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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유정담
전국노래자랑:
옛사람들의 삶이 담긴 우리 소리
글. 이상규(전주교육대학교 음악교육과 교수)

<가객창장(歌客唱場)>, 『기산풍속화첩』 | 김준근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출처: e뮤지엄
“소리를 하면은 속이 뻥 뚫리는 거 같아 좋던디요…. 이 가슴에 뭐가 탁 맥힌 것맨치 답답하고 외롭고 할 때마다 소리를 하다 봉께는 그리 되었구만이라.” 최근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읊조린 대사 한 구절이다. 한국전쟁 직후 모든 것이 피폐하여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힘든 상황에서도 소리의 매력에 빠진 주인공이 우여곡절 끝에 소리꾼의 길을 걷게 된다는 이야기에 전국이 열광하고 있다는 기사들이 쏟아졌다. 더구나 그 후광으로 여성 국극이 재조명되고 국악에 대한 관심으로 확산할 거라는 전망도 이어지고 있다.
소리와 함께
그 힘들었던 시절, 소리 한 자락을 통해 주인공이 절망과 고난을 견뎌내고 자기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갔다는 서사는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명창들의 생애가 대체로 그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명창들은 대부분 세상에서 노래를 부를 때 가장 행복했으며, 소리를 하지 못할 때가 죽을 만큼 힘들었다고 한다. 현장 조사를 위해 만난 많은 할머니들이 들려주신 “이 노래 없었으면 나는 벌써 죽었어. 이 노래가 나를 살린 거야”라는 이야기에서 새삼 노래의 역할과 위력을 가늠하게 된다.
필자는 어릴 적 여름방학 때 방문한 외가댁에서 동네 아이들과 잠자리를 잡았던 추억이 있다. 나뭇가지 끝에 앉아 있는 잠자리를 잡으려고 살금살금 다가갔지만 잠자리는 미리 눈치채고 날아가 버렸다. 이를 본 친구는 잠자리를 잡는 비법을 알려 준다며, 손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나마리 동동 파리 동동”으로 시작되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조용히 다가가도 잡기 힘든 잠자리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손을 움직이는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 그해 여름 내내 상당한 수의 잠자리를 잡았던 추억이 새록새록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마리는 잠자리의 그 지방 사투 리였으며, 이모와 함께 놀이하며 불렀던 노래는 다리세기 노래임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들에게 노래는 자연과 주위 환경을 이해하는 매개체이자 즐길 거리였다.
노래는 늘 우리 곁에 있어 왔다. 어머니의 자장가, 친구들과 놀이하며 부르는 노래, 일하며 부르던 논 매는 소리, 땔나무를 구하러 산에 가며 부르던 노래, 상여를 메고 장지로 가며 불렀던 운상 소리는 늘 우리의 삶과 같이해 왔다. 옛사람들에게 민요는 어릴 때부터 즐거움을 함께한 친한 벗이었으며, 어른이 되어서는 삶의 기쁨과 고단함은 물론, 외로움까지도 어루만져 주며 늘 우리의 곁을 지켜 준 그림자였다.
노래와 더불어
먼 옛날부터 우리네 조상들이 불러 왔던 노래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고려를 거쳐 조선 시대로 이어진다. 『고려사』 「악지」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음악이 소개되고 있다. 고구려의 음악으로 <내원성>, <언양>, <명주> 등의 악곡이 보이고, 백제의 음악으로 <선운산>, <무등산>, <정읍>, <방등산>, <지리산> 등의 악곡이 소개되는데, 이들 음악은 민요와 같은 향토 음악일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신라 노래와 관련된 구체적인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일본에 전해 준 신라악이 가야금과 노래, 춤으로 구성된 음악이라는 점에서 고구려, 백제와 마찬가지로 신라에도 민요와 같은 노래가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청산별곡>, 『악장가사』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이후 통일신라 시대 향가를 거쳐 고려 시대에는 고려 속요로 이어진다. 고려가요로도 불리는 고려 속 요는 많은 악곡이 민간에서 연행되었는데, 특히 <청산별곡>, <한림별곡>, <가시리>, <사모곡> 등의 악곡은 조선 초 발간된 『시용향악보』에 그 악보가 기록되어 현재에 이른다.
