화유산 및 자연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남한산성 종합정비 기본계획(2012)’에 기초하여 문화유산 보존관리, 경관관리, 관광관리로 구분하여 단계별로 진행 중에 있다. 문화유산 활용과 관련하여 지역주민과의 연계사업을 적극 진행 중에 있으며, 남한산성 문화권 내 유형유산과 관련한 다양한 무형유산을 계승하고, 고증을 거친 발굴을 통해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도 역사성과 진정성에 바탕한 다양한 무형유산들을 발굴하고 고증을 통해 복원해 나아갈 계획과, 방문객들이 와서 보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 교육, 홍보 전시사업들을 계획하고 있다. 이 또한 유네스코 세계유산 보존관리 장려사항과 부합하여, 등재 후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세계유산 모니터링에 대비하는 좋은 관리 정책방향이라 본다.
문화유산 보존관리는 현세대에서 그 진정성과 완전성을 보존관리하는 것 뿐만 아니라 후손에게도 전해주어야 할 인류의 공동과제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문화유산의 가치와 현재 보존관리 상태의 양호함을 인정받는 것이라 향후 세계유산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도록, 지자체를 비롯해 지역주민,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의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

- 글˚조두원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