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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봄, 여름호-옛날 옛적에]효자호랑이 이야기와 비극의 의미
작성자 : 진흥원 관리자 작성일 : 2024-09-22 조회수 : 821


효자호랑이 이야기와

비극의 의미


이 세상엔 효자 이야기도 많고 호랑이 이야기도 많다. 이 둘이 만나 ‘효자호랑이’가 되면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까. 효자는 어쩌다가 호랑이가 되었고, 호랑이는 또 어떻게 효를 행하는가. 호랑이로 변신하는 상상과 이야기의 결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글. 김탁환(소설가,『불멸의 이순신』작가)


일러스트: 심은경


일러스트: 심은경


생각만으로 두려운 존재, 호랑이


러시아 라조 자연보호구역에 답사를 간 적이 있다. 동물원에 갇혀 살아가는 호랑이가 아니라 밀림을 누비는 야생 시베리아 호랑이의 삶을 느끼기 위해서였다. 사흘 동안 우리를 안내한 러시아 연구원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제일 중요한 원칙을 강조했다. 절대로 호랑이와 맞닥뜨리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밀림에서 호랑이와 마주치면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호랑이가 사람을 공격하든가 사람이 여러 무기를 써서 호랑이를 공격하든가. 어느 쪽이든 결과는 불행하다. 답사를 이끈 러시아 과학자들이 택한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합리적이다. 호랑이가 먼저 제 갈 길을 가고, 사람들은 여섯 시간 정도 뒤떨어져 호랑이 발자국을 따르는 것이다. 그렇게 밀림을 답사하며 호랑이의 생태와 연관된 자료들을 부지런히 모아 가방에 챙겨 넣었다. 호랑이가 먹다 남긴 산양이나 노루의 뼈들을 발견했고, 호랑이가 두 발로 서서 발톱으로 긁어놓은 나무들도 찾았다. 


무엇보다 많이 수거한 것은 호랑이의 똥이었다. 그 똥을 연구소로 가져가 분석하면, 호랑이의 건강 상태는 물론 호랑이가 어떤 먹이들을 얼마나 사냥해서 먹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호랑이는 네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짝짓기를 하거나 새끼를 기를 때 외엔 혼자 다닌다. 둘째, 계속 움직인다. 자신의 영역을 끊임없이 도는 것이다. 이동하지 않고 한곳에 머무는 호랑이는 죽은 호랑이다. 셋째, 집요하게 먹잇감을 추격한다. 먹잇감 앞에 자신을 절대로 드러내지 않 고, 도둑고양이처럼 은밀하게 따른다. 일주일을 굶으며 따라 다닌 경우도 있다. 넷째, 단번에 먹잇감을 제압한다. 힘차게 도약해 앞발로 멋잇감의 목뼈를 부러뜨리는 방식을 선호한다. 


소설가도 호랑이와 비슷하게 살아간다. 혼자 글을 쓰고, 쉼 없이 글감을 찾아 돌아다니고, 집요하게 등장인물과 등장 공간과 등장 시간을 탐구하고, 내 문장으로 단숨에 독자를 사로잡고자 애쓴다. 

라조 자연보호구역에 머물 때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한밤중에 소변이 급해 텐트 밖으로 나갔을 때이다. 대낮에 호랑이가 이미 이곳을 지나갔고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온몸이 떨렸다. 어두컴컴한 나무 사이에서 동서남북으로 빙빙 돌기만 했다. 내가 어느 방향을 향 해 서든, 호랑이가 등 뒤에서 달려들어 목을 부러뜨릴 것만 같아서였다. 그 밤 나를 엄습한 두려움은 인류가 밀림의 왕인 호랑이에게 품어 온 두려움이다. 나약한 인간이 대적하기엔 너무나도 무시무시한 맹수인 것이다. 라조 자연보호구역 답사를 마치고 돌아와 호랑이에 대한 장편과 동화를 출간했다. 독자들이 호랑이에 관한 질문을 해 오면, 나는 우선 이렇게 혼잣말을 읊조리곤 했다. 


