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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육십갑자로 본 2018년 무술년 황금 개띠 해
천간과 지지는 고정된 순서를 지니기 때문에 부호 구실을 한다. 둘을 겹치지 않게 결합해 만든 것이 육십갑자인데, 갑자・을축으로 시작해 임술・계해로 마무리되는 주기를 갖는다. 그리고 다시 갑자로 시작해 무한 반복한다. 예순한 살을 가리켜 회갑回甲 또는 환갑還甲이라 하는 것은 육십갑 자의 순서에서 ‘갑甲으로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2018년은 무술년이다. 무술戊戌이 간지인데, 10간의 무戊와 12지의 술戌이 결합된 말이다. 그러므로 무술년은 ‘무의 개 띠 해’다. 그런데 10간은 각각 오방 위에 배속되 고, 그에 따라 청・적・백・흑・황색으로 배정된다. 이는 동양의 오래된 사유방식이다. 이를테면 갑을은 동쪽과 청 색, 병정은 남쪽과 적색, 경신은 서쪽과 백색, 임계는 북쪽 과 흑색, 무기는 중앙과 황색을 은유한다. 육십갑자는 10간 이 앞에 서서 색깔을 표시하고, 12지가 뒤따라 동물을 나 타내는 방식이다. 그러므로 12띠 동물은 다섯 가지 색깔로 존재하는데, 무술년은 ‘황색 개띠 해’가 된다. 이를 사람들 이 황색을 ‘황금’으로 바꿔 황금 개띠 해라 한다.
12지는 자연의 변화를 담은 기호에서 동물 상징의 부호로 바뀌다
12지와 띠동물은 어떤 관계일까? 띠동물의 순서가 어떻게 정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노변담화爐邊談話와 같은 수준이지만 다음의 이야기를 참고할 만하다.
하느님이 세상의 모든 동물들에게 새해 첫날 인사를 하러 오는 순서에 따라 12띠를 부여하겠다고 했다. 걸음이 느린 소는 새벽 일찍 길을 나섰고, 약삭빠른 쥐는 소 등을 타고 갔다. 하늘문 앞에 이르자 쥐는 소 등에서 뛰어내려 1등이 됐고, 띠동물의 처음이 됐다. 쥐가 떠날 때 고양이가 묻자 날짜를 새해 다음날로 일러 주었다. 그래서 고양이는 띠동물에 들지 못했고, 이후부터 쥐와 고양이는 앙숙이 됐다.
띠동물의 순서를 말할 때 흔히 드는 이야기다. 불교와 관련 시키는 것으로 보아 부처를 수호하는 12수호신 관념에서 비 롯된 이야기일 성싶다. 그러나 알고 보면 12지가 처음부터 열두 동물을 상징하 는 것은 아니었다. 갑골문에 12지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오래된 것이나 당시에는 ‘동물’이 아니었다. 오늘날의 12지와는 다른 이름을 쓰고, 우주 운행의 원리에 따라 변화 하는 자연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이를테면 ‘곤돈困頓, 적 분약赤奮若 … 엄무閹茂, 대연헌大淵獻’ 등 12이름을 썼다. 오늘 날의 십간십이지와 다르기 때문에 ‘고간지’라 부른다. 뜻으 로 볼 때, 자子에 대응하는 곤돈困頓은 ‘운이 다하고 새 기틀이 일어나는 상태’이고, 술戌에 해당하는 엄무閹茂는 ‘번성함 이 쇠락한 상태’라 한다. 고간지만을 본다면 띠동물과 전혀 관련이 없다. 사마천의 <사기> ‘율서’에는 ‘자, 축, 인…’과 같 은 현행의 12지 이름이 등장하나 여전히 고간지의 뜻과 비 슷하게 설명하고 있다. B.C. 91년의 일이다.
이와 같은 12지 상징이 우리나라에 쓰인 것은 삼국시대 에 이르러서다. <삼국유사> ‘사금갑’ 기록에는 “매년 상해일 上亥日, 상자일上子日, 상오일上午日에 모든 일을 삼가고 행동을 조심한다”고 했다. 첫 돼지 날, 첫 쥐날, 첫 말날과 같은 용어 는 분명 열두 띠동물을 말함이니, 궁주와 중이 숨은 거문고 갑을 쏜 소지왕 재위 때488년에는 이미 간지가 쓰였음을 보여 준다. 호우총에서 출토된 명문청동합415년에는 명문 ‘을묘乙卯’ 가 있어 5세기경에는 간지기년법이 한반도에 전래된 것이 분 명하다.