조선 시대 후기에는 민간의 풍류방 음악과 전문 예능인 음악의 등장으로 다양한 형태의 노래가 불리었다. 사대부와 중인 계층의 음악 애호가들은 풍류방 음악으로 <영산회상> 같은 기악곡 연주와 함께 성악곡인 가곡(歌曲)을 노래했다. 가곡을 전문적으로 부르는 가객(歌客)은 대부분 중인 신분이었는데, 이들은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 등의 노래집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시조 시를 노래하는 가곡과 달리 비교적 긴 사설을 지닌 장절 형식의 노래인 가사(歌詞)도 노래했다. 한편 노래하는 관현악 반주에 맞춰 가객들이 부르는 가곡과 달리, 시조시를 단순한 가락에 얹어 부르는 시조창은 비전문가들도 부를 수 있는 장르로 탄생하게 되었다. 이 시대에는 전문적인 음악인이 공연하는 음악 장르가 많이 생겼는데, 그중 소리광대가 소리와 아니리, 발림으로 긴 이야기를 엮어 나가는 판소리는 특히 많은 사람을 모았다. 유진한의 『만화집(晩華集)』에 의하면 18세기에 이미 판소리 <춘향가>가 불리었으며, 19세기 중엽 송만재의 『관우희(觀優戱)』에는 <춘향가>, <심청가>, <박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배비장전>, <강릉매화타령>, <옹고집전>, <변강쇠타령>, <장끼타령>, <무숙이타령>, <가짜신선타령> 등 12마당의 악곡이 소개되어 당시 판소리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사당패 소리로 전승되던 <선소리산타령>은 조선 말기에 전문적인 소리꾼 집단이 주로 불렀고, 서울 지역의 소리꾼들은 잡가를 즐겨 불렀다.
20세기 초반에는 창자 한 사람이 고수의 북 반주에 맞추어 노래하는 판소리를 서양의 오페라처럼 무대 배경을 바탕으로 배역을 나눠 공연하는 형태로 바꾼 창극이 나타나게 된다. 1908년 김창환을 주축으로 한 소리꾼들이 서양식 극장인 원각사에서 <춘향가>와 <수궁가>를 창극 형태로 공연했다.
이러한 창극 공연은 1934년 남도 명창을 중심으로 한 ‘조선성악연구회’가 발족되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으며, 해방 이후 여성으로만 구성된 여성국극도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잡가와 함께 민요가 널리 유행했다. 민요는 지역적 특성이 있기 때문에 과거에는 특정 지역에서 주로 전승되었지만, 20세기 들어 변화된 환경 속에서 대중성이 확보된 일부 악곡들이 전문 음악인들에 의해 널리 퍼지게 되었다. 특히 경서도 명창들의 적극적인 서울 활동으로 경기잡가와 서도잡가가 활성화되었으며, 새로 만들어진 통속민요와 신민요도 많은 호응을 얻었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지역적 한계와 구전 방식, 전통 생활 방식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향토민요는 보존과 전승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를 개선하고자 1958년 전국의 민속예술 발굴과 보호를 위한 ‘한국민속예술제’가 개최되었고, 곧이어 1962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여 제한적이나마 향토민요 발굴의 성과를 보여 주었다. 1960년대 이후 국악을 연구하는 일부 학자들은 향토민요를 음악학의 연구 영역으로 편입해 본격적으로 여러 지방의 민요를 채록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을 이어받아 1980년대 후반 구전되는 전국의 민요를 집대성한 ‘한국민요대전’ 음반 전집이 발간되어 대중들의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있던 소박한 향토민요의 음원이 가사와 함께 공개되었다. 이 전집은 모두 103장의 CD에 2,255곡의 민요가 들어 있는 방대한 기록물로, 음원들과 함께 옛 세대의 다양한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상당히 도움을 주었다.
