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소식
국유정담
아동기에 놀이를 빼면 무엇이 남을까? 아동에게 놀이는 일이요 삶이다. 이는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변하지 않았고, 미래까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동의 놀이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게 진화하며, 지금까지 살아남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다윈(Charles Darwin)은 그의 책에서 강한 자가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잘 적응하는 개체가 살아남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적응했을까? 다른 동물에 비해 유난히 긴 어린 시기에 답이 있다. 호랑이처럼 덩치가 크거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갖지 못했고 달리기도 날렵한 동물에 비해 빠르지 않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방법은 큰 뇌와 손을 사용하는 것에 있었다. 큰 두뇌는 앞선 세대의 경험을 배우는 데 적합했고 손은 창, 화살과 같은 무기와 호미, 낫과 같은 농기구를 만들기에 적합했다. 그런데 두뇌와 손을 사용하는 능력은 짧은 시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걷기 위해서는 배밀이에서 섬마섬마1를 거쳐 걸음마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쉽지 않을뿐 아니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언어와 손 사용, 더불어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성을 획득하는데도 절대 시간과 자신의 노력이 합쳐져야 한다. 이런 과정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에 인간의 어린 시기는 길었고, 인간은 적응하고 진화할 수 있었다.
1 어린아이가 따로 서는 법을 익힐 때, 어른이 붙들었던 손을 떼면서 내는 소리
소장: 독일 함부르크 박물관
보통 아동기를 13세 전후로 보는데 이 시기에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갖춰야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인류는 생존에 필요 능력을 가능한 한 빨리 획득할 방안을 찾았고 그것이 바로 놀이이다. 인간을 호모루덴스(놀이하는 존재)라고 정의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놀이의 요소로 자발성, 재미, 반복, 시행착오, 규칙, 비일상성 등을 꼽았다. 여기에서 재미와 반복에 주목해야 한다. 재미있으면 또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필요한 능력이 몸에 배게 되어 필요할 때 써먹을 수 있다. 그래서 잘 노는 사람은 모든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 여겨졌고 여기에서 우리말 ‘노릇’이 나왔다.
오른쪽. 고누, 조선,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 소장: 안양박물관
전통사회 즉 왕권과 신분제, 농경에 의한 자급자족의 시대에 사람들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어떻게 획득했을까? 요즘과 같이 학교 역할을 했던 서당을 다니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은 별다른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부모 노릇, 형 노릇을 하면서 대를 이어 살았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자치기, 연날리기, 제기차기, 소꿉놀이 등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살아갈 때 필요한 여러 능력을 배워 익혔기 때문이다. 우리는 놀면서 무엇을 배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공기를 자주 하다 보면 손 조작 능력이 길러지고 공간 감각이 좋아진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해 낼 수 있다. 다른 놀이들도 들여다보면 마찬가지로 신체, 정서, 사회 생활에 필요한 능력을 기르는 데 각각의 놀이가 기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가 생겨나면서부터 놀이는 존재했다. 놀지 않으면(배워 익히는 과정) 인류가 존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 검은모루 동굴유적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인간이 산 것은 약 40~50만 년 전부터라고 한다. 아동놀이의 역사를 살펴보기 위해 선사시대를 포함하여 구체적인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을 삼국 이전의 시대로 통칭해서 살펴본다.
당시는 평균연령이 짧았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급급했기에 충분히 놀지 못했을 것이다. 또한 놀이인지 제의인지 구분되지 않는 형태로 존재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체 능력을 기르기 위해 쫓고 쫓기는 놀이, 숨고 찾는 놀이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야 했기에 여기에 필요한 역할을 시연하는 소꿉놀이 등 본능에 기반한 놀이가 행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유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앞서 설명한 놀이들이 인류 보편의 놀이이기에 이런 추정이 가능하다.
시대가 한참 지나 삼국시대에는 왕권이 확립되고 농경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놀이들이 펼쳐졌다. 이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바위 그림에 고누판이 새겨진 유물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고누놀이2가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어린 아이들이 별다른 규칙 없이 빗자루나 나무를 다리에 끼고 돌아다니는 죽마놀이, 삼국유사에 기록된 연날리기, 호드기 불기 등의 놀이가 있었다. 그리고 돌이나 나무와 같이 자연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한 공기, 비석치기, 자치기 등의 놀이도 했다고 보여지는데 너무 오래 전이라 구체적인 자료를 찾기 힘들다. 특히 아동의 놀이는 별다른 기록을 남기지 않아 더욱 그렇지만 소재 및 세계 보편의 놀이이기에 초기부터 행해졌다고 추정된다.
고려시대의 경우 훨씬 다양한 놀이들이 문헌이나 유물을 통해 확인된다. 삼국시대에 행해졌던 고누를 비롯하여 풀싸움, 호기놀이, 매미나 잠자리 잡기를 비롯한 풍뎅이 놀리기 등의 곤충놀이가 있었고 명절을 기해 널뛰기나 그네타기 등의 놀이도 있었다.