오늘날 12띠 동물을 운용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 태국 등이다. 그러나 인도 와 베트남에서는 몇몇 동물이 우리와 다르다. 인도에서는 호 랑이를 사자로, 닭을 금시조로 한다. 이른바 사자 띠, 금시조 띠가 있다는 말이다. 베트남의 경우는 인도와 같되 토끼를 고양이로 한다. 태국은 마지막 순서에 코끼리가 자리한다. 이런 띠동물의 차이는 문화생태적인 데서 비롯된 것이니 그 리 이상할 게 없고, 다만 시간의 변화를 동물상징으로 부호 화했다는 점에서 동일한 문화현상이다.
10간이 다섯 색깔을 은유하기 때문에 모든 띠동물은 다섯 종류이듯 개띠 역시 다섯 종류이다. 갑술甲戌년 푸른 개띠의 해, 병술丙戌년 붉은 개띠, 경술庚戌년 흰 개띠, 임술壬戌년 검 은 개띠, 무술戊戌년 황색 개띠의 해다. 이런 규칙성은 열두 띠동물에 모두 해당되는, 기호를 운영하는 하나의 규칙에 의 해서다. 그러나 사람들은 띠동물과 색깔을 결부시키는 데 주 저하지 않고 오래도록 써왔다.
일찍이 이목李穆, 1471~1498은 ‘입춘부立春賦’에서 무술년 을 ‘황견黃犬’이라 썼다. 이익은 문집에서 ‘검은 개띠 해壬戌’ 라는 뜻으로 ‘현구玄狗’라 적었고, 제문에서는 병술년을 ‘적 구赤狗’로 썼다. 모두 띠동물의 색깔을 강조한 것이다. 개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한 까닭에 여느 동물과 달리 인간의 삶 에 깊숙이 개입돼 있다. 개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고, 사대부 의 문집이나 화가의 그림에도 자주 등장한다. 때로는 삿된 것을 막고 지키는 상징물로 존재한다. 개 이야기는 일상에서 실제로 일어났거나 일어남직한 일들이다. 의롭고 충성스러 운 개에서 효성스러운 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때로는 의 구총義狗冢으로 남아 오래도록 기렸다. 조선의 문사들은 충견 忠犬・의견義犬・효구孝狗・의구義狗에 관심을 갖고 시와 산문 을 남겼다. 아마도 개 일화가 사대부의 도덕적 이상을 담아 내기에 적절한 소재였고, 더러는 사람의 그릇된 행위와 현실 의 모순을 소환하는 데 적절했기 때문일 게다.
<고려사절요>에는 “눈먼 고아가 개꼬리를 붙들고 다니며 구걸을 하고, 우물을 찾아 갈증을 풀었다”는 일화가 전해진 다. 사람들은 이 개를 ‘의견義犬’이라 불렀다. 이 이야기를 거 듭 싣고 있는 <동사강목>의 저자는 “임금을 배반하고 국가를 해치는 무리들이 가득한 때, 이 개는 주인을 알아보았으니, 저들이야말로 짐승보다 못한 자들이라 하겠다”는 평을 달았 다.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빗대어 생각하게 한다.

개 그림을 통해 인간의 삶을 견주기도 했는데, 주목되는 그림은 ‘오동나무 아래에서 달을 쳐다보는 개’ 그림이다. 이 름하여 ‘오동폐월도梧桐吠月圖’이다. 흔히 오동은 봉황새가 날 아와 둥지를 트는 신령스러운 나무이고, 시절의 태평을 표현 한다. 그래서인지 개와 달, 오동은 동시에 출현하기 일쑤다. 이런 류의 그림 가운데 김득신金得臣, 1754~1822의 ‘출문간월도 出門看月圖’는 생각할 거리를 많이 준다. 특히 제화시題畫詩가 있어 화가가 뜻하는 바를 곱씹을 수 있다. 시를 풀어 보면 다 음과 같다.
개는 주인에게 충성하고 용감무쌍한 동물이다. 그래서 개를 지킴이로 상징했고, 인간의 욕망을 극대화하는 상징으로 소 환하고 있다. 상징은 인과관계보다 맥락관계에 의해 가치를 얻는다. 해마다 간지를 들어 띠를 말하고 띠의 의미를 따지 는 것처럼 상징은 의도한 뜻을 특정하는 방향으로 이끈다. 사람이 상징을 만들지만 상징이 사람을 만드는 셈이다. 무술 년 황금 개띠 해를 기다리면서 개를 새기는 것은 개의 여러 상징성에 힘입어 2018년을 당차게 맞으려는 각오 때문이다. ‘개의-리’ 있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