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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한 해 모든 일의 시작은 음력 1월 15일부터
옛날에는 달의 형태에 따라, 즉 태음력으로 날짜의 흐름을 계산했기 때문에 음력 1월 15일을 1년의 시작으로 삼았다. 그래서 태양력에 따라 양력 1월 1일 새해가 시작되고 난 후에도 중요한 정월 행사는 음력 1월 15일을 중심으로 전승되고 있다. 전통적인 세시풍속으로서 오늘날에도 비교적 널리 전해지고 있는 명절로는 음력을 기준으로 정월의 설과 정월대보름, 이월의 한식, 오월의 단오 등이 있다. 이러한 명절은 대부분 보름마다 한 번씩 찾아오는 절기와는 구분되는 것으로, 계절에 따라 의미 있는 날을 택하여 정한 것이다.
명절은 살고 있는 나라나 지역의 자연환경과 역사, 그리고 그들이 이룩한 사회와 생업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한반도를 생활터전으로 하는 한국은 오랫동안 독특한 문화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것은 일본, 중국과도 다른, 우리 민족만의 문화를 발전시켜왔음을 말한다.
한편 가까이 있는 중국, 일본은 공히 한자문화권이자 유교 및 불교문화권에 속한다. 한국인의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 역시 주변국인 중국, 일본과 서로 교류하면서 많은 부분 닮은 점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더 깊이 들어가면 고유의 전통문화에 많은 차이가 있다. 여기서는 닮음과 다름이 만들어내는 수만 가지 천태만상과 흥미로운 볼거리가 가득한 한중일 세 나라의 신년 축제를 비교의 시점에서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 까닭은 한 해의 모든 일을 음력 1월 15일을 전후하여 펼쳐지는 신년 축제를 기점으로 시작해왔다는 오랜 역사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와 줄다리기
정월은 한 해를 처음 시작하는 달로, 한 해를 계획하고 일 년의 운을 미리 점치는 달이다. 그중에서 새해 들어 처음으로 보름달을 보는 날, 곧 음력으로 1월 15일을 정월대보름이라고 한다. 정월대보름은 한 해 농사의 풍년과 흉년, 좋고 나쁨을 알 수 있는 날이고, 한 해의 세시풍속 중 4분의 1이 정월대보름에 집중되어 있을 만큼 중요한 명절이자 축제 기간이다.
한국에서는 만월의 날을 축하하는 보름날 중에서도 1년의 첫 만월일을 대보름이라 부르고 이날을 음력 1월 15일로 정하여 대보름 행사를 펼친다. 이날은 액막이를 하고 일 년의 풍년을 기원하는 신성한 날이다.
정월대보름은 ‘상원上元’이라고도 한다. 대보름 전날인 14일에 오곡밥과 아홉 가지 나물 등을 먹고 15일 아침에는 잣, 호두, 땅콩 등 딱딱한 견과류를 깨무는 부름 깨기를 한다. 이를 통해 일 년 동안 부스럼이 없고 피부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정월대보름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 달집태우기와 줄다리기, 지신밟기, 놋다리밟기, 사자춤 등 다양한 축제를 벌였는데, 이는 그해의 ‘무병장수’, ‘제액초복’, ‘풍년’ 등을 기원하는 농경의례의 일종이었다.
마을 주민들은 정월대보름날 밤, 달집태우기를 위해 언덕이나 산 위에 생솔가지나 나뭇가지 등을 쌓아 작은 달집을 만들어놓고 보름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린다. 달이 떠오르면 달집에 불을 질러 태운다. 그러면 그해에는 가정의 안녕과 농작물의 풍년 등이 보장된다고 믿었다. 대보름달은 풍요의 상징이고 불은 모든 부정과 사악한 기운을 살라버리는 주술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 정화·재활성화를 상징한다. 따라서 달집태우기에는 대보름달이 떠오를 때 거대한 달집을 불태움으로써 마을에 깃든 모든 부정한 기운이 소멸되길 바라는 염원이 잘 나타나 있다. 이처럼 달집태우기는 새봄을 예축하는 역동적 의례로서 달과 맺어진 대표적 신년 축제이다.
