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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가을, 겨울호-전국 노래자랑]황해도 사람들의 사랑이 담긴 노래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5-03-11 조회수 : 1259

황해도 사람들의 사랑이 담긴 노래

 

. 이용식(전남대학교 국악학과 교수)

 


<풍속산수화> | 신윤복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출처: e뮤지엄


 

난봉이 났네, 난봉이 났네

 

<난봉가> 노랫말의 시작 부분이다. ‘난봉은 한자로 어려울 난()’, ‘만날 봉()’으로 만나기가 어렵다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또는 서도민요 명창이자 국가무형유산 서도민요 예능보유자였던 오복녀(1913-2001)서도소리(1978)에 의하면 주색과 잡기 따위의 방탕한 짓을 많이 하는 사람난봉꾼을 의미한다고도 한다. 서도민요 명창이자 황해도 무형유산 서도소리 예능보유자였던 박기종(1926년생)전통서도소리 명곡대전: 황해도 평안도(민속원, 2014)에 의하면 옛날 학식 높은 사대부집 자제들 중에서 학문은 높으나 서도 지방 사람에 대한 차별 정책으로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젊은 한량들이 있었는데, 이들 중에 현대 말로 꽃미남에 돈 잘 쓰고 놀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부른 노래라 해서 이 노래를 <난봉가>, <한량가>, <사랑가>, <님타령>이라고 했다고 한다.

 

 

노골적인 표현이 담긴 <난봉가>

<난봉가>의 노랫말을 들으면 이 노래는 난봉꾼을 주제로 하는 노래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정방산성 초목이 무성헌데 / 밤에나 울 닭이 대낮에 운다

만경창파에 거기 둥둥 뜬 배야 / 게 잠깐 닻 주어라 말 물어보자

오금이 오슬오슬 추고 골머리 사지통 나는 건 / 임자로 연하여 난 병이로다

노다를 가게 잠을 자다 가게 / 저 달이 지도록 노다만 가세

앞강에 뜬 배는 님 실러 가는 배요 / 뒷강에 뜬 배는 낚시질 가는 배다

 

우리나라 민요에는 직설적인 표현이 많은데, <난봉가>는 특히 노골적인 표현을 담고 있다. <난봉가>는 본래는 한량의 노래로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민중이 놀면서 부르는 애창곡이 되었다. 민중의 팍팍한 생활에 활력소를 주는 노래다. 민요를 전통 사회에서는 노래라 했고, ‘노래놀이에서 나온 말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난봉가>와 같이 노는 자리에서 이런 노래를 부르는 건 전혀 이상한 현상이 아니다. 그리고 놀면서 부르는 노래의 노랫말은 민중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 마련이다.

 



<무과시장> | 김준근

소장: 부산광역시립박물관, 출처: e뮤지엄


 

<난봉가>는 황해도 민요로 시작했지만, 민중들의 놀이판에서 애창되면서 많은 파생곡을 낳았다. <난봉가>에 이어 조금 빠른 템포로 부르는 <자진난봉가>가 만들어지면서 본래의 노래는 느린 노래라는 의미로 <긴난봉가>라고 부른다. <자진난봉가>의 노랫말은 <긴난봉가>의 노랫말보다 더욱 노골적이다.

 

실죽 밀죽 잡아댕길 줄만 알았지 / 생사람 죽는 줄 왜 몰라 주나

물속에 잠긴 달은 잡힐 듯 말 듯 허구요 / 우리 님의 심정은 알 듯 말 듯 하더라

요놈의 종자야 내 치마폭을 놓아라 / 외볼로 창창 감친 건 가물에 콩 뛰듯 한다

사랑 가고요 임이 마저 가면 / 이 세상 백 년을 누굴 믿고 사나

가는 님의 허리를 더두 덥석 안고 / 가지를 말라고 생야단이라

 