조선 전기에는 비교적 다양한 문헌을 통해 아동들이 어떤 놀이를 즐겼는지 확인된다. 승부를 겨루는 고누, 풀싸움을 비롯하여 제기차기, 공기놀이, 산가지놀이, 닭싸움놀이 등이 있었고 여러 풍속화에 등장하는 전쟁놀이(깃대를 들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모습)를 비롯하여 겨울에 즐기던 연날리기, 썰매타기, 팽이치기가 있었다. 또한 숨고 찾는 숨바꼭질(미장희, 迷藏戱)을 비롯하여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가 있었다. 다양한 말놀이도 보이는데 ‘아침에는 4개, 점심에는 2개, 저녁에는 3개가 무엇이냐?’는 등의 수수께끼(미어, 謎語), 한자를 풀어 문제를 내는 파자(破字) 수수께끼 등의 놀이도 있었다. 그밖에 줄넘기(도색희, 跳索戱)란 놀이도 있었고 명절이나 세시를 기해 다리밟기, 쥐불놓기 등도 널리 행해졌다.
조선 후기에는 앞 세대의 놀이들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놀이들이 대거 등장한다. 공기놀이하는 두 명의 아동이 윤덕희(尹德熙, 1685-1766) 풍속화에 그려져 있는데 여아가 아니라 남아이고 이를 지켜보는 다른 아이는 바람개비를 손에 쥐고 있어 공기놀이와 바람개비놀이가 행해졌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셈을 할 때 쓰던 산가지가 주판으로 대체되면서 이를 활용한 셈윷 놀이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널리 행해졌던 닭잡기놀이와 풀겨루기, 널뛰기, 동차, 파나 풀·버드나무 줄기를 이용한 피리 만들어 불기 등이 앞 세대의 놀이에 첨가되어 지속된다. 그밖에 오늘날 보드게임에 해당하는 놀이들도 있는데 조선시대 관직을 그려놓은 놀이판에 윤목을 굴려 이동하는 승경도놀이3, 전국을 유람하는 람승도놀이 등이 그것이다. 이런 놀이판이 있는 놀이들은 놀잇감을 만들기도 어렵고 글자를 알아야 하기에 양반층 자제들에 의해 서당에서 행해졌다.
2 두 사람이 말판에 말을 벌여놓고, 서로 많이 따먹거나 상대의 집을 차지하기를 겨루면서 노는 민속놀이
3 옛 벼슬의 이름을 종이에 도표로 만들어 놓고 놀던 어린이 놀이
조선시대 아동들의 놀이는 『동국세시기』, 『열앙세시기』 등 세시풍속을 기록한 문헌, 이덕무의 『사소절』을 비롯한 여러 문헌을 통해 확인된다. 또한 19세기 후반(구한말) 기산 김준근이 그린 풍속화에 여러 점의 놀이가 등장하는데 대부분 조선시대까지 전해지던 놀이들이다. 그밖에 조선후기에 그려진 <태평성시도>에도 다수의 놀이들이 확인된다. 또한 스튜어트 컬린(Stewart Culin, 1858-1929)이 영문으로 지은 『한국의 놀이(Korean Games)』에 아동놀이가 여럿 기록되어 있는데 위에서 언급되지 않은 놀이들로 팔씨름, 돼지씨름, 얼렁질, 보싸움, 돌팔매놀이, 돈치기, 낫치기가 있고 먹을 것이 귀했기에 능금(사과)치기, 앵두치기 등이 있었다.
출처: Internet Archive, Public Domain
그밖에 다리헤기, 손뼉(수벽)치기, 두꺼비집 만들기를 비롯하여 원놀이, 조조잡기, 도둑잡기, 수박따기 등의 모방놀이들도 널리 행해졌다. 특히 남아들은 꼴을 베거나 작은 나무를 해오고, 여아들은 나물캐기와 집안일, 동생 돌보기 등 가사에 매여있었기 때문에 일하는 틈틈히 즐겼던 놀이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로 그림자놀이, 사태(산비탈)타기, 실뜨기, 쌩쌩이(슬릉아) 등이 그것이다. 또한 쫓기와 찾기가 주된 그림자밟기, 진놀이, 말타기, 까막잡기, 가락지 찾기 등의 놀이도 즐겨 했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시대까지 아동놀이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유교 질서에 의해 남아와 여아들의 놀이가 구분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남아들은 신체를 활발하게 사용하는 놀이들을 주로 했는데 여아들은 노래놀이와 역할놀이, 여럿이 둘러앉아 하는 놀이들을 즐겨 했다. 또한 신분제가 놀이에 반영되어 글자를 매개로 한 고을모둠, 화승작, 승경도놀이 등의 놀이는 양반들이 했다. 그밖에 자연물이 놀잇감으로 적극 활용되었고 팽이나 썰매, 연과 같은 놀잇감은 구매하지 않고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아동놀이는 대체로 성인 놀이에 비해 놀이 인원은 2~8명으로 규모가 작지만 종류가 많다. 다양한 놀이가 행해진 까닭은 시간과 공간이 갖춰지고 또래나 형, 언니가 있으면 어떻게든 놀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는 현대 놀이를 이해하는 중요한 시기다. 현재 어른들이 어린 시절에 했던 대부분의 놀이가 일제강점기로부터 출발한다. 이 시기는 전통사회와 다른 사회·문화적 환경이 조성되었으며 일본이나 서양에서 다양한 놀이가 많이 유입되었다. 