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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2] ‘밀어라, 빼라’의 함성소리와 하늘로 치솟는 고싸움놀이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7-02-21 조회수 : 3055







 





고싸움놀이의 유래
고싸움놀이의 유래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풍수설이다. 고싸움놀이를 하는 옻돌칠석 마을은 와우臥牛 형국, 즉 황소가 쪼그리고 앉아 있는 형국이어서 터가 무척 거세다. 이 때문에 소의 입에 해당하는 곳에 구유를 상징하는 연못을 파 놓았고, 황소가 일어서면 마을의 농작물에 많은 피해를 주는 탓에 일어서지 못하도록 소고삐를 할머니당산인 은행나무에 묶어 놓았으며, 꼬리에는 일곱 개의 돌로 눌러 놓았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은“개가 자라지 않아 개 대신 집집마다 거위를 기르고, 거센터를 누르기 위해 고싸움놀이를 했다”고 구술하고 있다.

두 번째는 줄다리기와의 관계설이다. 줄다리기는 도작문화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줄다리기가 동남아시아, 중국,일본, 한국 등 벼농사를 짓고 있는 지역에 많이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줄다리기는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성신앙性信仰을 놀이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줄다리기에서 쌍줄을 사용한 경우 암줄과 수줄로 구분하고, 줄을 잡아당기기 위해 줄을 결합하는 행위를 마치 성행위로 빗대기도 한다. 그리고 암줄을 잡아당기는 팀이 승리해야 풍년이 든다는 의식이 있었다. 줄다리기는 줄의 제작 과정, 줄놀이 과정, 줄다리기 과정, 줄의 처리과정으로 전개되는데, 이 가운데 줄놀이 과정인 줄다리기의 앞놀이가 고싸움놀이의 원천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줄놀이 과정이 오늘날 고싸움놀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특히 장흥이나 강진과 영산강 유역에서 줄다리기를 하기 전에 앞놀이로서 고줄을 서로 맞대고 싸움을 벌이는데, 이를 ‘고쌈’이라고 부르고 있다. 따라서 줄다리기의 앞놀이인 고쌈에서 비롯되어 후에 이것이 변형되어 독립적으로 형성된 것이 고싸움놀이라 할 수 있다. 고싸움놀이의 원천은 다름 아닌 줄다리기인 것이다.


고싸움놀이와 영산강 도작문화
고싸움놀이는 주로 영산강 유역에 행해진 것으로 보인다. 영산강 유역은 줄다리기를 하더라도 주로 암줄과 수줄인 쌍줄을 사용하고 있고, 줄다리기 후에 줄을 동네 앞의 입석이나 짐대에 감아놓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줄이 용을 상징하기 때문에 용신을 모시고 한 해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고자 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영산강 유역은 평야가 발달하여 벼농사가 중심인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고싸움놀이가 전승되었으나 남아 있는 것은 구술기억의 잔재뿐이다. 대표적 예로 전남 영암군 군서면 구림리 모정마을과 전남 나주시 왕곡면 신원리의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이들 지역 줄다리기 줄의 앞부분이 고싸움놀이의 고와 형태가 유사하다. 이러한 것을 보면 영산강 유역에서 고싸움놀이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칠석동 고싸움놀이만이 1970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고,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개막행사에서 고싸움놀이가 시연되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농사 풍요를 기원하는 당산제
칠석동에서는 고싸움놀이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는 마을공동체의 안녕과 농사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신앙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의 생업구조나 자연환경에 따라 제의적인 내용이나 성격이 다르기 마련이다. 영산강 유역에서는 마을제사인 당산제를 지내고 줄다리기나 고싸움 2놀이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리고 마을제사를 지내거나 공동체 놀이마당에는 항상 수반되는 것이 풍물굿이다. 칠석마을 당산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당산제는 상칠석에 위치한 윗당산할아버지제당과 하칠석에 위치한 아랫당산할머니당에서 각각 지낸다. 당산제를 지내기 위해 정월 초열흘경에 마을회의를 열어 당산제를 지내기 위한 제반 사항에 대해 논의한다. 제관은 화주와 정자로 구성되고, 생기복덕이 잘 맞아야 하고, 집안에 궂은일이 없는 사람이어야 한다. 제사의 비용은 집집마다 일정한 비용을 부담하는 호구전으로 충당된다. 제사음식의 준비는 화주가 하고, 당산제를 지내기 전에 개고기나 산고기를 먹어서는 안 되고, 이것은 제사를 지내고 난 후 3개월 동안 지속된다. 특히 음식을 준비할 때는 대변을 보면 찬물로 목욕을 해야 하고, 소변을 보면 손을 씻어야 하며, 부부간의 동침도 삼가야 한다.
칠석마을의 당산제는 상칠석과 하칠석으로 구분하여 각각의 제관들을 선정하여 준비하지만, 제사를 지낼 때는 공동으로 모신다. 그래서 상칠석의 제관과 하칠석의 제관들이 제사를 함께 지내기 위해 서로 만나는 것을 상견례라 하여 이를 ‘사돈보기’라 부른다. 사돈보기에서 상칠석을 시가댁, 하칠석을 처가댁이라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고싸움놀이의 편을 나눌 때 상칠석과 하칠석을 기준으로 하는데 상칠석은 동부팀이고, 하칠석은 서부팀이다. 이처럼 상칠석과 하칠석의 제관들이 공동으로 당산제를 지내고 나면 정월 보름 새벽에 칠석
마을의 풍물패들이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에서 당산굿을 치고 나면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가 본격적으로 고싸움놀이가 시작된다.