“호랑이와는 마주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주물을 통한 변신, 왜 호랑이인가


효자호랑이 이야기의 가장 큰 특징은 불행하게 마무리 짓는 비극이라는 점이다. 주인공인 효자는 충청도 지역에선 ‘황팔도’라고 성과 이름이 언급되지만, 다른 지역에선 이름도 없이 김생원이나 왕선달 등으로도 불린다. 성과 이름이 달라도 늙은 어머니의 중병을 고치려고 애쓰는 효자인 점은 동일하다. 효자호랑이 이야기에서 공통으로 담기는 사건들은 다음과 같다. 


1 중병을 앓는 어머니의 병이 나으려면 개고기가 필요하다. 

2 효자가 호랑이로 둔갑할 책을 얻는다. 

3 효자는 매일 호랑이로 둔갑해 개를 사냥하고, 다시 사람으로 변신해 어머니께 개고기를 드린다. 

4 아내가 호랑이를 목격하고 둔갑책을 불태운다. 

5 인간으로 둔갑하지 못한 호랑이가 아내를 물어 죽이고, 어머니도 병들어 죽는다. 

6 포수가 호랑이를 쏴 죽인다.


나전 칠기 호랑이 무늬 배겟모
나전 칠기 호랑이 무늬 배겟모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어머니의 병이 나으려면, 개고기를 오랜 기간 꾸준히 매일 먹어야 한다. 그 많은 개를 살 만큼 효자의 형편이 넉넉했다면 이야기가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가난한 효자는 개를 살 돈이 없고, 개고기를 먹지 않으면 어머니는 병환이 깊어져 세상을 뜰 수밖에 없다. 그때 효자는 호랑이로 둔갑하는 방법이 담긴 책을 얻는다. 산신이나 승려 등 탈속적인 존재가 둔갑책을 전해 준다는 설정은 어머니의 병을 고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과 아들의 효심이 매우 깊다는 점을 돋보이게 한다. 

변신 이야기는 인류가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한 날부터 줄곧 만들어져 왔다. 사람이 동물로도 변하고 식물로도 변하고 무생물로도 변하며, 또 그 반대로 변하는 이야기도 많다. 이 중에서 효자는 둔갑책을 통해 왜 하필 호랑이로 변하는가. 호랑이는 인간이 만든 질서를 따르지 않는다. 다시 말해 법과 도덕과 상식에 근거해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호랑이는 막강한 힘을 지닌다. 이 힘을 바탕으로 호랑이로 둔갑한 효자는 정당한 값을 치르지 않고 매일 개를 사냥해 온다. 엄연한 불법이지만, 호랑이로 둔갑한 효자를 막는 이는 없다. 호랑이로 둔갑해 개를 훔치고, 인간으로 변신해 그 고기를 어머니에게 드리는 날들이 계속된다. 드디어 완쾌될 날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효자의 정성이 그만큼 지극하다는 뜻이지 만, 남의 개를 훔쳐 죽인 불법 행위가 쌓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효자가 어머니를 완치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인물은 뜻밖에도 아내다. 효자는 자신이 둔갑술을 부려 호랑이로 변한 뒤 개를 훔쳐 온다는 사실을 아내에게도 비밀로 했다. 앞마당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라도 절대로 방 밖을 살피지 말라고 못을 박는다. 아내는 매일매일 그 약속을 지키지만, 마지막 날엔 방 밖을 몰래 보고야 만다. 개를 물고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것은 놀랍게도 호랑이다. 아내의 두려움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호랑이와 가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도 몸과 마음이 얼어붙는다. 호랑이가 사라진 뒤 아내는 남편이 애지중지 아끼는 책을 불태운다. 아내는 왜 마지막 날 남편인 효자와의 약속을 깬 걸까. 단순한 호기심으로 치부하고 넘어가기 엔 상황이 너무 심각하다. 아내 입장에선 시어머니의 병세가 호전되는 것은 다행이지만, 날마다 개를 구해 오는 남편에 대한 의심이 점점 커졌을 것이다. 도둑질이나 강도질 같은 범행을 저지르는 것은 아닐까. 남편이 아내에게 절대로 해선 안 된다고 요청한 것이 곧 그 잘못된 행동을 감추는 방편은 아닐까. 


용맹한 호랑이


「용맹한 호랑이」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호랑이는 예로부터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자 산군(山君), 산령(山靈) 등으로 모셔진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앞마당으로 들어서는 호랑이를 본 아내는 왜 책을 불태웠을까. 남편이 개를 매일 구해 온 것도, 호랑이가 집 마당까지 들어온 것도 이 책을 얻은 후부터였기 때문이다. 아내는 책을 불태워 호랑이가 다시는 집으로 오지 않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 책이 둔갑을 가능하게 만드는 책이며, 오늘 맞닥뜨린 무시무시한 호랑이가 둔갑한 남편이라곤 상상을 못 한 것이다.