또한 항구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고 상업이 활발해지고 생활용품도 전과 달라졌기에 그에 따른 놀이가 많아졌다. 특히 신문이나 잡지를 통해 아동놀이가 소개되고 학교는 이를 널리 퍼뜨리는 통로가 되었다. 얼마 전에 유행했던 3·6·9를 외치며 숫자를 대는 놀이가 ‘뻐스’라는 놀이 명으로 동아일보(1934.1.5자) ‘실내유희’란에 소개되기도 했다. 그밖에 자리뺏기나 고양이와 쥐, 수건돌리기 등의 놀이도 이 시기에 외부에서 유입된 놀이들이다. 이 시기 아동놀이의 특징은 놀잇감을 자연에서 얻은 것도 있지만 놀이를 위해 제작된 것을 구매해서 놀았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딱지(인쇄품), 구슬(문구점에서 구매)을 비롯하여 고무꽈리, 풍선, 고무줄 등이 있다. 이런 놀잇감은 1970~90년대까지 전국적으로 널리 행해진다. 또한 땅에 그리는 놀이가 대거 등장한다. 과거에는 별도의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서 놀기보다 생활 속에서 즐겼는데 학교를 매개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또래가 생겼으며 운동장이 학교마다 생기면서 땅에 그리는 놀이들이 많이 생겨난다. 요즘 유명 OTT의 제목이기도 한 ‘오징어게임(오징어 가이생, 오징어놀이)’을 비롯하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의 놀이도 그 시작은 일제강점기라 할 수 있다. 땅에 그리는 놀이는 많은 아동이 좁은 공간에서 즐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별다른 도구가 필요 없기에 급속히 확산되었다. 삼팔선, 개뼉다구, 해바라기, 두부놀이 등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땅 놀이는 근래까지 널리 행해진 놀이들이다. 또한 자연에서 멀어지면서 전통사회에서 즐기던 낫치기, 돈치기 등의 놀이가 단절되었고 산과 들에서 즐기던 놀이들도 크게 위축되었다.
해방 후 아동놀이는 전해지던 놀이와 유입된 놀이가 우리 땅에 맞게 재정비되어 한국화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보급되었던 ‘가투’나 ‘눈가리고 얼굴맞추기’와 같은 놀이는 시나브로 사라졌고 사방치기와 같은 놀이는 적극적으로 소화해서 발전시켰다. 또한 공을 구하기 쉬워지면서 이를 활용한 동네 축구, 간이 야구(찜뽕), 피구 등의 놀이가 널리 행해졌다. 아이들은 계절 변화에 따라, 놀이 인원과 장소에 따라 다양한 놀이를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이런 상황은 199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물론 전통사회에서 즐기던 공기, 제기차기, 숨바꼭질과 같은 놀이도 지속되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가 되면서 놀이가 크게 위축된다. TV 보급의 확대, 게임기, 인터넷을 비롯하여 골목이 사라지고 공부가 강조되면서 놀이는 시간 낭비, 쓸데없는 장난으로 치부되면서 골목과 공터를 누비던 아이들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게다가 2010년대에 들어 핸드폰이 일반화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아이들이 더 이상 놀지 않게 되면서 학교폭력, 왕따, 정서불안, ADHD, 소아비만, 소아성인병 등이 증가하게 되었다. 아동들은 놀이가 일이요, 삶이다. 신체, 사회성, 언어 발달 능력을 익힐 수 있는 인류가 찾은 최적의 교육 방법이 놀이인데 이를 외면하면서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공기나 물이 오염되어 사회 문제가 되니까 환경보호를 해야 한다고 외치듯이 놀이 환경이 극도로 악화되면서 아이들의 삶이 피폐해지자 교육계를 비롯한 사회 전반에 걸쳐 놀이 회복 운동이 펼쳐졌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국의 시도 교육감이 모여 제정한 ‘어린이 놀이헌장(2015년)’과 전국에서 앞다퉈 제정한 ‘어린이놀이 조례’들이다. 또한 현재 아동들이 사용하는 2022 개정 교육과정 교과서에 놀이를 소개하는 비중을 늘려 학교를 통해 놀이를 배우도록 했다. 그리고 교과 시간이나 방과 후 시간에 놀이를 지도하는 놀이지도사를 초빙해 아이들이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며, 충청북도의 경우 교육청에 의해 ‘충북놀이지원센터’를 운영하기도 한다. 이런 노력이 늦게나마 이뤄지는 것은 아이들은 놀아야 하고 놀지 못하면 신체, 정서, 사회적인 성장이 어렵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놀이를 돌려주려는 다양한 노력이 지속되어 더 많은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사진: 이상호