고싸움놀이의 준비와 고샅고싸움
상칠석마을과 하칠석마을 사람들 간에 고싸움을 하기로 합의가 이루어지면 젊은이들이 가가호호 돌아다니면서 논농사 형편과 성의에 따라 볏짚을 거출한다.
일반적으로 한 편의 고싸움놀이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짚은 400~500다발 정도이다. 짚을 제외하고 고를 만드는 데 재료는 직경 3cm가량의 통대나무 30~50개, 지렛대로 사용될 직경 20cm에 길이 5~9m의 통나무가 필요하다. 그리고 멜대라고 하는 가랫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직경 15cm에 길이 4~6m에 이르는 통나무 5~6개, 받침대라고 하는 굉갯대는직경 15cm에 길이 2~3m에 이르는 Y자형의 나무가 필요하다. 고의 제작은 정월 13일과 14일에 동네 앞 큰길에서 이루어진다. 줄드리기, 줄도시기, 고 머리 만들기, 고 몸체 만들기, 꼬리 만들기, 고 머리 세우기, 가랫장 달기, 손잡이줄 달기, 고다듬기로 나누어 진행된다. 볏짚을 다듬어 세 사람이 달려들어 세 가닥으로 나누어 쥐고 오른쪽으로 비비 꼬면서 3합의 줄을 꼬아간다. 줄드리기가 끝나면 드린 줄을 또다시 3합으로 꼬아 가는 것을 줄도시기라고 한다. 고 머리 만들기는 직경 3~4cm의 통대를 20개 가져다가 땅바닥에 놓고 메로 두들겨 쪼개고, 쪼개진 대를 몇 군데로 묶은 뒤 3합의 줄로 감아 나간다. 타원형 줄로 감은 대나무를 휘어서 고 머리를 만든다. 고
머리가 만들어지면 지렛대라고 하는 약 10m의 통나무를 고의 밑에 넣고 줄로 감는다. 이를 고 몸체 만들기라고 한다. 고의 몸체가 다 만들어지면 고 몸체에서 나온 줄을 이용하여 두가닥의 꼬리줄을 만들고, 고 머리를 45도 각도로 추켜세운다.그리고 ‘굉갯대’라는 Y자형의 나무를 몸체에 들어 있는 지렛대와 연결하여 묶는다. 마지막으로 고를 어깨에 메고, 또 고를 부딪칠 때 치켜 밀기 위한 ‘가랫장’을 단다.
고싸움놀이는 음력 정월 열흘경 어린이들의 고샅고싸움부터 시작된다. 어린이들이 5~6m의 고샅고골목고를 만들어상대방의 마을 앞을 돌아다니면서 승전가를 불러 응전해 오도록 유인한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15~16세의 청소년들도 합세하고 이튿날은 20여 세의 청년들까지 소규모의 고싸움이벌어지는데, 이때가 열이틀경이다. 이처럼 칠석동마을 상하촌 어린이들이 조그마한 고를 만들어 서로 어르고 놀리면서 싸움이 커져 15일에는 동네 남녀노소가 참여하는 본격적인 놀이로 발전하여 절정을 이룬다.
하늘 높이 치솟는 고싸움놀이 고싸움놀이 놀이의 편은 동부와 서부로 나눈다. 동부는 남자를 상징하는 상촌상칠석마을로 놀이패가 구성되며, 서부는 여자를 상징하는 하촌하칠석마을로 놀이패가 구성된다. 놀이공동체의 구성원은 줄패장, 고의 멜꾼, 꼬리줄잡이, 풍물패, 깃발의 기수, 횃불잡이로 구성된다. 줄패장은 줄을 가지고 싸우는 패거리의 우두머리라는 뜻으로 줄패장의 지휘에 의해 싸움을 전개한다. 그런 까닭에 줄패장은 그 마을에서 덕망과 영향력이 있으며, 고싸움놀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힘이 센 사람으로 선정된다. 고의 멜꾼은 대개 70~80명의 인원으로 힘이 세고 누구보다도 투지와 승벽심이 강한 장년층
이 맡는다. 꼬리줄잡이는 대개의 경우 여자들이 담당하고, 그 인원은 70~80명이다. 풍물패는 고싸움놀이의 행진에서부터고싸움놀이가 끝날 때까지 전의를 북돋고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한다. 풍물패는 팀마다 징 2명, 꽹과리 4명, 장구 4명, 북 5명, 소고 10명, 양반, 할미, 조리중, 포수 등 29명 정도로 구성된다. 깃발과 기수는 팀마다 농기 1개, 사각 영기 4개로 구성된다. 횃불잡이는 팀마다 10여 명이다. 따라서 고싸움 놀이공동체는 370~410명 이상으로 구성된다.