사람으로 둔갑할 길이 막힌 남편은 아내를 죽인다. 아내가 왜 책을 불태웠는지 이해하려 애쓰지 않는다. 호랑이에서 사람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분통을 터뜨릴 뿐이다. 이제 한 집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 수 없게 된 것이다. 어머니 역시 아내처럼, 호랑이인 자신을 두려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편은 부부의 정이나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 호랑이의 방식으로 이 절망과 억울함을 갚으려 든다. 호랑이를 두려워해 책을 없앤 아내를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제압해 죽여 버린다. 어머니 역시 세상을 떠난다. 호랑이로 둔갑하면 서까지 병든 어머니를 완치시키려 했지만, 효자에겐 단 하루가 부족했다. 병이 나아서 사느냐 병이 깊어서 죽느냐, 결말은 둘 중 하나였다. 

아내를 죽이고 어머니까지 세상을 떠난 후, 효자호랑이는 울분을 마을 사람들에게 쏟아낸다. 이 불행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는 대신, 가난한 자신을 돕지 않은 마을 사람들과 세상 탓을 한 것이다. 명포수가 살생을 일삼는 호랑이를 죽이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행실도 십곡 병풍(行實圖十曲屛風)』 중 일부
『행실도 십곡 병풍(行實圖十曲屛風)』 중 일부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다섯 개의 효자도(孝子圖)와 다섯 개의 형제도(兄弟圖)로 그려진 병풍으로 당시의 가장 중요한 가치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을 보급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파국의 이유와 의미


결국 살아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효자도 아내도 어머니도 모두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토록 참혹한 파국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이 안타까운 질문을 쥐고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두 가지 지점이 눈에 띈다. 


먼저, 효자와 아내와 어머니는 가족이면서도 소통이 되질 않았다. 효자는 개를 구해 오기 위해 자신이 호랑이로 둔갑한다는 사실을 아내에게 철저하게 숨겼다. 그 사실을 처음부터 털어놓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내가 한사코 막았을까. 아니면 어머니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호랑이로 둔갑하는 것에 동의했을까. 어느 쪽이든 남편이 아내를 죽이는 데까지 이르진 않았을 것이다. 효자가 매일 개를 훔쳐 와서 그 고기를 상에 올릴 때, 어머니는 아들에게 어디서 어떻게 이 고기를 구했는지 구체적으로 따져 묻지 않았다. 어머니가 질문을 했더라도 아들은 그 과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았을 것이다. 매일 개고기를 가져왔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고, 완치되기 전까지 그 과정을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어머니와 아들은 암묵적인 합의를 본 셈이다. 이 때문에 호랑이로 둔갑한 아들이 며느리를 죽일 때, 어머니는 전혀 개입하지 못한다. 자신의 병을 고치는 데만 집중하고 나머진 아들에게 전부 맡긴 결과다. 


둘째, 파국을 부른 것은 ‘효(孝)’라는 개념 그 자체다. 병든 부모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식의 도리이지만, 그것이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효자호랑이 이야기에서 아들은 어머니를 살리고자 호랑이로 둔갑하는 것까지 받아들인다. 사람이 호랑이가 된다는 것은, 앞에서 살핀 대로, 사람이 하면 안 되는 일들까지 서슴없이 하겠다는 뜻이다. 사람이 아니라 맹수로 둔갑해도 괜찮은 근거는 어머니를 살리겠다는 것 하나다. 효가 악행의 알리바이가 된 셈이다. 효를 절대시해 사람의 목숨까지도 사사롭게 여긴 사례를 우리는 역사에서 숱하게 찾을 수 있다. 


효자호랑이 이야기는 비극이자 경고다. 그 사회에서 강조하며 내세우는 관념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것을 등장인물 세 사람의 끔찍한 죽음으로 알려 준다. 호랑이와 맞닥뜨리는 것은 두렵다. 그러나 더 두려운 존재는 절대적인 믿음을 강요하며 행동하는 사람이고, 그 사람을 본받으라 요구하는 사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