민요의 특징
일반 대중의 애환이 담긴 노래인 민요는 전승 주체가 전문 음악인이 아닌 민중이기 때문에 대대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전 방식이 보편적이다. 또한 민요는 특별한 작곡자나 작사자에 의해 만들어진 음악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해 만들어 가는 음악이기 때문에 다양성이 잘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민요는 닫힌 구조가 아닌 열린 구조로 설명하기도 한다.
민요는 기층민이 감정을 넣어 부르는 노래이므로 해당 지역의 특별한 악센트나 리듬, 사투리 등이 그대로 반영된다. 따라서 같은 곡이라도 지방마다 다양한 버전의 노래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민요인 <아리랑>은 그 종류만 60여 종에 달하며, 그 가사의 수는 3,600여 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또한 전라도의 대표적 민요인 <진도아리랑>은 알려진 가사만 50절 이상이라고 하니 그 다양성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누구나 변주와 개사를 통해 새로운 버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열린 구조로 이해할 수 있다.
민요는 지역적 정체성과 옛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문화 코드다. 민요는 구전되는 동안 다듬어지거나 변형되며, 더러 새로운 내용이 추가됨으로써 살아 있는 음악을 지향한다. 그런 점에서 민요는 옛사람의 삶과 후손들의 삶을 이어 주는 연결 고리라 할 수 있다.
부르는 노래, 듣는 노래
민요는 특정 기준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대체로 가창자의 전문성을 기준으로 통속민요와 향토민요로 분류하며, 음악의 기능에 따라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로 구분한다. 통속민요는 전문 음악인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무대 공연용으로 부르는 노래로, 대중성이 높고 음악적 세련미가 갖춰진 음악이다. 특히 향토민요를 공연용 음악으로 다듬어 전국적으로 알려지는 경우가 있는데, <창부타령>, <노랫가락>, <정선아리 랑>, <강원도아리랑>, <밀양아리랑> 등이 이에 해당한다.
통속민요는 공연용이라는 점에서 전문 음악인이 구사하는 음악적 세련미를 감상하기 위한 노래다. 향토민요 또는 토속민요는 일반 서민들이 생활 속에서 부르는 노래로, 가락이나 리듬이 비교적 소박하고 지역적 특성이 강한 노래다. 상여 소리나 논매는 소리, 노 젓는 소리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일의 효율을 높이고 고됨을 줄이기 위해 참여자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다.

<논갈이>, 『단원 풍속도첩』 | 김홍도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출처: e뮤지엄
즐겁게 일하며 부르는 노래
민요는 노래의 기능에 따라 크게 노동요, 의식요, 유희요로 구분하는데, 노동요는 크게 농업 노동요와 수산 노동요, 기타 노동요로 세분된다. 노동요 또는 일노래는 민중들이 일을 하면서 작업을 효율적으 로 수행할 뿐 아니라 노동에 따른 수고를 덜며, 즐겁게 일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다. 특히 여러 사람이 함께 동작을 맞추어 작업을 할 때 그 효과가 두드러진다. 농업 노동요는 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며 다양한 작업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로, 흔히 농요로 줄여 부른다. 농경 사회인 우리나라는 농사가 생활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요의 대부분이 농요다. 논농사 소리로 모심는 소리, 논매는 소리 등이 있으며, 밭농사 소리로는 밭가는 소리, 밭매는 소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도 물 푸는 소리와 새 쫓는 소리, 도리깨질 소리 등이 있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농사 작업이 기계화되면서 농요가 불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전통의 보존과 계승을 위해 무형유산 지정이나 민속예술축제 등의 행사를 통해 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수산 노동요는 강이나 바다에서 고기를 잡거나 해산물을 채취하며 부르는 노래로, 어요로 줄여 부른다. 노 젓는 소리, 그물 당기는 소리, 굴 캐는 소리 등이 대표적이다.