고의 제작이 완료되면 고를 메고 각각 자기 마을의 앞을 행진한다. 서부팀은 하칠석 앞을, 동부팀은 상칠석 앞을 지난다. 이때 각 팀의 풍물패들이 동행하면서 놀이의 축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전의를 북돋운다. 상대편의 고를 만나면 때로는 서로 힘의 우위성을 과시하기 위해 시위를 하기도 한다. 각자의 동네 앞을 행진한 다음 동네 앞 논으로 향하여 본격적으로 놀이를 시작한다. 지금은 전수관의 마당에서 놀이가 이루어진다. 놀이판에 도착하면 서로의 전의를 북돋울 수 있는 노래를 부르거나 함성을 지르면서 전열을 가다듬는다. 서로가 싸울 수 있는 분위기가 고조되면 줄패장의 지휘에 따라 두 고가 정면을 대하고 싸움을 준비한다. 앞으로 전진하다가 뒤로 후퇴하는 것을 몇 번 거듭하다가 줄패장이 “밀어라” 하고 명령하면 놀이꾼들은 함성을 지르며 상대방 고의 정면에 부딪친다. 그러면 상대방의 줄패장을 밑으로 밀어내려고 줄패장들 간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진다. 전세가 불리하여 줄패장이 “빼라”라는 명령을 하면 놀이꾼들은 고를 받아 어깨에 메고 뒤로 물러서면서 풍물패의 신명나는 가락에 맞추어 전열을 정비한다. 이처럼 전진과 후퇴 속에 이뤄지는 정면 공격과 회전을 통해 측면 공격을 반복하면서 1시간 정도 싸움이 벌어진다. 싸움이 끝나면 패한 팀이 다시 도전하려고 들지만 승리한 팀은 고의 머리를 돌려 응전하지 않고 승전가를 부르면서 자기 마을로 향한다.






마을축제로서 고싸움놀이
고싸움놀이는 단순히 정월 대보름 편싸움 계통의 놀이가 아니라 마을공동체가 하나 되는 대동놀이이고,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놀이면서 축제적인 놀이이다. 고싸움놀이를 마을축제로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고싸움놀이가 칠석마을 정월 14일 밤 당산제로부터 시작하여 다양한 민속놀이와더불어 풍물굿놀이인 지신밟기로 연계되기 때문이다. 고싸움놀이가 곧 마을축제인 것이다. 지금까지 정월 대보름의 마을민속에 대한 관심으로 각 가정의 대보름행사와 마을공동체의 대보름행사를 분리하여 이해하거나, 마을공동체의 행사도 당산제·풍물굿·줄다리기와 각종 민속놀이를 개별적으로 텍스트화하여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정월 대보름의 마을민속은 각 가정이나 마을의 행사가 개별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경우가 많다. 마을공동체행사도 당산제와 풍물굿이, 풍물굿과 줄다리기가, 각종 민속행사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마을민속의 큰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정월 대보름의 마을민속을 축제적인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 글. 표인주. 전남대학교 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