줄다리기는 볏짚을 이용하여 암줄과 수줄을 만든 후에 두 줄을 연결하는 비녀장을 꽂아 마을 또는 읍면 단위로 양편을 나누어 서로 당기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한 해의 풍년을 예축하는 농경의례이다. 그래서 암줄이 승리해야 그해에 풍년이 든다고 믿어왔다. 이는 암줄, 즉 생산을 관장하는 여성의 다산이 풍년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대륙을 붉게 물들이는 중국의 원소절(元宵節)
중국에서는 연초에 정월을 두 번 축하한다. 양력 1월 1일인 신정과 음력 정월인 춘절春節을 쇤다. 전자는 1월 1일 하루만 휴일로 정해놓고 간단하게 보내는 반면 후자에는 다양한 행사가 성대하게 펼쳐진다. 전국 각지에서 불꽃축제를 하고 폭죽을 터트리며 축하한다.
우리나라의 정월대보름 풍습처럼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세시풍속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원소절元宵節이다. 원元은 시작이라는 뜻이고, 소宵는 밤夜이라는 뜻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첫 번째 밤이라는 의미로, 대지에 봄이 되살아나는 날 밤이어서 사람들이 축하를 했다는 것이다. 원소절의 밤은 음력 새해 첫 달月의 달이 둥근 밤이다. 이날을 축하하는 대표적 방식에는 연등을 만들어보며 즐기는 관등觀燈, 타등미打燈謎, 주교走橋, 원소元宵 등이 있다.
관등은 원래 궁궐과 사찰에 달게 하였는데 이후 민간으로 내려와 큰 축제가 되었다. 민간에서는 처마 밑이나 거리에 내거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으며 이 풍습을 등절燈節, 등석燈夕이라고도 불렀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연등의 종류도 다양해졌고 벽에 거는 경등, 벽에 거는 벽등, 봉황 모양의 봉등, 유리등 등 호칭도 다양하다.
타등미는 등에 쓰인 수수깨끼를 푸는 것으로 정월대보름에 진행하는 대표적 놀이인데 오늘날 대규모 축제로 변화하고 있다.
원소절은 기본적으로 오락을 즐기는 명절이지만 종교적 색채를 띤 활동도 있다. 예를 들어 원소절 밤에 휘황찬란한 연등을 관람하며 거니는데 이를 주교라 한다. 또한 주교의 변형된 형태에
형태에 주백병走百病, 산백병散百病, 제백병除百病 등이 있다. 여기서 주走, 산散, 제除는 소멸의 뜻으로 쓰이며 백병을 없애려는 염원이 내포되어 있다. 이 밖에 역동적인 퍼포먼스를 펼치는 용춤龍舞, 사자춤獅子舞 등으로 봄이 왔음을 축하한다.
한편 소수민족인 이족彛族의 경우 정월대보름에 제화절祭火節이라는 축제를 개최한다. 불을 숭상하는 이족의 문화를 잘 나타내는 제의적 성격의 축제이다. 축제는 전날의 산신제, 당일의 화신火神에게 드리는 제사, 불을 얻는 과정의 재현, 새롭게 얻은 불로 마을의 액운을 물리치는 과정의 순으로 이어진다. 불을 얻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을 춤과 노래로 표현하는 축제이다. 이는 한국의 정월대보름과 일본의 소정월 축제가 기본적으로 제액초복의 의미를 지니는 점과 유사하다.
국민적 행사로서의 일본 소정월(小正月) 돈도야키
일본에서는 음력 1월 1일부터 7일까지를 대정월大正月이라 하고, 15일을 전후로 한 3~4일을 소정월小正月이라 한다. 대정월을 남자의 도시토리年取り(나이를 먹는다는 뜻)라 하는 데 비해, 소정월은 여자의 도시토리年取り라고 한다. 태음력은 농경의 생산력에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소정월의 행사는 농업(특히 벼농사)과 관련된 내용이 많으며, 지역적인 특성을 가진다. 소정월에는 농작물의 예축과 그와 관련된 행사, 농사에 피해를 주는 새나 동물의 추방, 그해의 운수 보기, 내방신의 접대, 불 축제, 액막이, 불교 행사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이러한 행사들도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소정월에는 아이들과 관련된 행사가 매우 많았는데, 최근에는 중지되거나 형태가 변한 것이 많다. 이처럼 다양한 행사가 펼쳐지는 가운데 대표적인 축제는 역시 불을 소재로 한 돈도야키どんどき이다. 돈도야키 축제는 지역 주민이 청죽靑竹, 짚, 회나무 가지 등으로 만든 움막 혹은 망루를 태우는 것을 말한다. 또 그 불을 이용하여 가도마쓰門松(새해에 문 앞에 세우는 장식 소나무)나 금줄 등 대정월 때의 장식품 등을 태우면서 풍요의 신을 영접하여 대접하고 다시 돌려보내는 순으로 이어진다. 축제 참가자는 타오르는 불을 화신火神으로 여기며 그해 ‘농사의 풍년, 어업의 풍어, 상업번창, 가내안녕’ 등을 염원한다. 또한 그해의 ‘예축, 액막이, 자손번영’ 등을 염원하는 제의적 축제로서 전국적으로 실시된다. 즉 돈도야키는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이 화신 또는 조상신을 정중하게 모시고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으로 대접하여 즐겁게 함으로써 한 해의 ‘풍년, 가내안녕, 자손번창’ 등을 보장받기를 염원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중일 신년 축제의 유사성과 상이성
한국과 일본의 정월 행사는 중국의 춘절春節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정월 행사와 한·일의 정월 행사에는 상당 부분 유사성과 상이성이 존재한다.