기타 노동요로는 소나 말 등의 가축을 기르는 과정에서 부르는 축산 노동요, 산에서 나무를 베거나 운반하는 등의 작업을 하며 부르는 임산 노동요, 방아를 찧거나 물레를 돌리며 부르는 물레질 소리 등의 공산 노동요가 있으며, 집을 짓거나 토목공사를 하며 부르는 목도소리, 지경다지는 소리 등의 토건 노동요 등이 포함된다.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며 부르는 노래
의식요는 안녕을 기원하는 민속 의식이나 통과의례를 치르며 부르는 노래다. 의식요는 생업의 풍요나 삶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식에서 부르는 노래가 많고, 장례 의식 같은 통과의례에서 부르는 노래가 대표적이다.

<고기잡이>, 『단원 풍속도첩』 | 김홍도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출처: e뮤지엄
기원 의식요는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로 고사 소리, 지신 밟는 소리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노래들은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소원하는 바를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음악적으로는 사설을 주워섬기거나 낭송조의 가락을 주로 사용한다.
전통 사회에는 여러 형태의 통과의례가 많고, 그에 따라 부르는 통과의례요도 상당히 다양했다. 통과의례 관련 노래 중 장례 의식요가 오늘날까지 전승되지만, 장례의 형태와 방식의 변화에 따라 장례 의식도 민속예술제나 특정 축제에서 공연 형태로 주로 접하게 된다. 상여를 메고 가면서 부르는 운상 소리나 무덤의 봉분을 다지며 부르는 달구소리 등이 대표적인 장례 의식요에 속한다.

<길쌈>, 《단원 풍속도첩》 | 김홍도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출처: e뮤지엄
놀고 즐기며 부르는 노래
유희요는 놀이나 놀이의 일부로 부르는 노래를 가리킨다. 유희요는 놀이 동작의 일관성을 유지하거나 놀이 행위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데, 노래의 역할을 기준으로 여러 가지로 구분한다. 대부분 어린이들이 가창자나 참가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동작 유희요는 몸을 움직여 놀이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로 강강술래, 다리세기 등이 이에 해당한다. 도구 유희요는 놀이 도구를 가지고 놀며 부르는 노래로, 고무줄놀이 노래가 대표적이다. 언어 유희요는 말의 어휘를 가지고 놀이를 하며 부르는 노래로, 말 잇기 노래, 천자풀이 등이 이에 해당한다. 놀림 유희 요는 친구를 놀리면서 부르는 노래로, 이 빠진 노래 등이 이에 해당한다. 가창 유희요는 놀이 성격을 띠는 노래로, 둥당애타령 등이 해당한다.

<고누놀이>, 『단원 풍속도첩』 | 김홍도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출처: e뮤지엄
모이면 노래하는 우리
중국 진(晉)나라의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三國志)』의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 우리 조상들의 노래 부르기 사랑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부여 사람은 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많은 사람이 모여 며칠 동안 마시고 먹고 노래하며
춤춘다···(중략) 어린이나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노래를 부르고 하루 종일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고구려의 백성들은 노래와 춤을 즐겼으므로, 나라의 고을과 마을에서 밤에 남녀가 서로 어울려 노래와 유희를 하였다.
예에서는 늘 오월에 씨를 뿌리고 나면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데, 그 춤은 10여 명이 일제히 시작하여 서로 따르면서 땅을 높고 낮게 밟기도 하는데, 손과 발이 서로 박자에 잘 맞는다.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
일반적으로 역사서는 지리나 특정 사건 등 사실 관계를 나타내는 내용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노래 관련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한반도의 여러 국가들을 언급하며 사람들이 모여 노래를 부른다는 중국의 기록은 그만큼 우리 민족이 얼마나 노래를 좋아하고 즐기는지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근거로 보인다. 이들 내용 중에서 특히 주목할 부분은 많은 사람이 같이 모여서 노래를 부른다는 점인데, 이는 농경문화를 주축으로 한 한반도에서 공동체 문화와 노래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우리는 함께 모여 노래하며 애환을 함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