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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 - 국왕의 잘못을 바로잡는 간언을 받아들여라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5-08-07 조회수 : 2985
국왕의 잘못을 바로잡는 간언을 받아들여라


『갱장록』의 여덟 번째 이야기는 내간(來諫)으로, 간언을 잘 받아들이라는 의미다.
신하들의 간언은 국왕이 미처 보거나 듣지 못한 잘못을 찾아내어 바로잡으라는 건의였다.
조선의 국왕들은 간언을 받아들이는 문을 넓히려 하였다.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자 대사헌 민개는 군자를 가까이 하고 소인을 멀리하라고 당부했다.
민개가 생각하는 군자는 사직이 있는 것만 알고 자기 몸이 있는 줄은 모르는 사람이고, 소인은 자신의 이익만 좇고 다른 이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었다.
민개는 군자는 잘못이 있어도 등용해야 하고 아첨하는 자는 공이 있어도 배척하라고 했다.

문종도 언로를 넓히려고 노력했다.
그는 조정의 6품 이상 관리는 모두 국왕과 돌아가며 만나는 윤대에 참석하게 했고, 관리가 지방으로 나갔다가 돌아오면 각자가 파악한 문제점을 보고하게 했다.

세조는 모든 관리에게 간언을 올리라고 요구했다.
세조가 사관으로 있던 김이용에게 ‘나의 실수를 이야기하라’고 하자, 김이용은 ‘간언을 올리는 것은 자기 임무가 아니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세조가 승지 조석문에게 묻자 ‘위로 공경(公卿)에서부터 아래로 모든 관리가 말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세조는 승지의 말이 옳다며 김이용에게 벌주를 주었다

 효종의 경연 석상에서 ‘세상에서 과감히 말하는 것은 이름을 팔려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효종은 ‘이름을 팔려는 마음이 있어도 국가에 이로움이 있으면 상관없다.
나는 그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만 볼 뿐이다’라고답하였다.
국가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면 누구라도 말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신하의 간언이 올라오면 국왕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태종 때 사간원 지사 한상덕이 ‘순 임금은 성인이지만 고요는 단주처럼 되지 말라고 경계했고, 당 태종은 영명한 군주이지만 위징은 수나라 양제처럼 되지 말라고 경계했습니다.
신은 고려 우왕처럼 되지 말라고 경계합니다’라고 건의했다.
태종은 사간원 관리가 올린 경계 중에 한상덕의 건의가 제일 적절했다며 칭찬했다.

선조가 조정의 기강이 진작되지 않는다고 걱정하자 이이가 말했다.
‘국가의 기강이란 몸의 호연지기와 같아 하루아침에 분발한다고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공평하고 정대한 마음으로 정사를 살피고, 곧은 사람을 등용하고 굽은 사람을 물리치며, 잘잘못에 따라 상벌을 분명히 하면 기강은 저절로 세워집니다’.
선조는 이 말을 기쁘게 받아들였다.

(왼쪽) 숙종이 약재로 쓰려고 찾았던 우황 (오른쪽) 중종의 장인인 신수근의 묘소.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일영리에 있다

숙종 때 부교리 홍우서가 상소했다.
‘생우황을 궁궐 안으로 들이라는 명령이 있자 수일 만에 전국에서 도살된 소가 수백 마리에 이르니, 전하께서 이 일을 알면 측은한 마음이 생길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숙종은 생우황을 구하기가 그렇게 어려운지 몰랐다며 즉시 정지시켰다.

신하가 민감한 사안을 건의하려면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야 했다.
성종 때 유생 남효온은 문종의 왕비인 현덕왕후의 복위를 요청했다.
단종의 모친인 현덕왕후를 폐위시킨 사람은 바로 세조였다.
남효온은 세조가 예종에게 ‘나는 궁한 때에 있었고 너는 번성한 때에 있으니 나의 행적에 국한되어 변통할 줄 모르는 것은 내 뜻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라고 훈계한 말을 들어 현덕왕후의 복위를 주장했다.
임사홍 등은 이는 신하가 할 말이 아니라며 체포하여 심문하자고 했지만, 성종은 구언을 하면서 벌을 주면 간언이 들어오지 않는다며 죄를 묻지 않았다.
생육신이었던 남효온은 자신이 벼슬할 만한 때인지를 알아보기 위해 이 상소를 올렸다.

중종 때 지방관으로 있던 박상과 김정은 단경왕후의 복권을 요청했다.
단경왕후는 중종의 왕비였지만 부친 신수근이 중종반정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폐위되었다.
이들은 단경왕후가 중종이 왕이 되기 전부터 좋은 짝이었고 왕비가 된 후에는 신민의 축하까지 받았는데, 박원종 등이 국모를 쫓아냈으니 만고의 죄인이라며 이들을 벌하라고 요구했다.

당시 실권을 장악한 반정세력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발언이었다.
이들은 유배를 갔다가 조광조의 건의로 인해 풀려났다.
조광조는 국왕의 구언에 답변한 사람을 처벌하면 언로가 막힌다고 비판했다.

간언 중에는 다른 신하의 잘못을 지적하는 경우도 있었다.
선조가 경연에서 염치가 없어진 이유를 묻자 김성일은 ‘대신 중에도 다른 사람의 뇌물을 받은 자가 있으니 염치가 없어진 것이 이상하지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우의정 노수신이 땅에 엎드려 ‘김성일의 말이 옳다.
자기 친족이 북방의 장수가 되어 노모에게 작은 담비가죽 옷을 선물했다’고 말했다.
선조는 ‘대간은 직언을 하고 대신은 잘못을 뉘우치니 두 가지를 모두 얻었다.
신료들이 서로 책려하는 것이 이 정도이니 국사를 할만하다’고 말했다.

영조 때 부평어사 김상성은 국왕의 잘못을 곧바로 지적하는 간언을 올렸다.
그는 ‘영조가 어릴 때 엄한 스승의 도움을 받지 못해 자신의 성격대로 행동하는 병폐가 있고, 학문이 깊지 못하고 뜻을 지키는 데 힘쓰지 않아 왕도를 행할 때도 있고 패도를 행할 때도 있으므로, 삼대의 군주는 물론이고 한ㆍ당의 군주에도 미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영조는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병통을 분명하게 지적해주니 기쁘게 받아들인다’며 사관에게 이 일을 역사책에 기록하여 훗날 경계하는 거울로 삼으라고 명령했다.

국왕도 인간이기에 자기 잘못을 정면에서 지적하는 간언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훌륭한 국왕이 되려면 신하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올리는 간언을 귀담아듣고 자기 잘못을 고쳐나가야 한다는 것이 『갱장록』에 담긴 정조의 가르침이었다.

 
- 글. 김문식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