중국에서는 음력 첫 달을 ‘원월元月’, 15일 대보름을 ‘원소절’ 이라 부르고 봄의 도래를 경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원소절에 탕원湯圓을 먹고, 집집마다 장식용 관등을 처마 밑이나 길거리에 걸어 즐기며, 용춤, 사자춤 등으로 봄이 왔음을 축하하는 것은 한나라 때부터의 전통이라 한다. 최근에는 종이로 만든 열기구 천등天燈을 하늘 높이 올리며 즐기는 관광축제가 유행하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가 같은 시기에 불을 소재로 한 축제를 펼치고 협동이 필요한 놀이를 하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나누며 함께 즐긴다는 점에서는 유사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한·일 두 나라와 중국의 정월 대보름 행사를 비교해보면 전혀 별개의 신년 축제라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형식이 다르다. 근본적인 차이는 중국의 원소절에는 농경의례로서의 불을 소재로 한 축제가 없다는 점이다. 또한 불 축제와 더불어 청죽靑竹이나 나무 기둥을 세우는 것도 없다. 게다가 중국의 정월대보름 축제의 주된 내용은 도시생활형 오락의 성격이 강하고, 한국·일본처럼 ‘풍년, 조상숭배, 자손번창’과 같은 절실한 염원을 담은 제의적 축제로서의 성격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월대보름 신년 축제 가운데 중국에는 없는 것이 또 있다. 즉 농경의례로서 한국과 일본에는 ‘줄다리기’를 하는 곳이 있다. 줄다리기는 마을 또는 지역 주민이 총출동하여 커다란 줄을 만들고 당겨 그 승패 결과에 따라 한 해의 풍흉을 예측하거나 지역 대항전을 펼쳐 이긴 쪽이 풍년이 든다고 믿는 풍습이다.
예를 들어 일본 동북지방 아키타현秋田県에서 전승되는 ‘가리와노 큰줄당기기刈和野の大綱引き’는 음양사상에 근거하여 마을을 둘로 나누고, 남성을 상징하는 수줄과 여성을 상징하는 암줄을 결합시켜 승패를 겨룬다. 수줄이 이기면 그해 농사가 풍년이 들고 암줄이 이기면 쌀값이 올라간다고 마을 주민들은 믿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줄다리기 축제는 정월대보름에 전국 각지에서 실시된다.
한편 한국에서도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가 끝나면 지역을 동서로 나누거나 남성, 여성 팀으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는 풍속이 있다. 서쪽 혹은 여성 팀이 이기면 한 해 농사의 풍년 또는 풍어가 보장된다고 믿으며, 무병장수한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경남 창녕의 ‘영산줄다리기’, 전라도 광주 ‘고싸움놀이’ 등이 있다. 이러한 형식은 일본의 정월대보름 줄다리기 축제와 유사하고 그 종교적 의미를 공유하는 농경의례라고 봐도 좋다.
이와 같이 정월대보름이라는 특별한 날, 특별한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한중일 세 나라의 신년 축제는 서로 닮은 듯 다르게 나타난다. 이는 세 나라가 상호 영향 관계 속에서 신년 축제를 독자적으로 전승해온 역사적·문화적 맥락이 다르기 때문이다
- 글 : 이승수 (중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