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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전문성을 중심으로 구분된 의녀
의녀들은 진맥, 침과 뜸, 약을 중심으로 전문화되어 갔다. 맥을 짚는 것과 침과 뜸을 놓는 것, 명약처방은 의녀들이 배워야 할 기본 임무였고, 그 전문성을 중심으로 맥의녀, 침의녀, 약의녀로 구분되었다.
맥의녀는 이름 그대로 환자의 맥을 짚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의녀이다. 약방제조의 명에 따라 의녀는 환자의 맥을 짚고 그 상태를 파악하고 의원과 의논하였다. 침의녀는 침술을 전문으로 하였다. 침은 침을 놓을 혈 자리를 찾고 그곳에 침을 놓기 때문에 직접 여성의 몸에 손이 닿아야 하며 환자는 몸을 보여야 했다. 요즈음 같으면 연고를 바르거나 약을 먹으면 될 것 같은 부스럼 병에도 당시에는 침을 놓았다. 침자리는 의녀가 독단으로 결정하기도 했지만, 의원의 지시에 따라 침을 놓기도 하였다. 약의녀는 약의 조제와 시중에 힘썼다. 대개 약을 짓는 일은 의녀들이 직접 하지 않고 의원에게 환자의 증상을 얘기한 뒤 의논해서 약을 조제한 후, 정성껏 달여서 환자에게 올렸다.
의녀의 의료 활동과 간호·간병
의녀들이 의료 활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의녀의 의료 활동은 진맥을 통한 진찰과 침놓기, 뜸놓기, 명약 등을 기본으로 조산, 간호, 간병 등 다양하였다. 치료와 간호, 간병을 동시에 한 것이다.
의녀가 환자를 진맥하여 증상을 의원에게 말하면 의원들은 의녀의 말에 따라 치료방법을 의논하여 병을 치료했다. 의녀들은 왕을 비롯하여 왕실식구들이 아플 경우 그들을 진료하고 간호하기 위해 항상 대기하였다.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왕실식구들의 병에 의녀들은 시녀의 말을 참작하여 진찰하고, 침을 놓고, 뜸을 뜨고, 간호하고 간병을 하였다. 그리고 매우 드문 경우였지만 세자빈이나 공주가 중국에 갈 때, 혹은 왕비나 왕세자빈을 맞이하는 국혼이 있을 때, 왕비의 친잠례가 있을 때에 그들을 수행하였다.

의녀들은 그때그때 일을 당하여 설치되는 특설의료관청에 파견되었다. 해산 일을 맡는 산실청과 호산청, 시약을 하는 시약청, 종기를 담당하는 치종청 등에 파견된 것이 대표적이다. 여기에는 내의원 의녀들 가운데 가장 우수한 의녀들이 파견되었다. 의녀들은 왕비가 출산할 경우에는 산실청에, 후궁이 출산할 경우에는 호산청에 배치되어 왕실여성의 출산을 도왔다. 산모의 옆에서 산모의 건강과 식사, 갓 출생한 아기의 건강과 수유 상태에 대해 자세히 살피고 의원에게 알리며 조치하였다. 공주나 옹주의 출산도 도왔다.
의녀들은 시약청에 파견되었다. 시약청은 왕의 약을 조제하는 기관으로 내의원에 있었다. 여기에 약의녀가 소속되어 의원의 약 조제를 도왔다. 의녀들은 종기를 다스리는 치종청에도 파견되어 종기를 치료하였다. 종기는 매우 위험한 것이었다. 지금은 외과 수술로 쉽게 종양을 도려내지만, 당시에는 신체에 칼을 대는 것은 불효에 해당되어 외과 수술을 하지 않았다. 대신 침으로 곪은 종기를 터뜨리고 새살이 돋아나도록 치료를 했다. 특히 태종, 세종, 세조, 중종, 숙종 등은 종기로 고생하였고, 문종, 성종, 효종, 현종, 정조 등은 종기 때문에 죽었다. 종기는 당시 가장 위험한 질환 중의 하나였다.
의녀는 직업상 어떤 대우를 받았나
의녀들은 의학 지식과 기술, 능력과 지위, 역할과 시기에 따라 그 처우가 달랐다. 그러나 대략 의녀에게는 쌀, 포 등의 급료가 주어졌으며, 이 외에 의료 활동이 뛰어나면 그 공로로 여러가지 포상이 주어졌다. 곧 보너스를 받았는데, 쌀만 받는 경우, 쌀과 포를 받는 경우, 신분해방 즉 면천이 되는 경우, 심지어 면천에다 쌀과 포까지 받는 경우 등 다양하였다. 또 복호라하여 조세나 요역부담을 감면받거나 면제받았다. 면천은 잘 주어지지 않았지만, 왕이나 왕실 식구들의 큰 병 치료에 큰 공을 세우면 받았다.
의녀가 되는 과정이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평생을 노비로 사는 것보다는 나았다. 의녀들은 국가로부터 경제적인 혜택을 받았고 일부는 능력을 통해 부를 축적하였다. 그러나 의녀들은 남녀차별과 신분차별로 의원들보다 매우 낮은 차별대우를 받았다. 의녀들은 궁녀나 기녀와 달리 검은 비단 가리마(족두리)를 썼다. 신윤복이 그린 그림에서 가리마를 쓴 의녀가 기녀들과 함께 양반들과 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의녀들의 직급은 어떻게 구분되었나?
의녀들은 사환의녀, 내의녀, 어의녀, 차비대령의녀, 수의녀 등 다양한 칭호와 직급을 가졌다. 사환의녀는 자신보다 더 높은 의녀를 따라다니며 보조나 심부름을 하며 의술을 배우는 의녀들이다. 내의녀는 내의원 의녀로, 내의원 의원에게 의서 및 진맥, 침술 등을 계속 배우는 수련의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 내의원에는 모두 22명의 의녀가 있었는데 이 가운데 10명이 상급의녀 즉 차비대령의녀로 뽑혔고, 나머지 12명 중 침의녀가 11명, 맥의녀가 1명이었다. 이들은 차비대령의녀 중에 빈자리가 생겼을 때 승차되었다. 차비대령의녀 즉 차비의녀는 왕의 병환이나 왕실 식구들의 병환에 즉각 투입하기 위해 대령하고 있는 의녀를 뜻한다. 차비대령 의녀는 의녀 가운데 의술이 좋고 지위가 높은 의녀로, 원한다고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차비의녀는 내의녀보다 급료를 더 많이 받았고, 여러 가지 수입도 더 많았다. 의녀 가운데 제1인자는 어의녀라고 할 수 있다. 임금을 치료하는 의사를 어의라 했듯이 어의녀는 어의를 보좌하며 왕의 병을 진찰하고 간호하는 의녀였다. 그러나 이러한 의녀들 가운데 가장 지위가 높은 의녀는 수의녀(首醫女)로 의녀들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다.
- 글˚한희숙 (숙명여자대학교 역사문화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