우리 전통 민요에서 느리게 부르는 노래를 노래라 하고 이에 이어서 빠르게 부르는 노래를 자진노래라고 한다. ‘노래는 한배가 길다라는 의미다. ‘한배는 본래 활터에서 화살이 날아간 거리를 일컫는 말이다. 속도가 느린 노래에 공간을 의미하는 한배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민요의 속도라는 시간적 개념에 공간적 개념을 결합한 것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난봉가>에 노랫말이 많아져서 노랫말을 촘촘하게 부르는 <사설난봉가>는 예전에는 <개타령>이라고도 했다. <사설난봉가>는 노래를 부르고 아래 [ ] 속의 노랫말은 마치 랩(rap)을 부르듯이 빠르게 내뱉는다. 그렇기에 <사설난봉가>를 들으면 1980년대 미국에서 랩이 시작되기 이전에 우리나라에 이미 랩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왜 생겼나 왜 생겼나 / 요다지 곱게도 왜 생겼나

[왜 생겼나 왜 생겼나 요다지 곱게도 왜 생겼나 / 무쇠 풍구 돌 풍구 사람의 간장을 다 녹여내 누나]

앞집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 뒷집의 총각이 목 매러 간다

[앞집 처녀가 시집을 가는데 뒷집 총각이 목 매러 간다 / 사람 죽는 건 아깝지 않으나 새끼 서발 네 떼 난봉 나누나]

간다 간다 나는 간다 / 너를 두고 나는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고 / 이십 리 못 가서 불한당 만나고 삼십 리 못 가서 내 생각 하고서 되돌아오누나]

달도 밝소 별도 밝소 / 월명 사창에 저 달이 밝아

[처녀 총각이 단둘이 맞나 살지 죽을지 살지 / 아무도 모르게 막 놀아나누나]

영감을 데리고 술장사 할까 / 총각을 데리고 뺑소니칠까

[영감을 데리고 술장사 하자니 밤잠을 못 자서 내 고생이요 / 총각을 데리고 뺑소니치자니 나이 많은 사람이 실없어지누나]

 

한민족의 노래인 <아리랑> 노랫말도 <사설난봉가>에 있다. 이 노랫말은 본래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게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나라고 저주를 퍼부으면서 마치지 않는다. <사설난봉가>에 의하면 그 님은 삼십 리 못 가서 내 생각이 나서 되돌아온다. 이 노랫말을 1절만 부르니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에게 발병 나라는 저주를 퍼붓는 내용이 되었다. 본래는 내 생각이 나서 되돌아온다는 해피 엔딩이다. 그러나, 박기종에 의하면 이 노랫말은 해피 엔딩이 아니라 저주에 저주를 퍼붓는 내용이라고 한다. 발병뿐만 아니라 손목이 삐고 코피를 쏟고 요절이 나라는 극악 저주를 퍼붓는 노래다.

 

나를 버리구 가시는 님은 십 리두 못 가서 발병이 나구

이십 리 못 가서 내 생각 허구 삼십 리 못 가서 손목이 삐구

사십 리 못 가서 코피를 쏟구 오십 리 못 가서 요절이 나리라

 

 

환경에 따라 만들어진 다양한 변주

<난봉가>는 재미있고 노골적인 노랫말을 가져서 황해도 인근에서 다양한 노래가 만들어진다. 개성 지역의 풍광을 노래한 <개성난 봉가>는 개성의 명소인 박연폭포를 노랫말에 넣어 박연폭포 흐르고 내리는 물은 범사 정으로 감돌아든다는 대목으로 인해 <박연폭포>라는 제목을 갖기도 한다. 사리원에서는 <사리원난봉가>를 부르고, 연평도에서는 <연평도난봉가>를 부른다. <연평도난봉가>는 조기잡이 어민들이 부르면서 <배치기 소리>라는 제목을 갖기도 하고 조개잡이 하는 여성들이 부르기도 한다.

 

베격 바구니 모셔 끼구 연평 바다로 돈 실러 갑시다

연평 바다 흐르는 물에 조기만 남구서 바다야 지거라

칠산 바다에 만선 뜨구 노을진 바다로 돌아만든다

연평 바다에 널린 조기 양주만 남기구 다 잡아들여라

연평 바다에 풍악이 울린다 임장군 은혜로 망태 터졌네

임경업 장군님 모셔 놓고 만선의 풍장을 울려나 보세

 

 


서해안 풍어제의 임경업 장군기

소장·제공: 이용식


 

이 노래는 연평도에서 칠산 바다까지 조기잡이를 다니는 뱃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다. 칠산은 전라남도 영광군 칠산 해역을 일컫는다. 조기잡이 뱃사람들이 황해도 연평에서 전라남도 영광군 칠산까지의 먼 거리를 오르락내리락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황해도 앞바다를 수호하는 바다의 신이 임경업(1594-1646) 장군이다. 임경업 장군은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반대했는데, 청나라 포로가 되자 탈출해 명나라로 건너갔다. 이후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에 체포되었던 임경업은 조선에 돌아와 친청파 인사들에 의해 사형되었다. 임경업 장군의 충절과 용맹으로 인해 그는 바다의 신이 되어 지금도 서해안 일대에서 큰 굿을 할 때는 커다란 임경업 장군기를 내건다.

 



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에서 배연신굿 상차림

출처: 국가유산청 무형유산 디지털 아카이브

 

 

<난봉가>의 전국화

<난봉가>는 황해도에만 한정되지 않고 근대 시기 전국화가 이루어진다. 평안남도 평원군 숙천에서는 <숙천난봉가>를 부르고, 경상남도 진주에서는 <진주난봉가>를 부르고, 제주도에서는 <둥풍노래>가 생겼다. <숙천난봉가>는 전당포가 생긴 근대 이후의 사랑을 노래한다. 전당포에서 돈을 빌려 석경(거울)을 사다 주는 남성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하고, 가까스로 님의 품에 들었는데 원수 같은 닭이 울어 분위기 망쳤다는 원망을 노래한다.

 

내 돈 없으면 은행돈 전당돈 백전 은전 지전 다 낼지라도 족집게 석경은 내 사다 줄게

어마나 눈썹을 여덟 팔자로 지어라 어마나 눈썹을 지울 줄 몰라

속에 속눈썹 다 뽑아 놓고 물독을 안고서 그림자만 본다

님의 집은 성 안이오 내 집은 성 밖이라

성 넘어 갈 제는 개가 짖고 님 품에 들 적엔 닭이 운다

원수로다 원수로다 닭의 정성이 원수로다

 

<진주난봉가>는 진주낭군이 오셔서 사랑방에 들어가니 진주낭군이 기생첩을 옆에 끼고 권주가를 부르면서 노는 모습을 본 여인네가 아홉 가지 약을 먹고 비단 석 자 베어서 목을 매어 죽는다는 비극적인 내용을 노래한다. 진주낭군이 버선발로 뛰어나왔지만, 이미 사랑은 간 곳 없어서 후회하는 못난 남성으로 그려진다. <진주난봉가>는 슬픈 내용과 구성진 가락으로 군부독재 시절에 민주화운동을 하던 젊은 층이 널리 부르는 애창곡이 되었다.

 

 

옛사람들의 노골적인 사랑 표현

<난봉가>전국화는 노랫말이 님과의 사랑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전국의 민중이 즐겨 부르면서 가능했다. 썸 타고 내숭 떠는 현대의 사랑이 아니다. 내 마음을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해서 사랑을 쟁취하는 사랑이 전통적인 사랑이다.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적극적인 사랑이 전통 사회 민중의 사랑이다. <난봉가>는 이런 전통적인 사랑을 담은 노래이다.

 

 

QR코드 및 링크

서도민요 중 <자진난봉가>

국립국악원 국악사전 [링크]

서도민요 중 <사설난봉가>

국립국악원 국악사전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